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4/26 19:04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바다와 배에 대한 무지와 게으름 때문에 나의 꿈은 선원이 되는 것이었다.

장래의 꿈이 무엇이냐는 오학년 담임의 질문은 줄줄이 이어져 나에게 까지 돌아왔고, 나는 선원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바다와 하늘과 태양 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몰랐다. 그러니까 나는 부두와 그 부두 끝에 매달려 있는 대륙과 섬, 그리고 머나먼 이국에 있는 사람과 이방인으로서 깃들 바다를 연한 숙소와 식당, 또한 아득한 그들의 언어 만을 생각했지 항해란 공간이동을 위해서 엄청난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며 그 시간동안 섬조차 없는 대양을 푸른 색을 저주하며 태양과 별과 달만 보며 나아가는 것임은 생각치 않았다.

선원 생활의 본질은 무한정의 자연 속에 배와 나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기에 육지에서는 또깍또깍 흐를 시간이 또오깍또오깍하고 반템포 느리게 흐르며, 때론 폭풍우와 파도에 휩쓸릴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게으른 나의 천성 때문에 땅에 머무르며 무수한 사람과 부대끼면서 땅을 파거나, 뭔가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보다, 간혹 어긋나는 항로를 바로잡고 항구에 접안하기를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을 선원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국민학교 오학년에게 <일>이란 그렇게 추상적이어서, <일>과 <여행>은 아무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선원이 되기를 접기까지 만났던 선원출신들이 내게 말해주었던 그들의 생활은 어린 내가 꿈꾸었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외국에 나갈 수만 있다면 다소의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머나먼 세상은 뚜렷이 다른 색으로, 마치 열대어 수조처럼 환상적이었고 배가 접안하는 선창가에는 다소 퇴폐적인 술집이 있고 꽃과 같은 이국의 아가씨가 있었다.

나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배는 탔다. 폭풍우가 부는 어느 날 부산에서 삼천포로 가는 배를 탔고, 연안여객선을 타고 안개 낀 서해를 지나고, 엔젤호를 타고 수분에 가려진 선창으로 스쳐지나는 한려수도를 보고, 아내가 임신했을 때 호수로 가 아내를 위하여 배를 저었다. 그러나 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을 갑판 위를 서성이면서 시간이 쉬어빠지는 것을 보고 난 후, 지겨움에 취할 정도가 되어야 할 지도 모른다.

폭풍우로 삼일동안 울릉도에서 갇혀 지내다 포항으로 가는 여객선을 탔다. 출항 기적을 뿌우하고 울렸을 때, 뭍으로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들뜨는 것이며, 섬이란 얼마나 좁고 답답하며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인가를 이해했다. 나는 <잘 있거라! 울릉도야 다시 안오마!> 하고 쑥떡을 먹이듯 그 좁아터진 도동을 향하여 손을 흔든 후 이등칸으로 내려갔다.

기억하기로는 도동에서 포항까지 항해시간은 8시간인가 9시간이 걸렸다. 나는 배낭을 이등칸의 다다미 위에 던져놓고 잠을 잘 요량이었다. 다다미에 몸을 누이자 파도도 없음에도 바닥은 꿀렁거렸고 멀미가 났다. 그래서 갑판으로 올라가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보았다. 그제서야 바다란 해변에서 바라보는 바다보다 넓다는 것을 알았다. 혐오스럽게 넓었다. 섬 한점 없는 동해의 가운데를 배는 갔지만 바다의 넓이에 비하여 배는 너무 느려 한 지점에 서 있는 것 같았고 한낮의 해는 뜨거웠다. 갑판에서 그늘을 찾았지만 에폭시 처리된 바닥이 달궈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배가 그래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는 엔진실의 연통을 통해 흘러나온 연기가 선미까지 드리운 길이로 알 수 있었다. 낮의 폭양 때문에 책도 볼 수 없어 나는 갑판을 수백번인가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선원이 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하여 그만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고 나는 그만 낯선 부두가에 잠시 살게 되었다. 그 곳의 이름을 사람들은 꿈꾸듯 홍콩이라고 불렀다.

홍콩은 섬인데도 어리석은 나는 그 곳이 육지이고 건너편에 보이는 구룡이 섬이라고 생각했으며, 남북을 가릴 수 없는 북회귀선이 지나는 그 곳에서 바다가 한 뼘으로 내 눈 앞에 드러누워 있음을 나날이 목도하곤 했다. 왕복 팔차선에 불과한 빅토리아 하버 위를 지나는 배들과 정크선을 바라보며, 아득하지 못한 바다, 끝이 보이는 바다, 땅들에 갇힌 바다의 수치와 비굴함을 보았다. 그 바다는 물결은 있어도 파도는 없고, 이리저리 지나는 배들이 바다를 할퀴어대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퍼시픽 플레이스의 사무실에서 나와 무던히 깜종의 끝으로 나가 그 좁아터진 바다를 보았다. 그때 건너편 침사추이의 오우션쎈타 쪽에 거대한 배가 보였다. 배는 막 출항을 하고 있었고 육중한 선체가 정박지를 이탈하는 모습은 나에게 결국 이 곳도 어쩔 수 없이 부두의 뒷골목임을 환기시켰다. 그리하여 나의 어린 꿈이 결국 나를 낯선 부두로 이끌었고 거기에는 바다를 면한 숙소와 식당과 술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결국 식구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이박삼일간의 크루즈를 즐긴 후 다시 그 부두로 돌아와 다음 크루즈를 기약하기 이전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내가 살았던 그 부두가는 이제 기억 속에 희미하기만 하다.

2005/04/26 19:04에 旅인...face
2005/04/26 19:04 2005/04/2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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