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들에 본 DVD

이틀동안 DVD 네 편을 보았다. 그러나 하나는 제목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성룡과 김희선이 나오는 진나라 때의 이야기인 신화. 그리고 콘스탄틴, 쿵푸허슬, 너는 내 운명을 보았다.

<너는 내 운명>을 빼놓고는 허술하고 형편없지만, 재미는 있는 비디오들이다. 비가 내려서 우중충한 날에 신경을 쓰지 않고 시간 때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1. 신화

성룡의 영화는 늘 그렇듯 가볍다. 아무리 액션의 난이도가 높다고 하여도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 비극도 없지만 희극도 없는 것이 성룡의 영화다. 그것이 성룡이 지닌 싱거움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성룡의 영화를 보고서 감동 먹었다는 미친놈을 본 적이 없다. 감동을 먹기 위하여 성룡 영화를 보는 사람은 없다. 단지 순간의 액션을, 그 위험천만함을 즐기기 위해서 보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몽의장군으로 나오는 성룡의 모습은 너무 진지하다 못해 어벙해 보인다. 조연으로 나오는 인도 아가씨는 찬란하게 아름답지만, 평소 좋아하지 않던 김희선의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바람 결에 휘날리던 한복 소매자락의 우아함이란…

2. 콘스탄틴

참으로 형편없는 영화다. 엑소시스트도 아니고 매트릭스도 아니다. 값싼 귀신 영화에 미이라의 머미와 같은 귀신을 등장시킬 정도로 진부하다. 또한 물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지옥을 갔다 왔다는 것도 쥬디 포스터가 나오는 엔카운터(?)에서 빌려온 그림이다. 영화 전편을 통하여 단 한번도 어떤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이런 종류의 영화치곤 실패다. 감독은 프란시스 로렌스라고 하는 데, 이 친구는 뮤직 비디오나 찍어 팔던 작자라서 그런지 영상효과는 그럴 듯할 지 몰라도, 지옥이 그렇게 멋있는 곳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천사장 가브리엘의 배신과 어벙한 사탄, 예수를 찔러죽인 숙명의 창 등이 서로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는다.

3. 쿵푸허슬

추성치는 어떤 머리를 가진 작자일까? 늘 누더기로 그럴듯한 분소의를 만들어내는 작자. 어울리지 않는 엉성한 패러디, 말도 안되는 과장, 아주 가벼운 고뇌 등을 엮어 꽤나 돈을 벌어들이는 작자. 이 친구의 영화를 보면, 무엇이 추성치 영화의 매력일까를 늘 생각하게 만든다. 추성치의 영화에는 애환이 있다. 못사는 사람들과 어려웠던 시절의 애환이 누더기처럼 널려있어서 처음에는 좀 지저분하지만 결국은 영화 속에 동화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인간의 치졸함에 대한 통찰이 있다. 지저분함과 역겨운 패러디, 지나친 과장, 그리고 못난 주인공이 느슨한 것 같으면서도 타이트한 구성 속에 녹아 결국은 볼만한 영화가 된다는 것은 추성치의 재능이다. 딸내미도 재미있다고 한다.

4. 너는 내 운명

지금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직도 그들은 그렇게 애절하게 사랑하고 있을까? 과연 인간의 사랑에는 한계가 없을까? 이런 수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영화다. 나의 대답은 <아닐 것이다>이다. 이 영화가 찬란한 점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라기 보다, 신파와 멜로의 접경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진실과 허위를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세상에, 티켓다방 출신을 아내로 며느리로 맞아들일 수 있는 어느 농촌이 있고, 에이즈에 걸린 불순한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내가 있다는 것에 나는 어리벙벙할 뿐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약간 머리가 모자라는 사내인 줄 알았다. 그러나 너무 건강한 사람, 우리같이 세속에서 찌들어 골병이 든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 못할 건강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그를 바보라고 지레 짐작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아주 건강했다면,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을 것이나, 의심과 불감증,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병든 이 사회에서 병든 여인을 감싸 안는 건강한 남자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농촌이라는 무대와 평범한 농촌청년 그리고 다방레지라는 흥행에서 기피할 무대와 주인공으로 성공한 영화며, 웰컴투 동막골처럼 착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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