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월이 오면

사랑에 대하여 말을 말기로 하자. 창 가에 화분을 내어 놓고 노래를 들으니, 그냥 오월일 뿐이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참담하기도 하고 지하에서 더 내려간 신화로부터 길어 올린 무의미한 침묵일 뿐이다.

2. 새벽 그리고 2시 27분

도시가 죽어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나와 피로에 절은 눈동자로 길모퉁이의 우체통 앞에 서 있는 사랑을 찾아갔지. 예언을 하실 줄 아나요? 당신들의 언어는 예지를 그르칠 정도로 현란하지만 내가 아는 언어는 적어서 모든 것을 포괄해 버리지. 그것이 바로 선지자의 말. 앞 일에 대하여 입을 다문 채, 불면으로 식어가는 새벽을 맞이하여도 지혜는 없다고 했고, 숙취에 절은 냄새로 사랑도 잠들어야 하는 때가 있다며 과거는 덮어두라고 했다. 그 날, 밤은 가지 않았고 새벽 또한 오지 않았다.

3. 껍질과 뼈로 감싸여진

너를 안으니 갈증은 심해졌고, 입술을 찾았지만 슬펐다. 거친 세월이 우리의 겉을 스쳐 지났기에 육신의 껍질은 너덜거렸고 교만이 빠져 골다공증에 걸린 정신의 구멍으로 사랑은 새어버렸고, 그만 사막에 갇혀버렸다. 다가올 당신의 사랑을 위하여 모든 전생과 현생을 희생하였나이다. 그것이 저의 긍지요, 영광이었습니다. 당신께 퍼붓는 저의 사랑은 채워지지 못한 채 바닥으로 가라앉고 또 하수구로 빠져 버리는군요. 언제나 샘솟을 것 같던 저의 젊음도 당신의 유폐된 영혼의 미궁 앞에 흐트러지고 선홍 빛이던 영광의 사랑은 광야의 태양 아래 잿빛으로 꺼져버리나니 이제 내 생명이 당신의 품 안에서 사라집니다. 절 꼭 안아주세요, 마치 천년 같이. 한숨으로 애써 만든 마지막 눈물로 너를 포옹하였을 때, 그만 먼지가 되어버렸고, 생명을 잃었음에도 나의 심장은 벌떡이며 허무한 껍질과 뼈에 혈액을 채우고 있었다.

4. 쳔년이란

다시 생명을 얻기까지 천년, 그리고 사랑을 얻기까지 또 다른 천년의 입맞춤이 필요해. 주제넘게 자유가 그 이야기를 했다. 거울을 보고 있던 운명은 마지막 남은 안구를 꺼내 들고 처음부터 난 장님이었지 라고 말하며 모자를 썼지만 얼굴조차 없었다. 그래서 차마 그를 마주할 수 없었다. 그는 돌아서서 말했다. 너에게 세월은 허무하지만 운명이란 집요한 것이어서 천년은 무척 길기도 하여라! 생명보다는 중음을, 사랑보다는 증오를 바랄지어다 라며 거울을 내게 보였다. 거울은 순간과 천년의 천년이 포개지더니 깨어져 나갔다.

5. 청포도가 익어가기 위하여

포도넝쿨은 뿌리가 필요하고 뿌리는 포근한 대지와 지하에 흐르는 차고 감미로운 물이 필요하듯 나에게 열린 사랑은 너의 가슴에 깃든 진실일 뿐이야. 뿌리가 없는 열매는 과육도 씨도 껍질마저도 용납되지 아니하니 천년은 네 손 안에서 흐르고 나는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 자유란 위대한 구속. 너를 위하여 시를 쓸 때나, 피를 흘릴 때, 눈물지을 때, 가슴은 기쁨으로 번지나니 나의 눈으로 온 세상을 볼 수 없어도, 너의 눈동자에는 우주가 깃들어있어. 그것이 아름다움이었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웃었을 때, 더 이상 미소도 얼굴도 이름도 잊혀져 버렸다.

6. 아아 새들은

해협을 지나서 내륙으로 돌아와 자신의 깃털 속에 메마른 소금을 쪼았다. 애처롭게도 마지막 남은 빛이 되기에 사랑은 메마르지도 않거니와 추억은 허무하여 가슴은 아쉬움과 그리움에 바래고 너덜거리고 있다. 살아가는 동안 진실의 값은 얼마던가? 당신과 그것과 저자의 것에는 값이 있어도 저의 것은 아무 것도 아니올시다. 왜? 봄날에 꽃잎을 내미는 것이 진실이지만, 나의 생명과 죽음은 나의 것이 아니더이다. 그럼 사랑은? 제가 어찌 사랑을 키워낼 수 있겠나이까? 과연 너의 진실은 값이 없겠거니와 타인의 가슴에 고요히 내려 앉을 때 무상의 가치로 빛날지어다.

그리하여 우리는 뿌리와 진실과 애처로운 사랑을 메마른 부리로 부벼가며 태양과 고도와 시간을 맞이하노라

2005/05/23 22:05에 旅인...face
2005/05/23 22:05 2005/05/23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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