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길이었다. 모든 것이 신작로의 타 들어 가는 햇빛마냥 하얗게 잊혀져 버릴 그런 것이었는 지도 모른다. 강화와 석모도 사이에 끼룩대던 가을날의 갈매기는 푸른 하늘 속에 잊혀지고 보문사의 마애석불에서 보이던 갯벌에서는 남은 물들이 뻘 사이를 질척거리며 바다로 향하고 있었고, 불볕 더위는 사그러 들고 석양이 다가오는 것 같아 성급히 외포리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아직도 하루가 꽤 많이 남아 있음을 알려주었다. 배를 기다리던 여자가 술을 한잔 하자고 했다. 술을 먹다가는 배를 놓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로 술을 먹겠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배를 놓쳤다. 어느 여관에서 잤고, 아무 일 없이 다음 아침을 맞이한 후, 신촌 로터리 부근의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커피를 한잔한 후 헤어졌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기억은 오랜 세월 속에 서서히 붕괴되어 가고 있어서, 그녀가 누구였는지에 대하여 흐릿하다. 대입될 수 있는 변수의 여인은 둘이다. 만약 A라면 그 날 배를 타고 석모도를 빠져 나와 늦은 밤에 그녀의 집 앞에서 헤어진 후 아쉬움을 간직한 채 합정동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B라면 다음 날 신촌에서 헤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내가 동시에 더블 플레이를 했다는 것은 아니다. A와 B는 서로 친한 친구다. A에 대한 나의 감정은 너무나 투명하여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B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A에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고, B 또한 내가 A에게 가지고 있는 생각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B와 나 사이의 우정은 늘 A에 대한 나의 뚜렷한 감정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사랑과 우정의 경계는 늘 뚜렷했고 서로 겹쳐질 수 없었다. 외면적인 기준에서 이런 나의 행동은 친구들을 혼돈스럽기도 하였는 지, 갖가지 소문들이 나의 주변을 떠돌았지만, B와 나는 개의치 않고 종로에서 술을 마시거나 명동에서 커피를 하면서, 하찮은 것들을 심각하게 이야기 하곤 했다. B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늘 A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와 그녀의 집으로 달려가 한두시간을 함께 보내다 돌아오거나 전화를 했고, 수화기를 통해 그녀의 나른한 웃음소리가 귀 속에 까르르하고 스미면 흡족한 마음을 간직한 채 잠에 들 수 있었다.

법주사로 간 것은 군대의 첫 휴가 때였다.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입대를 했다. A에게 전화를 할 것인가를 며칠동안 고민한 후, 그냥 입대를 했고 편지도 쓰지 않았다. A는 졸업을 하면 결혼을 할 것이라고 했고, 몇번 본 A의 어머니도 졸업만 하면 결혼을 시켜야 할 텐데… 하고 말하곤 했다.

딱 한번만이라도 마지막 입맞춤과 기나긴 포옹을 하고 싶었지만, 그냥 입대를 하기로 결정했다. 입대를 한 후 아무에게도 편지를 쓸 곳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가를 알았다. "애인 없습니다. 아닙니다… 애인 고무신 거꾸로 신었습니다.", "이거 형편없는 놈이네… 그럼 노래 일발 장진!", "노래 못 부릅니다.", "아쭈! 세상 좋아졌다. 신병 시끼가 노래도 못한다고…?" 박정희가 죽은 그 해 겨울은 십이십이를 지나며 신병의 발바닥 아래에서 깡깡 얼었고, 해동이 될 무렵에는 민과 군의 차이를 더는 인식하지 않았고, 육신의 피로가 한 개피의 담배의 맛을 일깨울 뿐 아니라, 서글픔과 그리움 모두를 무화시킨다는 것을 알았다. 앞 동산에 철쭉이 흐드러지는 봄날이 되었을 때. 사랑이란 배식판에 올라오는 일식삼찬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였고, 나는 용감한 군인이 아닌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를 부르며 구보를 하는 군바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봄이 깊어갈 무렵, 광주항쟁이 있었다. 대통령에서부터 참모총장과 사단장에서 연대장까지 줄줄이 바뀌는 와중에서도 국방부 시계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돌아가고 있었다.

입대할 때와 같이 휴가를 나와서도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방에 누워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 B 라며 어머니가 전화를 바꿔주었다.

