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

딸 아이의 방학 숙제 때문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갔다.  과천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생긴 때가 80년대 중반 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개관을 하고 얼마 안되어 홀로 추운 미술관을 둘러보던 일이 생각난다. 이제 딸내미의 손을 잡고 미술관으로 올라가니 세월이 묻은 박물관은 개관 당시의 썰렁함을 벗고 이제는 포근해 보였다.

이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림을 보는 것이 즐거워 홀로 미술관을 들락날락거리며, 한 작품 앞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림에 대한 애착이 너무도 엷어져 버렸다.

표를 사고 아무 전시관이나 들어가려 했더니, 안된다고 한다, <한국미술 100년>과 상설전시관은 틀리단다. 미술관 안의 직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고 꼭 사감과 같은 근엄함과 지겨움이 가득하다. 삼층으로 올라갔더니 누님이 갖고 있던 화보집을 통하여 너무도 친숙했던 김환기씨의 작품 <달 두개>와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남관씨의 작품이 있었다. 그 옆에 변종화씨의 특유의 삼베꺼즈에 석고로 굳혀 색을 칠한 작품은 아니라도 체취가 묻어나는 작품이 있었다.

남관씨는 이응로 화백처럼 글을 형상화했다. 갑골문과 같고 오래된 청동기 부장품과 같이 부식되어 인광처럼 아니면, 자개와 같은 빛을 보인다. 위의 박물관 소장의 그림보다는 나는 대화와 같은 작품이 좋다.

조금 지나자 합정동에 살 때, 골목 어귀에서 주차 셔터를 열어 놓고 백색의 캔버스에 하얀 물감을 칠하고 나이프로 선을 긁어대던 박서보씨의 작품도 보였다. 그때 그의 작업은 꼭 허공 속에 손짓하는 것처럼 무의미해 보였다. 하얀 캔버스에 스친 나이프 자욱의 굴곡은 백색의 바탕보다 더 심심했으니까? 나는 작업을 하는 그에게 늘 묻고 싶었다. 미술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미술관에 걸린 박서보 씨의 작품은 갈색과 흑색의 바탕에 유화물감을 굳혀 옹이처럼 돋아난 구멍을 보여주고 있다.

추상이란 개념적으로는 구상을 단순화하거나 작가의 느낌과 사고를 응축시키는 활동이다. 그러나 나는 추상화를 보면서 아무 것도 추상할 수 없다. 단지 아름다움과 추함만을 감지할 뿐.

   2.

숙제를 위하여 어거지로 온 딸내미에게 그림이란 얼마나 심드렁한 예술인가? 딸은 배가 고팠고 <한국미술 100년>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조금 일찍 와서 천천히 미술이 주는 재미를 느끼도록 해주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대학 시절, 동네 꼬마들을 데리고 덕수궁의 현대미술관을 가서 얼마나 재미있게 그림을 보았던가? 나와 꼬마 둘, 셋이서 시작한 그림 감상은 끝날 때 쯤 우리 뒤를 이삼십명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림 감상이 주는 재미란 아름다움이 주는 기쁨 외에도  그림 속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 재미가 있다.

그림이라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꼬마 녀석들을 데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 가능한가를 실험했다. 놈들은 추상화이던 구상화이던 전시실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골라냈고, 시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작품에서 빛의 계절과 시간(오후 세시 등)을 알아맞추었다. 그리고 하나의 작품 속에서 작가의 실험 정신과 작품의 재료, 그리고 수채화의 자연스러움이 가져다 주는 아름다움과 유화나 조각의 견고함이 가져다 주는 안정적인 아름다움을 알아챘다.

나는 단지 놈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을 뿐이다.

“이 중에 제일 맘에 드는 그림이 무엇이냐?”
“이 그림은 몇월인 것 같니?”
“그럼 몇시쯤 되었을까?”
“그림의 여길 잘봐, 뭘로 그렸을까?”
“한 발자국 가까이… 그래 이젠 뭐가 보이지?”
“이 그림을 보니까 기분이 어때?”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그림 숙제를 한답시고 <소풍간 날>의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그런데 아들에게 그림이란 선생님이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숙제에 불과했다. 놈의 그림을 보니 나무는 딱딱하게 굳어있고 동산의 아이들은 모두 앞을 보고 꼼짝도 않고 있을 뿐이었다. 아내는 그 그림을 들고 와서 나에게 좀 그려달라고 했다. 나는 숙제는 아이가 하는 것이라며 아들 녀석을 불렀다.

