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7/23 14:25 : 찻집의 오후는

사실 요 며칠동안 교육기간이었다. 요즘 기업교육이라는 것이 사람 죽이는 것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나처럼 뭐 배우는 걸 싫어하는 사람에겐 직원을 한번 죽여보겠다는 기업교육도 별 소용이 없다.

그래서 그제는 교육시간 내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코스모스와 총의 이유>의 중간부분이나 쓸데없는 것들을... 그래! 대충 쓸데없는 것들을 생각한다. 너무 쓸데없어서 남한테 이야기하기 조차 엉뚱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교육의 일부부분은 차라리 강사를 대신해서 가르쳐도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회사에 입사한 후 보직을 무려 열번이나 바꿨다. 그러니까 회사 전체업무의 60% 정도는 대충(대충이라는 이야기이다. 잘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안다고도 할 수 있다. 국내와 해외영업에 7년, 자금과 수출입금융에 3년반, 경리 1년, 기획 3년반, 감사 4년, 기획연구 4년 정도. 그동안 현업과 그룹 기조실, 해외법인을 전전하면서 때론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맨 땅과 내 머리 중 어디가 먼저 깨지는 가를 시험해가며 일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헤딩을 해도 양쪽 다 깨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장 특이한 보직은 기획연구였다. 당시 회사에서 내가 했던 일은 사장의 지시사항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장의 지시사항은 황당한 것이었다. 그 황당함은 사장이 그것에 대하여 별로 큰 가치를 두지 않고 한번 <연구해 봐!>라는 것이었다.

기획연구라는 이 업무는 회사의 사장의 생각 속에 든 업무분장을 본다면, <무식한 임원들에게 생각할 자료를 줄 것, 내가 잘 모르는 경영 상의 개념을 좀더 명확화 해 줄 것, 어떤 업무를 시킬 해당조직이 부재할 때 대충 던져주어도 일을 해낼 수 있을 것>등 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모든 것을 할 수도 안할 수도 있는 조직이었다. 그리고 조직의 명칭도 삼성에서 겨우 도입하기 시작한 <팀>이었다. 그래서 삼성의 임원이 하던 <팀장>을 1988년에 달았다. 그러나 내 밑에 팀원은 두명에 불과했다.

이렇게 거창함에도 내가 하는 일이란 거의 노는 수준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내 책상 위에는 경제신문과 <니혼 게이자이>가 놓여 있었고, <비지니스 위크>, <이코노니스트>, 그리고 한국의 경영주간지들과 각종 경영서적과 연구기관들의 보고서 등이 잔뜩 쌓여 있었다. 출근을 하면 책상에 앉아서 그 책들을 읽었다. 그러나 일본어 실력은 한마디도 못했다. 영어 또한 형편없어서 한장을 읽는 데 한두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완전히 그런 신문과 잡지는 나에겐 <개발의 편자>였던 셈이다.

그래서 나는 그 잡지들을 뒤적이면서 광고문안이나 보고, 니혼 게이자이는 필요한 부분만 절취해서 보관을 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난 후, 영어를 잘하는 직원을 우리 팀에 데려왔다. 그리고 비지니스 위크에 난 기사를 번역 요약해 보라고 했다.

그 친구가 번역해 온 것을 보고, 내용이 틀렸으니 다시 읽고 핵심을 갈파해 다시 요약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팀장님! 영어도 못하면서 제가 번역한 것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라고 말했다. <척 보면 알아! 단순히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야. 요약된 것에는 도출되어야 할 변수 중 중요한 것들이 몇개가 빠져있어...> 나는 이러 저러한 변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변수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설명한 뒤, <그 기사를 가져와 봐!>하고 그 기사의 해당변수에 줄을 쳐서 그 친구에게 주었다.

<팀장님! 기가 막히네요. 아까 잡지를 볼 때 슬쩍슬쩍 넘기던데 어떻게...?>
<척 보면 안다니까.>

그러나 내가 읽었던 각종 신문과 보고서, 영문잡지 광고 속에 들어있던 컨셉트 등이 자연스럽게 영문잡지 속에 든 내용을 대충 감잡게 했던 것이다.

나의 자리는 기획부와 관리부, 회계부가 있는 정중앙에서 약간 옆에 치우쳐 있었는 데, 자리 뒤에는 책꽂이가 있었으며, 나의 자리 위에는 서류보다 내가 보아야 할 것들로 깔려 있었고 나는 하루종일 책을 읽거나 신문과 잡지를 보았다.

그러니까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마디로 황금의 보직에 앉아 할 일없이 책이나 보는 놈이었다. 그러나 나는 회사 내에서 가장 글을 많이 썼다. 그리고 그것들은 사장실로 들어가 보고된 후에 임원에게 배포, 사내잡지에 게재 등의 분류를 받았으며, 때론 이사회 때 <여러분께서는 국제화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여기에 명쾌한 답이 나와 있네요. 바로 합리적인 사고입니다, 합리적인 사고. 그런데 여러분은 과연 합리적입니까?>라고 임원들 앞에 던져지기도 했다.

때론 사장이 대만에 가서 어느 회사의 재무제표를 사 가지고 와서(일본과 대만의 상장업체의 경우는 재무제표를 팔았다) 그것을 분석해 보라고 했다. 부장은 그것을 나에게 주었다. 당시는 한중간에 국교수교도 안되었고 거의 중국어가 필요없던 때였기에 번역을 부탁할 사람도 마땅치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요약해서 보고했다.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없었다.