"어떻게 휴가 나온 줄 알았어?"
"얼마 전에 혹시나 하고 집에 전화했더니 어머니가 오늘 쯤 나올 꺼라고 하셔서…"

그 날 오후 가발을 뒤집어 쓰고 시내로 나갔다. 총을 잡는 군바리의 빈머리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B가 가발을 쓴 나를 보자 피식 웃었다.

"한번 군바리 머리를 보고 싶어?"
"아아니. 그 얼굴이 그 얼굴 아니겠어? 니가 보여주기 싫어서 그렇게 나왔는 데 그냥 내버려둬."

다음 날 우리는 청주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랐고, 청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보은을 지나 속리산으로 가고 있었다. 그녀는 군대가지 전부터 나한테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법주사로 가야 해"라고 했고, 휴가 중 할 일이 없으면 법주사나 가자고 했다.

"너 A가 요즘 남자 만나고 있는 것 알아?"
"아니? 그 남자 멋있어?"
"만나보지는 못했는 데… 회사 다니는 사람인가 봐."
"옆 집에 살던 A를 좋아하던 그 친구는?"
"넌 꼭 남 이야기하는 것처럼 편하게 말한다. 너란 애는 알다가도 모르겠어. 우리가 보기에는 A에게 너는 과분했던 것이 아닌지 몰라… 아마 걔는 너처럼 자신을 좋아했던 남자는 다시는 못 만날꺼야. 그런데 군대간 지 한 달도 안되어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건지…?"
"너는 우리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당연한 것 아니었어?"
"오래 전부터 헤어질 것을 알고 있었어… 나도 함께 늙어가기를 바랬지.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A를 바라보면 슬펐어. 그렇지만 슬픔의 정체를 알 수 없었어. 그것은 행복한 때, 그러니까 함께 있다 보면 음악소리도 뚝 끊어지고,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닌지 모르는 순간이 찾아오거든. 그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 지는 모르지만 A를 다시 보면 웃음을 짖고 있었지. 그때 나는 그 웃음의 의미와 내용을 다 알 수 있었고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다가 다시 숨을 들이키는 것처럼 가슴이 뻐근해지곤 했어. 그걸 뭐라 할 말이 없어서 행복이라고 했고, 그 속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어… 그런데 막상 거기에 빠져들려고 하면 서글픔이 밀려오곤 했지. 그런 느낌은 한두번이 아니었어. 그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어 오랫동안 A를 안고 있기도 했어. 그러나 가셔지지 않고 점점 또렷해졌지. 그리고 나는 그것이 먼 훗날에서 밀려온 예감이라는 걸 알았어. 바로 (헤어짐)이라는 걸. 나와 같이 예감이나 그런 것에 둔감한 사람도 없을 텐데… 그 느낌은 너무 뚜렷했기에 막막하기도 했어. A와의 (헤어짐)이란 한 세계의 종말과 같은 의미였거든. 그리고 입대를 계기로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을 뿐이야."
"그럼 입대 전에 A와 헤어졌다는 거야?"
"아니, 그냥 내가 사라졌을 뿐이야. 지금 A가 한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는 조금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기쁘기도 해. 입에 발린 소리 같겠지만 그 남자가 A를 행복하게 해 주었으면 해. 그러면서도 A가 나를 기억해 주리라 믿지."

대한민국 군바리가 너무 감상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 하며, 말티재의 팔부능선을 버스가 부릉부르르응하며 오르는 소리에 다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여기에서부터 기억 속의 계절이 마구 마구 흔들리고 있다. 그때는 분명히 오월 아니면 유월이라고 생각이 되는 데 기억 속의 풍경은 가을 오후이다. 우리는 아담한 분지의 끝에 있는 정류장에 내렸고 정이품송을 지나며 한 십여분을 걸은 이후에 법주사 경내에 들어갈 수 있었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은 없었고 시멘트로 만든 미륵불과 세월 속에 색깔이 씻겨 내려간 팔상전을 보면서 가을 오후의 고즈넉한 햇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절 앞의 들은 평탄하고도 넓어 계절과 시간이 지나는 것을 다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끝으로 속리산의 문장대와 산능선이 병풍처럼 절을 둘러싸고 있었다.

