2005/08/12 09:30 : 황홀한 밥그릇

친구와 만나 술자리를 갖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때론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친구를 만나면 대부분의 화제는 동질적인 유대감을 찾을 수 있는 학창시절로 내려가 거기에서 자신이 어떻게 이 곳까지 왔는가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성공담이기도 하지만 때론 자신들이 얼마나 시들어 버렸는가를 확인하는 실패담이기도 하다. 때론 학창시절의 유치함에 매몰되어 치기어린 웃음이나 떠들썩함을 즐기기도 한다.

결국 노래방으로 갔고, 도우미가 들어왔을 때, 문득 육체적인 시들음 또한 그에 못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육중해진 몸을 흔들어대기에 다리는 너무 빈약했고 스피디한 노래를 소화해내기에는 우리의 노래는 이분음표 밑으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도우미들은 따분한 친구들의 노래와 대화 속에서 흥겨울 수 없었는 지 험상궂은 얼굴로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 중 한 아가씨의 견고한 다리와 균형잡힌 몸매를 보면서 웃어주었으면 고맙겠다고 부탁할 뻔 했다. 아마 그녀가 방긋하고 웃었더라면 노래방에서 나갈 때, 내 기분보다는 그녀의 기분이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이 놈의 도시 속에는 필요한 이상으로 여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래서 남자들에게는 사랑이라는 절묘한 감정은 고갈되어 버리고, 방탕한 욕정들이 사랑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슴 속에서 꺼내 쓸 단어가 아예 없거나, 오염된 얼룩을 지우기 위하여 너무 빨아서 걸레처럼 너덜거리기 까지 한다. 그래서 <깊숙한 사랑을 나눠드릴께요> 라는 거리의 여인의 낮은 속삭임으로 부터 우리가 언어를 어떻게 능욕했는가를 노골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 내가 시인이라면 아마 사랑을 대체할 단어를 만들어 쉰내나는 詩와 함께 양푼에 담고 비벼서 비싼 값에 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부자가 되거나, 최소한 연인들로 부터 칭송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어때 그럴 듯한 생각이 아닌가?

나를 포함한 남자들은 쾌락의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여자들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어제는 (그녀와) 즐거우셨습니까? 김사장님?> 그리고 이들의 우둔한 머리로는 그것을 대체할 다른 쾌락의 방도를 찾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관계도 타인의 입을 거치면 거대한 스캔들의 잔치로 타락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에 대하여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며, 이 도시가 음욕에 들뜰 수 밖에 없더라도 용서해줘야 한다. 알았니? 이놈들아! 마나님이 바람을 피워도 다 니놈들 탓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쥐들로 부터 니놈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너무 아름답거나 색정에 들뜬 여인은 피할지어다. 출장이 잦을 것을 알았던 현명한 제갈량이 희대의 추녀를 아내로 취하였듯.

네팔에서 일년반 만에 휴가 차 귀국한 친구 놈은 히말라야의 하얀 연봉이 보인다는 자신의 집에 있는 개가 지금 피를 토하고 있으며 죽을 지도 모른다고 칭얼거렸다. 개를 키우는 놈에게는 중요한 사태이겠지만 우리는 너무 염려 말라고, 개가 죽는다면 냉동고에 집어넣어두라고 했다. 열대몬순이 끝나 구름과 안개는 사라지고, 히말라야 연봉이 웅자를 나타낼 무렵인 겨울에, 놈의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소주와 함께 놈의 사랑하는 개를 가슴 속에 묻자고...

며칠동안 황무지와 엘리엇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그가 성취한 문학적인 업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시의 풍성한 의미보다 시의 입체성, 즉 서구 문학적 전통과 신화에 대한 폭넓고도 심도깊은 지식을 시 속에 용해시키면서 다채로운 문학적인 질감(Text가 아닌 Texture)을 직조해 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시에 대한 나의 편견을 어느 정도 걸러낼 수 있었다. 그의 시를 버다 폭 넓게 이해하기 위하여 어렸을 적 읽고 내팽개쳤던 구약의 예언서를 꺼내 읽으며 선지자들의 영탄에 섞인 오라클에 취하고, 바빌론의 강 가에서 노예가 되어 침통한 목소리로 울어대는 다윗의 백성의 노래(보니 엠의 Rivers of Babylon이 들리는 듯 했다)를 들었다. 아울러 프레이져의 황금가지를 펼쳐들고 여인들이 신전의 높다란 벽 옆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나그네에게 자신의 몸을 팔아 그 돈을 신에게 바치고 나서야 혼인을 할 수 있는 이교도의 음란한 율법을 어지러워 하면서, 마침내 황무지에서 절묘한 구절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빛의 핵심인 정적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였다. 그러나 찬란한 그 귀절의 의미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엘리엇에 대한 책을 덮은 후, 천재성이라는 것이 지닌 우습광스러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엘리엇은 평범한 사람들과 여인에 대하여 천박한 동물들 쯤으로 생각한 것 같다. 433행의 시에 35개의 고전을 접목하였고 6개 꼬부랑 글씨를 써넣을 정도로 박식을 자랑했던 그는 사고가 마비되어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없는 범인들은 선동적인 정치가에 휘말리거나 아무 생각없이 쾌락에 몸을 떠맡겨버리거나 하는 줄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같은 자들을 떨거지라고 업신여기며 나르시스적으로 자신의 신념에 매료되어 있었고, 범속한 것에서 벗어났다는 것에서 자기만족을 구했던 것 같다.

사실 네팔에서 온 친구도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아무리 해도 천재성을 찾아볼 수 없음에도 놈은 굳이 자신이 천재라고 했다. 우리는 처음에 놈의 그러한 언동에 대하여 반발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믿음을 놈에게서 빼버린다면,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져 놈에게 바람직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그대로 살다 죽는 놈의 꼬라지를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의 포기가 결국 놈을 네팔까지 보내버렸다.

도저히 사회생활을 못할 것 같은 고문관 한 놈만 학교에 남고, 우리는 대학을 나와서 모두 취직을 했다. 놈은 어느 날인가 더 이상 너절한 놈들과 답답해서 회사생활을 못하겠노라고 학교로 돌아갔고, 그만 미국으로 날아가 박사학위를 수월하게 따고는 일본에서 강의를 몇 년 한 후, 모교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다. 오랜 객지생활에 이제 좀 사람되었겠지 했더니만 박사학위와 일본대학에서의 경력 등이 놈의 쓸데없는 자부심만 잔뜩 키워주었던 것 같았다. 그러더니 교수들 사이에 건방지다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고 그만 교정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의도의 어느 곳에선가 몇달을 지낸 후 국제기구에 취직을 했고 본부가 있는 필리핀으로 갔다. 그리고 네팔담당관으로 발령이 났고 네팔에 가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놈에게 자신이 천재라는 환상은 아직까지는 전화위복으로 자리하고 있는 지 모른다. 그리고 범속함을 인내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겐 아직 삶이 뚜렷한 빛을 던져주지는 못하고 너절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런대로 살만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또 언제 만날 지 기약할 수는 없었지만 내일 떠나는 놈에게 그나마 굳은 악수를 나누며 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2005/08/12 09:30에 旅인...face
2005/08/12 09:30 2005/08/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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