그때 당시 나의 일하는 방식은 이러했다. <산업구조 조정에 따른 당사의 대응책을 강구하라>라는 아젠다가 떨어진다면, 무조건 서점으로 달려가 산업구조 조정과 관련된 책을 있는대로 사온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그 책들을 대충 대충보면서 산업구조 조정이 무엇인가 하는 <개념>을 파고 든다. 그래서 개념이 정립되고 그 책들을 보면, 개념도 없이 시류에 영합하여 마구잡이로 책을 써대는 못된 놈의 학자란 놈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산업구조 조정도 모른 채, 산업구조 조정을 해야만 우리나라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외국의 산업구조 조정의 사례만 배껴다가 그럴 듯 하게 자신의 천박한 지식을 담아 무슨 보고서니 하고 내놓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책들을 보면서 중심 책을 고르고, 한 두권 쯤 부속서로 선정하여 다시 색인을 보고 줄 긋기도 뭐하니 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페이지를 접는다. 그리고 하루 이틀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다시 산업구조 조정과 당사의 입장 등에 대하여 생각하며 키워드를 잡아낸다. 그 키워드를 잡아내는 일이 어떤 경우는 일주일 씩 걸리기도 한다. 그것은 명상같기도 했다.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보고서의 전체 비젼이 펼쳐지고, 나는 워드프로세서에 매달려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삼십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는 불과 하루 이틀에 끝나 버린다. 때론 보고서를 읽으며 수정하는 데 하루 이틀이 더 걸리기도 한다.

그때의 나의 보고서는 어느 기업의 성공사례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의 경우는 A4로 한 삼페이지, 경제전망에 대한 보고서는 삼십페이지 정도, 위와 같은 특정 아젠다의 경우 이십페이지 정도 달했다. 그리고 사내보에 게재할 특집은 잡지의 두페이지 분량이었기에 그림과 별도로 삼페이지에서 오페이지에 해당되었다. 그러다 보면 연간을 통털어 내가 만들어 내는 작업량은 케이스 스터디나 번역물등이 백페이지 정도가 되며, 사보게재물이 오십페이지, 경제전망이 칠십페이지, 아젠다가 이백페이지, 기타 수명사항 등을 합하면 오백페이지 정도가 되며, 이 중 내가 직접 건드려야 되는 부분들이 삼백페이지 정도가 되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은 없었다. 사장이 준 아젠다의 보고시한은 통상 한달이었고, 경제전망이나 그런 것은 일년에 두번, 그리고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자료를 발췌하여 요약하여 사내에 배포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시간적 여유와 독서와 사색적인 분위기에 젖을 수가 있었다. 나는 회사의 맨 꼭대기 층에 있는 도서실로 올라가 책을 읽거나, 근무 중에 생각을 하기 위하여 거리로 나가 산보를 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자유를 얻은 것은 사장의 나의 보고서에 대한 몇번의 격찬과 주변의 간부나 직원들이 자신들은 할 수 없다는 긍정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사장이 십년 이상의 장기 집권 끝에 그만 해임되었다. 사장이 우리 팀을 만든 것은 자신의 경영전략을 검증, 정리, 수정하거나, 임원들의 자질 향상을 이끌고, 화이트 칼라의 생산성 향상 방안을 누군가에게 자문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알고 싶었던 중요한 개념들에 대한 자문도 포함되었다. 사장은 한번도 나를 직접 부르지는 않았다. 직접적인 대면은 즉흥적인 대답 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장은 보고서가 지연되어도 재촉하진 않았다. 그러던 그가 해임되었고, 신임 사장이 들어선 지 얼마 안되어 우리 팀이 왜 있는 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나는 기조실로 전출되었다.

그때 나의 마지막 아젠다는 <기업문화>였다. 나는 키워드를 간신히 찾아냈지만, 마지막 보고서를 작성하기에는 전출명령은 촉급했다.

기업문화 성공의 키워드는 <최고 경영자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었다.

사략에 보면 태공이 제나라에 봉해진 지 오개월 만에 정사에 대하여 보고하니 주공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틀을 잡았습니까 하고 묻는다. <임금과 신하의 예를 간략히 하고, 제가 그 풍속을 따랐을 뿐이요>라고 한다. 반면 자신의 맏아들인 伯禽은 노나라에 다달은 지 삼년이 지나 정사를 보고하니 주공이 너는 어찌 이리 늦었는고 하고 묻는다. 백금이 말하기를 <그곳의 풍속을 바꾸고, 그곳의 예법을 갈아치워서 喪을 삼년을 한 후에 없애도록 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주공이 말하길 <후세에 북면을 하고 받들 곳이 제나라 구나!>하며, <대저 정치란 간략하고 쉽지 아니하면 백성이 가까이 할 수가 없고, 평이하다면 백성에게 가까워서 백성이 반드시 거기에 깃들기 마련이다.>라고 한탄한다.

그 앞의 문장을 보면 주공이 백금을 노나라에 봉하면서 <나는 문왕의 아들이요, 무왕의 동생이며, 지금의 왕의 숙부이다. 그러나 나는 머리 한번 감을 때도 세번씩이나 머리를 들쳐들고, 밥 한끼 먹을 때도 세번씩이나 뱉어내며 일어서서 선비를 맞이했으면서도 오히려 천하의 어진이들을 잃을까 노심초사했다.>라고 쓰여 있다.

교육을 마치면서 느끼는 것은 그것이다. 나에게 변화를 요구하지만 그대 자신은 무슨 성찰과 변화가 있는가?


太公封於齊 五月而報政. 周公曰何疾也? 曰 吾簡其君臣禮 從其俗. 伯禽至魯 三年而報政. 周公曰何遲也? 曰變其俗 革其禮 喪三年而後除之. 周公曰 後世其北面事齊乎. 夫政, 不簡不易 民不能近. 平易 近民 民必歸之.

伯禽就封. 公戒之曰, 我文王之子, 武王之弟, 今王之叔父. 然, 我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 起以待士. 猶恐失天下賢人

2005/07/23 14:25에 旅인...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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