드디어 저녁 예불이 시작되는 지 장삼과 가사를 걸친 스님들이 범종각으로 올랐다. 그들은 그 위에서 북채를 흔들거나 하면서 서로 웃거나 하면서 한동안을 보낸 후 <툭 툭 두두두 또로록>하며 목어를 치기 시작했다. 목어의 뱃속을 훑고 지나는 그 소리는 답답했고 가슴에 맺혔다. 그 후 바라를 쳤는 지 운판을 두드렸는 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목어에 얹힌 소리를 푸는 명징한 소리가 지났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제부터야."라고 B는 말했다.

스님은 법고 앞에 북채를 들고 섰다. 그리고 둥둥둥 북을 치기 시작하더니 탁탁탁 몸체를 두드렸고 가사와 장삼자락이 헐떡이기 시작했다.

법고는 마음 心 자를 그리며 두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북채를 막면 위로 동그랗게 가상의 심자를 그리면서 북을 두드려 댔다. 이미 둥둥둥하던 소리는, 소리와 소리가 얽히면서 퍽퍽하고도 무게를 지니고 북으로부터 와르르 와르르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나왔다.

갑자기 소리가 뚝 멈췄다.

분명 스님의 옷자락은 펄럭이고 북채는 북을 두드리고 있음에도 가람의 마당에는 정적이 내려 앉고 있었다. 그 정적은 길었다. 그러더니 하늘로부터 둥둥둥 북소리가 법주사의 들 위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스님의 북채가 북을 치면 칠수록 법고는 정적 속에 가라앉고 문장대와 입석대 사이의 천계 어느 쯤에선가 우담바라 꽃잎이 사바세계에 내려앉듯 북소리는 둥둥둥 너른 들판 위로 내려앉았고 해가 산 사면과 구름을 금빛을 물들이며 지기 시작했다. 소리는 하늘에서 투닥 투닥 거리기도 했고 때론 둥둥둥, 때론 울림없이 퍽퍽퍽하는 소리로 변하기도 했다.

스님의 옷자락의 펄럭임이 힘을 잃고 팔의 동작이 줄어들면서 삼천대천 세계에서 울리던 북소리는 서서히 사바세계의 법고 안으로 스미면서 다시금 법고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나는 그제서야 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자 삼천대천 세계를 향하여 범종이 끄와아앙~하고 울렸고, 맥놀이치면서 처연하게 우는 종소리 속에서 적정과 소리의 경계를 차마 가늠할 수 없었다.

산골의 밤은 그리도 쉽게 오는 것이어서 남은 빛을 밟아가며 숙소를 찾기 위하여 버스정류장 쪽으로 갔다. 솔가지가 타는 냄새와 뜸들이는 냄새가 끼쳐왔기에, 숙소를 정하기 보다는 식사를 하기로 했다. 평일 저녁의 식당 안에는 우리 둘 뿐 이었고, 술을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들에서는 가슴을 사각사각 파먹는 풀벌레 소리가 별빛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법고 소리는 어땠어?"
"신기했어. 네 말이 맞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소리라는...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 허구처럼 느껴졌어. 이 들을 둘러싼 산들이 악기고, 법고란 소리내는 악기가 아니라, 우주라는 악기의 종심에 있는 하나의 타점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어. 훌륭한 경험이야. 그렇게 절을 돌아다녔으면서도 법고소리는 이번이 처음이야."

정신은 말짱했지만 식당을 벗어날 때, 근육은 풀렸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근처의 여인숙에 숙소를 정했는 데, 도배는 깔끔했고 이불도 깨끗했다. 그러나 방에 들어서고 B가 맞은 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자, 그녀가 친구라고 해도 결국은 여자라는 사실로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만큼 내가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하야비치라는 보드카를 사왔고 B는 쥐포를 뜯었다. 우리는 냄새없이 독한 그 술을 씹듯이 삼키고 있었다.

"너는 무슨 생각으로 치마만 두르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대한민국 군바리와 여기까지 온거야?"
"가발을 뒤집어 썼는 데 군바리로 보이겠니?"
"그러면 남자로는?"
"그것은 오래 전부터 였어… 아주 오래되었지. 그러는 너는 날 여자로 본 적이 있어?"

한번도 여자로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어 가발을 벗었다.

B가 킥 웃었다.

