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17 21:54 : 찻집의 오후는

내 나이 스물에 <마흔이면 죽을 것이니, 인생의 절반을 산 것>이라고 결심했다. 결심했다는 것이 자살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나의 나이 스물이 못견디게 찬란하여 세월에 빛바래고 쪼그라진다는 것이 애처로워 마흔이면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라고 절박한 심정에서 한 결심인지도 모른다.

이십일세기를 아슬아슬 몇년 남겨놓고, 노스트라다무스의 멸망의 예언이 실현되기 전에 지구의 종말에 혀를 날름 내밀고, 찬란했던 생에 장막을 드리운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이 스물에 결심한 것보다 충분히 더 산 작년 쯤, 아내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점을 보았다며 점괘를 일러주었다. 나의 운명에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겠지만, 그 날따라 피곤했는 지 나는 침대에 벌러덩 자빠져 아내가 말해주는 점괘를 정말로 심드렁하게 듣고 있다가 한마디에 그만 벌떡 일어났다. 그것은 <당신보고 무지하게 오래산다고 그러더라구>였다. 뭐 발라먹을 것 있는 나의 인생인지는 몰라도 가슴 속으로 희열이 스며들었고 피곤이 싹가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세수라도 할 겸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았다. 거기에는 피로와 우울에 젖은 아저씨가 반쯤 풀린 충혈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말했다. <우리가 늙긴 늙는 모양이야. 오래 산다니깐 좋아하긴>

벽에 똥칠할만큼 오래 살더라도 뭐 특별히 할 것이나, 인생 한번 오지게 잘 살았다고 할 구석이 하나도 없음에도 오래 산다는 것이 왜 그렇게 듣기에 좋았을까?

유난히 허우대가 좋고 키가 큰 친구들을 보고 <가득이나 먹을 것 없고 좁아터진 땅덩이 위에 쓸데없이 키만 커 가지고...>라고 말하듯, 인간들이 살겠다고 바글거리는 이 세상에서 나 하나 일찍 밥숟가락 놓으면 적어도 매 끼니에 한 놈은 더 먹을 것이고 지하철에 한 자리는 남을 것인데, 그것이 다 보시고 공덕인 데... 하면서도 말라비틀어진 삶에 대한 미련은 더욱 강렬해지는 것이다.

누군가 언제가 제일 좋았냐고 묻는다면 아마 지금이 제일 좋다고 말할 것이고, 언제가 가장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할 것이다. 행복과 고통이 어떻게 중첩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그것이 산수와 같은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젊었을 때는 비굴하면서 용감할 수 없었고 정의로우면서 불의와 타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행복과 고통도 그럴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도 곯고 썩을 수가 있어서, 한쪽은 곯고 뭉그러져도 한쪽의 과육은 단맛이 더하듯 나의 삶을 형성하고 있는 부분 또한 그러하여 동시에 행복하면서도 불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리하게 남아있을 수도 있는 삶에 아무런 기대할 것 없다고 하더라도, 희망은 가득하고 다가올 불행이나 고통에 대하여 그다지 심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와 자식은 나의 미래에 대한 소박한 낙관을 증폭시켜 준다. 이것이 삶에 대한 아주 뚜렷한 미련인 것 같다.

일요일 아침이면 때론 마누라가 깰까 봐 조용히 설거지를 한다. 수세미로 그릇에 묻은 고추가루며 기름기를 세제 거품에 씻어내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설거지를 끝내고 행주로 싱크대의 물기를 닦아내고 한번 물에 행군 뒤 물을 꽉 짜내면 흐뭇해진다. 아마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렸을 땐 내가 삶을 못마땅해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삶이 나를 못마땅해 한다는 것을 알았는 지도 몰라. 좀더 지나면 삶과 어깨동무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을 지 몰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38살에 죽은 푸쉬킨이 쓴 詩>

2005/06/17 21:54에 旅인...face
2005/06/17 21:54 2005/06/17 21:54
─ tag 
Trackback URL : http://yeeryu.com/trackback/548
◀ open adayof... Homo-Babiens ▶▶ close thedayof... Homo-Babie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