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13 02:31 : 무너진 도서관에서

무풍교 위에서란 글을 쓴 이유는 금각사라는 글을 읽으면서 생각난 것도 있지만, 사실은 이웃분의 포스트에서 알리 칸의 카왈리라는 파키스탄 전통음악을 듣고, 상당한 감동을 받았고, 그로 인하여 티벳 불교의 삼밀(三密)에 대하여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점도 가세했다.

통도사의 통도(通度)란 <몽땅 다 피안의 세상으로 건너가다>라는 뜻으로 사홍서원 중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일체의 중생, 즉 생명체를 구제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피안(彼岸)에 도달하겠다는 맹세)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나, 그 직접적인 본의가 잇닿아 있는 글은 우리가 잘 아는 반야심경의 <바라승아제>이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디사바하(Gate Gate Para gate Para samgate Bodhi Svaha) 라는 주문은 가자, 가자, 모두 가자 모두 다 저 언덕으로 가면, 깨달음을 얻으리라 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주문(呪文)이란 만트라를 말한다. 만트라(Mantra)는 입이 짓는 업을 씻는다는 구밀(口密)에 해당되며, 육자대명왕진언이라는 옴 마니 반메 훔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몸이 지은 죄를 씻는 신밀(身密)은 부처님의 손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는 수인(手印 : Mudra)이 있고, 생각이 지은 업을 제거하는 의밀(意密)에는 만다라 등의 도상으로 표현되는 얀트라(Yantra)등이 있다.

그러나 불교도 모르는 내가 밀교까지 알 수는 없어서 통도사의 글의 한 모퉁이에 이런 것들을 쓰려다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글을 쓰면서 용을 만나러 간 그날 오후에 경봉스님을 만났으면 지금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고 있었으며, 남도의 절집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공양(절밥)을 받아 먹으면서도 불교를 사이비 혹은 네다바이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다.

불교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접하는 책이 보통 부처님의 전기이거나 금강경, 아니면 법구경, 혹은 대승기신론 등이 될 것이다.

나도 초기에 부처님의 전기와 숫타니파아타, 법구경, 대승기신론 등을 읽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전기를 읽으면서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 만큼의 감동도 없었다. 남전불교 경전인 숫타니파아타나 법구경의 경우 진부한 잠언 이상은 아니었고, 우파니사드보다 진리에 대한 치열한 갈구가 없어 보였다. 결정적으로 대승기신론소의 경우, <마하야나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기 위한 에세이 및 그에 관한 주석>이라는 제목임에도 나는 단 한 글자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불자들은 말한다. 무명의 베일이 벗겨지면 확철대오하여 부처님의 팔만법문의 의미가 주악 펼쳐질 것이라고 했다.

쌍계사의 툇마루에 앉았을 때, 옆 방의 강원을 막 마친 스님이 말했다.

“개울물 소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때에야 화엄의 뜻이 밝아질께요.”

그 힘든 강원을 나왔다는 스님께서 무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던가?

아비달마구사론, 중관론, 금강경, 유식론, 기타 경전이나 여래장 등을 설명하는 그런 것들을 읽었다, 그러나 불교는 대웅전의 여래좌상이나 되는 듯, 오불관언, 중생인 나를 제도하는 것에 눈 돌리고 먼 산을 바라보거나 눈을 안으로 돌려 입정에 들어있기만 했다.

이러한 불교는 요지부동, 내가 알 수 없는 것(불가사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쌍계사에서 지나던 어느 날, 친구가 총무스님 방에서 가져 왔다는 책에서 김일엽 스님의 오도송을 읽었다. 그 구절이 전혀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 글을 읽는 순간, 쌍계사 주변을 감싸고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멈춰버린 듯한 느낌과 자칫하면 알 것 같기도 하고, 평생을 용맹정진하여도 도무지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율배반적인 감상이 떠올랐다. 또 그 뜻을 아는 즉시 나의 내공 수위가 일엽스님과 차등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취산에서 부처가 설법을 할 당시, 꽃비가 내렸는 데 부처께서 꽃을 약간 비틀어 대중에게 내어 보이셨고(拈華示衆), 가섭이 미소를 지었다고 하며, 그로 인하여 부처의 정법이 가섭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그 후 구구절절한 말들이 안출되었지만, 말로써 진리를 전할 수 있다면(依言眞如), 남들도 알아듣게 말로 하지, 가섭은 왜 씨잘때기 없이 웃음(離言眞如)으로 전했을까?

