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1/15 15:03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언제나 그렇지만 나의 여행은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업무 상 갈 수 밖에 없기에 찢어진 시간 속에서 흘낏 엿본 것일 뿐이며, 전문적으로 가이드해 줄 사람도 없다.

처음으로 일본이라는 곳을 갔다. 그리고 일본의 햇살이 우리나라보다 투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센다이에 비행기가 착륙할 때, 바닷 가에서 야트막한 언덕 위로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다. 그 모습은 단정하고 한가했다.

공항에서 센다이 시내로 가기 위하여 버스에 올랐다. 나이 든 운전사는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버스를 몰았고 길 가의 집들과 공장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우리나라의 집과 공장과 큰 대차가 없었지만 단정했고 공터에서 허접쓰레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을 단순히 일본인들이 깨끗하고 근면하기 때문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센다이 시내에 들어서자 전형적인 지방 소도시의 모습을 보이지만, 우리 어렸을 때 처럼 주택들이 큰 길까지 나와 있다. 큰 길이 집 앞의 골목인 셈이다.

센다이 시를 돌아보면서 나는 이 도시의 원형을 추출해낼 수 있었다. 한국에서 그 도시의 오래 전 원형을 뽑아낼 수 있는 곳이란 얼마나 될 까? 전주, 춘천, 진해 정도일까?

다음 날 새벽 6시에 동경으로 가는 신칸센을 탔다.

두시간 정도의 수면을 취하고 탔지만 처음인 일본을 볼 수 있다는 흥분 때문인지 잠을 들 수 없었다.

해가 30분 일찍 뜨는 곳이라서 그런지 6시 30분 쯤 되자 해가 뜨기 시작했다. 남서 쪽으로 달리는 기차 속에서 본 일본의 대기는 1월의 잔설 속에서 투명하였고 뜨는 해의 빛깔은 명징했다.

내가 탄 야마비코 152호는 신칸센이라도 완행인 셈으로 모든 역에 정차했으며, 역마다 지방도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방도시는 잘 짜여진 거리 위에 주택가들이 골목을 따라 언덕 끝까지 이어지고 이른 골목 위로 자전거가 지나거나 사람들이 걷고 있었으며, 나무들이 담과 골목 사이로 보였다.

마찌(町)는 시가지라기 보다는 마을이라는 개념에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마을의 외연적 확대를, 역에서 본 도시 속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시는 마을을 파괴하였고, 파괴된 마을의 뒷골목에 빌딩과 아파트를 세웠다. 나는 내가 사는 공간과 아무런 역사적, 지연적 관계가 없다. 나의 마을에 대한 사랑이나 의무가 없고, 그 곳에 살면서도 이웃도 없이 홀로 고독하다.

마을의 세계는 거기에서 태어나고 옆 집 가게주인과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으며, 골목에는 내가 어렸을 적 그러하듯 나의 새끼들이 놀고 있다. 옆 집 강아지는 나의 발자국을 기억하며, 나는 때로 옆집의 담쟁이가 너무도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마을의 세계는 오래된 역사가 있고, 친구가 있으며, 이웃이 있다. 그 세계는 친숙하면서도 차분하다. 그러나 내가 사는 이 곳 서울은 마을이 없고 친구는 멀리 있으며, 이웃에게 마음을 터 놓을 수 없다. 그리하여 모르는 사람과 함께 하면서 적대적이며, 친화할 수 없는 뜨거운 세계이다.

노자가 소국과민을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삼았지만, 그것이 이 땅에 온존할 수 없다면 기능에 주안점이 두어진 도시가 아닌, 가족단위의 집(이에)에서 마을(마찌)로 다시 도시로 확대되어가는 형태의 도회지가 온존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일본의 그 도시들을 보면서 부러웠다.

일본인들의 친절과 행동이 사무라이 앞에서 살아남기 위한 형식적이고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길러진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경으로 다가가면서 맑던 공기는 흐려졌지만 한국보다 훨씬 깨끗했다.

오오미야를 지나면서 후지산이 보였다.

2005.01.13~01.14일

2005/01/15 15:03에 旅인...face
2005/01/15 15:03 2005/01/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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