識 ≒ 了別境識=前五識+意識(mano-vijnana)

意識은 前五識의 自證分

前五識은 眼耳鼻舌身(五根)과 色聲香味觸(五境)으로 구성됨. 이 前五識은 대상세계에 대하여 그 기능에 따라 개별화되어 있어서 그 전체적 自證의 기능을 갖지 못하며, 개별화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무분별한 방식으로 대상을 인식하고 따라서 대상을 了別할 수 없다.
前五識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이 前五識이 항상 동시에 작동해야 하는데, 이 동시작용 기능을 달성하는 몸의 기관을 意根이라고 부른다.
Kant적 해석을 빌리자면 前五識은 감성에 해당되고, 제 6식인 意識은 바로 悟性과 統覺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意識은 前五識의 무분별한 대상파악을 분별·정리·비교·추리·재구성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前五識은 현재의 事象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반하여, 意識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삼세를 統攝的으로 대상화하고 있으며, 기억·언어까지 포함한다.

* 감성의 다양성은 相分(laksana-bhaga)
* 그 다양성을 결합하여 대상의 인식을 성립시키는 悟性의 구상력은 見分(darsana-bhaga)
* 경험의 대상들을 종합하는데 의식을 통일시킬 수 있는 선험적 근거로서의 근원적 統覺은 自證分(saksatkari-bhaga)

물론 불교에서는 자기동일이라는 의식의 통일성, 즉 모든 현상들을 종합하는 이식으로의 통각 자채를, 알라야識을 고정불변의 본질 즉 自我로 오판하는 마나스(末那識)의 방식으로 간주한다.

唯識에 의하면 우리가 물리적 세계라고 부르는 대상성, 그 자체가 識의 소산이다.

識이란 그 자체로 고정불변의 실체적 이데아의 場이 아니라 기나긴 業의 축적에 의하여 주어진 本有種子의 藏識이며, 이 識은 끊임없이 대상과의 교섭에 의하여 대상을 먹고 자란다.
現行(나타난 세계)은 또 다시 종자를 훈습시킴으로써(現行熏種子), 新熏種子를 끊임없이 형성한다. 그러나 識 자체를 훈하는 대상 자체가 곧 공(法空)이며, 그것을 인식하는 인식작용(vijnapti)과 인식주체(vijnana)가 공(我空)이다.
所取·能取가 다 空이라면, 識 그 자체가 픽션이다. 즉 Kant의 오성의 구상력 자체가 픽션이다.

* 인도철학의 대전제 : 識 그 자체가 존재론적 규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轉識得智라는 式의 존재론적 차원의 전환, 해탈 즉 圓成實性의 구현을 위함임.

※ 씨와 나무와의 관계 : 아라야識 연기를 매개하는 種子(bija)로 설명

비자 즉 種子는 물질이나 물체가 아니다. 그것은 아라야識에 內含되어 있는 특별한 [힘] – 이것은 모든 존재를 生하는 힘이며, 그 힘을 內藏하는 藏이 곧 阿賴耶識(藏識)이다. 즉 一切種子識으로 그것은 異熟(vipaka)이며, 이숙이라 함은 과거세나 현세의 행위(業)를 因으로 하여 미래세에 果報가 생길 때, 그 과보가 因과 다른(異) 형태로 성숙(熟)함을 말한다.— 나무는 씨의 異熟

由假說我法 有種種相轉
彼依識所變 此能變唯三
謂異熟思量 及了別境識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