후일 내 나름대로 얻은 지식을 더듬어 선가(禪家)의 화두(話頭)에 대하여 생각해 보니 이러하다. 이른바 시공이라는 물리학적 조건 속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생멸문(生滅門: 현상)에 대해서는 언어로 말할 수 있으나, 시공을 초월한 진여문(眞如門: 실상)에 대해서는 언어가 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바그완(후일 오쇼라고 개명함) 라즈니쉬는 깨달음의 경험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게 되면, 깨달은 자는 사라지는 데 누가 깨달음을 전할 것인가 라고 궤변 아닌 궤변을 늘어 놓는다. 즉 노자가 말하는 도를 도라고 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는 의미의 명료한 해석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연기관계에서 아버지의 아들, 자식의 아버지, 이모의 조카 등으로 타자로서의 나의 갈라짐을 어거지로 나라는 존재를 설정하여, 자기동일성(Identity)을 확보한다고 한다. 나의 차를 누가 긁었을 때의 가슴에 쭈악 기쓰가 가는 느낌 등의 것들이 하나의 집착을 만들고,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믿게 한다고 한다. 만약 나의 차를 누가 긁었을 때, 긁힌 것은 차요, 나는 나다 라는 자기동일성(我相)이 사라지면, 공포와 분노 등이 사라지고, 삼라만상에 깃든 나(梵我一如)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우주 삼라만상과 나의 차이를 잊었을 때, 결국 나는 사라지고 우주에 넘치는 의식만 남는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열반하기 얼마 전에 자신이 이 세상에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不立文字)는 말씀을 남기신 이유도 이런 데에 기인하지 않는가 싶다.

결국 간화선을 방편으로 삼는 선가에서는 화두를 들어 참구해나가는 과정에서 公案(古則: 정부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국민이 준수해야 할 사안을 뜻하는 말이나, 이것을 선가에서는 고래로 조사들의 말씀·문답 등 부처 조사와 인연된 종강(宗綱)을 수록하여 공안이라 함)을 선(禪)의 과제로 삼는데. 이 화두가 말이긴 한데, 만법의 실상을 말로써 전할 수 없기 때문에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방편을 취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不立文字, 敎外別傳이란 한마디로 말도 되지 않는 말로 부처님의 가르침(佛道)이고 로직이고 자시고 간에 되는대로 가르치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어느 땡초가 나타나 되든 안되든 씨부리면 법어(法語)요, 산이라면 산이 되고, 물이라면 물이 되고, 똥이라면 똥이 되게 되어버린 것이다.

선가에서는 불법(大道)는 무문(無門)이라 한다. 큰 진리는 문이 없다 라는 뜻이 아니라, 결국 크게 열려져 있어 어디가 문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는 뜻이건만, 조사가 든 화두에서 문을 찾아온 것이 산문의 현실이며, 불법을 얻겠다고 아예 방문까지 시멘트로 공구리치고 들어 앉아 참구를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대도무문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길 없는 길>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조사들이 걸어간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며, 그 길은 자신이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부처가 보이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가 보이면 조사도 작신나게 패 죽이라고 한다. 그들 선지식이 참다운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럴 듯한 길이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위에 대한 환상을 없애기 위하여 아예 문이 없다고 한 것인 데, 버젓한 문은 공구리치고 벽을 뚫고 나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돌대가리 아니면 어찌 그 벽을 박살내고 나가리오?

그런고로 스승이 낸 화두에 대한 사지선다식의 정답은 없다.

조주가 고양이를 두동강이 낸 남천에게 그럼 정답이 뭡니까 라고 물었을 때, 남천 또한 조주처럼 짚신을 머리 위에 올린 채 방 밖으로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수능시험이나 토플에 물들어 모든 문제에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다.

진실진실로 천차만별, 도는 똥덩어리에도, 불경에도, 코딱지에도 있으나 그 묘용은 항상 틀리며, 그때 그때 다르다.

여기에서 120살까지 살았다는 조주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불립문자와 교외별전을 방편으로 조주에서 놀았던 만큼 古佛이요 뭐요 하며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이 하나의 에피소드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TeaNGo/Others

조주스님의 속성은 학씨 법명은 종임이다. 778년에 나서 897년에 입적을 하였으니, 세수로 백이십까지 살았다. 그는 산동성 조주부에서 태어나 조주에서 죽었다. 그래서 조주라고 한다.

僧問趙州, 萬法歸一, 一歸何處.
州云, 我在靑州, 作一領布衫. 重七斤

중 하나가 묻기를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 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조주가 말하길 청주에 있을 때, 베 적삼을 하나 만들었거든, 그런데 무게가 일곱근이야.

조주 스님은 똘중이거나, 심우도의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纏垂手: 저자거리로 돌아가 손을 드리우다)의 경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화두에는 서릿발과 같은 날카로움과 무게가 없고 해학적일 뿐이다. 그의 화두를 보면 배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자고, 배에 가스가 차면 방구를 뀌는 평상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120살이나 살았나 보다.

여기에서 조주의 에피소드를 나름대로 그려본다.

EPISODE 1.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원문은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祖師西來意) 이다. 이 공안은 선가에서 화두로 자주 쓰였다고 한다.