"아주 오래 전에 너의 그 모습을 본 적이 있어… 문무대에 입소를 했다가 돌아왔을 때, 네 모습이 지금과 같았어. 너무 귀여웠지. 그런데 지금은 조금 허무해 보이기도 해. 뭐가 너를 허무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지?"
"아니. 난 한번도 허무해 본 적은 없어. 조금 피곤하고 우울할 뿐이지"
"그런데 말이야… 정말로 한번도 내가 여자로 보인 적이 없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러나 지금은 여자로 보이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B는 술을 홀짝 마시고 한동안 방바닥을 내려다 보며 손가락으로 뭔가를 쓰고 있었다. 그 손가락은 침묵의 무거운 추를 톡톡 건드리고 있었고 계속 마셔댄 하야비치는 위 속을 긁어대고 있었다.

"너한테 부탁이 있어…"
"뭔데?"
"이제 졸업도 몇 개월 남지 않았어… 졸업 후에는 강원도의 어느 학교 선생이 되어 있을 꺼야. 아빠가 아는 분의 학교지. 아마 네가 다시 휴가를 나오거나 제대를 할 즈음에는 나는 서울에 없을꺼구. 아마 이번 여행이 친구로서 너와의 마지막 여행이 될꺼야. 다시 만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어. 나는 알아. 네가 A와 헤어졌다는 것은, 너와 나의 아무 것도 아닌 관계, 치사하게 우정이라고 빙자한 허울 좋은 관계 또한 흐지부지 되어 버린다는 거지. 넌 나쁜 놈이던지 너무 이기적이라서 A와 너만 생각하지 남을 생각할 여유라곤 조금도 없었어. 나도 너와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믿었어… 아마 내가 여태까지 만난 어떤 여자애들 보다 남자인 너하고 우정이 깊었을 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 그런데 A가 군대간 너를 버려두고 그 남자를 만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네가 너무 불쌍했어."

불쌍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창 밖에서 벌레소리가 들리지 않고 바람소리 만 들렸다면 정말 내가 불쌍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벌레들은 짙은 밤을 깎아 새벽을 만들겠다는 일념인지 들판 이쪽 저쪽에서 소리를 질러대며 밤을 갉아대고 있었지만, 밤은 어둠 속으로 하염없이 밀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우정이 순구라라는 것을 알았어.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 나의 문제지. 네가 나하고의 우정을 견지하고 있는 지 아닌지는 나한테 이제 하등 중요한 게 아니야. 그렇다고 나의 마음을 너한테 펼쳐보이고 싶지도 않아. 그런 것은 니 멋대로 생각하도록 해. 비웃어도 좋아."

그녀의 말의 갈피를 잡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오랫동안 커다란 잘못을 해 왔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안고 등을 토닥거리며 "미안했다"고 말해 주어야 된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할 경우 그녀는 분명 울음을 터트리고 말 것 같아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마지막 부탁은… 딱 한번 만이라도 키스해달라는 거야."

너무 담담하게 그 말을 했고,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사랑해 달라는 것이 아니야. 나의 우정을 그것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것 뿐이야."

나는 주저하며 그녀를 껴안았고, 그 후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포갰다.

그녀의 가슴이 흔들렸고 나의 코 위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그 후 나를 밀쳐냈고, 그녀의 눈 주위가 벌겋게 눈물과 함께 타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잘못한 것 같아… 미안해."라고 그녀가 말한 후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이 흔들리며 기침소리와 같은 울음이 새어나왔다.

방문을 열고 마당에 내려섰다. 밤이 깊었는 지 벌레소리는 많이 줄어들었고, 나는 평상에 앉아 몰려드는 한기를 쓸어 내리며 하늘을 보았다. 별은 무의미한 지구의 하늘 위를 영롱하게 수놓고 있었고 밤은 한없이 깊어 별까지의 거리를 재어볼 수가 없었다.

첫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그녀와의 입맞춤은 아마 다시는 우리의 우정을 돌려놓지 못할 것이며, 내일 헤어지고 나면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그녀를 그립게 했다. 모든 것이 세월 속에 희미해질 것이며, 이러한 시간이 과거 속에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못했던 동화처럼 아득해져 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의 눈에서도 한방울의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2005/06/09 10:50에 旅인...face
2005/06/09 10:50 2005/06/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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