“나무는 땅에서 부터 하늘로 자라나지? 그런데 네 그림의 나무는 하늘에서 땅으로 그려져 있지 않니? 한번 땅에서 부터 무럭무럭 자라난 나무둥치와 나무둥치에서 부터 팔을 뻗는 가지를 그려봐.”

놈이 크레파스로 땅바닥에서 하늘로 줄을 긋자 나무의 형체가 살아났고 그리기 훨씬 쉬워졌다는 것을 아들 놈은 이해한 것 같았다.

“아이들은 놀러가서 이렇게 뻣뻣하게 서 있지는 않았을 텐데…. 잘 그리려고 하지 말고 니 멋대로 아이들이 뛰고 뒹굴고 하는 것을 그려봐. 애들끼리 마구 겹쳐도 되고 모양이 엉망이라도 좋아. 소풍 때 신나던 기분을 그냥 그려. 빨간색,  노랑색, 녹색 아무거나 마구 칠해도 되.”

놈은 신나게 그렸고 그러자 엉성하기는 해도 그림에서 생동감이 넘쳤다.

그림이 끝나고 나서 “이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니?”하고 묻자, 녀석은 웃으며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지만, 그 후 놈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본 적은 없다.

   3.

즐겨야 하기 때문에 시간에 여유가 있어야 하며, 아이들과 함께 전시실을 돌아다니려면 초코렛과 김밥, 오뎅을 파는 곳이 곳곳에 있어야 하고, 아니면 지친 다리를 푹 쉴 수 있는 포근한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미술관 안에는 그런 장소가 터무니없이 빈약하고, 전시실 안에는 혹여 관객들이 작품에 손이라도 대지 않을까 하는 근심에 잔뜩 찌들은 미술관 직원들의 눈초리만 사납다. 작품이 다칠까 두려우면 작품을 유리같은 것으로 격리시키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미술관의 노동집약적 행정(쓸데없이 직원이 너무 많다)이 일반인이 감상을 통해서 예술과 친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오히려 해하고 있다.

딸내미와 함께 <한국미술 100년> 전에 들어갔을 때, “표를 잘못 사셨네요, 죄송합니다.”하는 태도가 아니라, “여기에 들어오면 안된다.”는 식의 직원의 자세에서 아름다움의 유희를 즐기러 온 사람의 기분은 그만 잡쳐버리고 말았다.

또 방학 숙제 때문에 그림을 보기 보다, 그림 옆에 작가 이름과 그림 제목이 쓰여진 그따위 것을 적어야만 하는 아이들이 불쌍했다. 그러려면 방학 숙제를 내주기 보다 학기 중에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 현장견학을 하면서 아이들이 충분히 그림을 볼 시간을 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4.

그림을 다 보고 난 후에…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목련
    오~으 ..여인님..미술관 다녀오셨나요?
    아직 저는 예술을 모른느것 같아요.
    하지만 그림을 감상하고 있으면 복잡했던 어제를 잊을수 있어 좋습니다.
    으 음 여인님의 귀여운 따님 이신가봐요.~
    귀여운 따님의 모습에서..여인님의 모습을 찾아보고 있습니다…눈이 닮았을것 같기도하고요.ㅎㅎ

    piper
    한줄 한줄 읽어가면서 그 장소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게 되네요.
    곧 가을이 오면 더없이 좋은 장소가 되겠군요.
    아래 사진속 주인공은 자녀분이신가요? v자를 한 얼짱각도의 가식적인 포즈가 아닌 편안함이 묻어나 있어 그런지 매우 인간적이고 포근한 느낌이 드네요..
    └ 여인
    예! 제 딸내미입니다. 저는 늘 땅꼬마라고 부르는 데… 요즘 키가 좀 컸습니다.
    그리고 말 안들으면 [봉자]라고 부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보다는 저를 쫓아다니길 좋아해서 할 수 없이 대중탕에도 데려가고 했는데, 그만 중학생이 되었고, 이 놈도 공부하느라 놀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는 아빠하고 뽀뽀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합니다.
    └ 목련
    말 안들으면 [봉자]라고 부른 다는 말씀에
    그만 웃음이 ^@^..~~ㅎㅎ 따님 귀엽고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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