어느 날 학승이 와서 묻는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스님은 방 밖 뜰에 커다랗게 자라난 잣나무 위로 가을의 햇살이 쏟아져 일렁이는 것을 본다. 조사? 그 말라비틀어진 것이 이 땅에 와서 남긴 것이라고는 쉰내 나는 그따위 질문 밖에 더 있느냐? 그가 이 곳에 왔다면 그것은 네 놈들에게 자유를 주러 온 것이다. 아해야!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저 아름다운 잣나무를 진정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스님은 탄식처럼 말한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학승은 무연한 스님의 대답에 화가 난 듯 말한다.

“비유로 말씀하지 마십시요.”
“난 비유같은 것은 모른다.”
“다시 묻겠습니다. 조사께서 서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지금 여기에서, 아름다운 잣나무의 자태와 빛의 일렁임을 너는 보지 못한다는 말인가? 네가 진정으로 고개를 돌려 저 마당에 자라있는 저 잣나무를 본다면, 더 이상 달마가 온 까닭을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알텐데...

조주는 방 밖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EPISODE 2. 차나 한 잔 들고 가지(喫茶去)

조주가 살던 산동성은 북쪽이라 좋은 차가 없다. 아마 남쪽에서 온 누군가 조주에게 잘 가르쳐 달라고 뇌물로 주었는 데, 사람 좋은 조주는 이놈 저놈 아무나 차를 대접하곤 한 모양이다.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어느 학인을 보고 스님이 물었다.

“이 곳에 와본 적이 있나?”
“처음입니다.”
“그래? 그럼 차나 한 잔 들고 가지!”

그리고 또 다른 학인이 왔다.

“이 곳에 와본 적이 있나?”
“네! 전에 와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차나 한 잔 들고 가지!”

그때 옆에서 그 모양을 보고 있던 한 스님이 물었다.

“선사께선 이 곳에 왔던 사람이나, 처음 온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다 같이 차나 한 잔 들라고 하십니까?”

그 질문에 나같은 똘중은 아무 놈이나 붙들고 차도 한 잔 못할 팔자네 하며, 화두고 조사선이고를 떠나 조용히 앉아 따스한 차 맛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럼 원주, 자네도 차나 한 잔 들고 가지 그래!”

EPISODE 3. 내려놓아라(放下着)

엄양이 조주스님에게, “다 버리고 한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어찌하면 됩니까?(一物不將來之時如何)”하고 물으니, 스님이 “내려놓아라!(放下着)”하고 말했다. 아무 것도 없는 데 버리라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싶어, “이미 한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버리라고 했어도 버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반문하자 스님은 “그렇다면 짊어지고 가게나.”라고 했다는 데서 출전을 찾을 수 있지만, 이 이야기보다 다음 이야기가 조금 나은 것 같다.

초심자가 스님을 찾아와 인사를 드리자 평소에 뇌물을 좋아하던 스님은 곳감이라도 가져왔을까 하고 물었다.

“뭘 가져 왔누?”

대덕인 줄 왔더니 이 놈의 영감탱이가 뭘 바라는 걸까 하며, 쭈뼛쭈뼛 말했다.

“스님 얼굴이나 잠시 보고 갈려고 그저 빈손으로 왔지라...”

조주스님은 자신의 질문으로 초심자의 마음 속에 무거운 돌덩어리가 자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말한다.

“그럼, 내려놓게.”

영감탱이가 안 가져왔다는 데, 뭘 내려놓으라는 거야, 산 속에 산다고 산적보다 더 하네 하며,

“아무 것도 없는 데 무엇을 내려 놓으라구...?”

그는 사람이 평상심으로 살아가기가 이토록 힘들구나 하며, 한숨을 한번 쉬며,

“그럼 계속 들고 있어.”

EPISODE OTHERS

조주의 화두는 하나로 요약하면, 평상심이다.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보는 마음처럼 힘든 것이 또 있겠는가. 우리는 산을 보면서 돈 계산을 하고, 물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갈 걱정을 한다.

한 스님이 선사를 찾아와 인사를 드렸다.

“저는 공부한 지가 얼마되지 않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님은 큰 스님께서 일장 훈시를 하며, 마음을 닦고 용맹정진하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오냐! 저녁 공양은 했느냐?”
“예”
“그럼 바리때(스님들의 밥그릇)나 씻어라.”

* 자다가 봉창 : 마음을 닦는 것이나 설거지나 一如한 즉, 그릇이 마음이요. 마음이 그릇이다.

참선하는 중이 조주스님을 찾아와 물었다.

“스님 가장 다급한 일이 무엇입니까?”

조주스님은 다급하게 일어나며 말했다.

“으이씨! 오줌이나 눠야 겠다. 이런 사소한 일도 나처럼 늙은 중놈이 직접해야 하다니...”

하고 뒷깐으로 갔다.

그런 즉 일체의 불법이 다 먹고 싸고 자고 난 연후에나 가하니, 趙州木(뜰 앞의 잣나무)이 푸르름은 어찌된 까닭일까?

2007/02/13 02:31에 旅인...face
2007/02/13 02:31 2007/02/13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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