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17 17:42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스쳐지나는 거리의 모습은 거침없이 역행하는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 초라한 시멘트 담벼락 위로 잿빛으로 내려앉는 세월과 나무 창틀에 끼인 편지지만한 유리 위에 붙여진 조잡한 상호들. 그 안으로 어둠 속에 좌판이 놓여있고 질그릇을 손에 들고 창 밖을 내려다 보는 손님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저녁으로 서서히 달려가는 사람과 보도 위를 거니는 남루의 군중 위로 먼지끼인 석양이 내리고 있다.

그러한 오후 네시가 지나고, 차는 시장골목과 철물이 끼인 타일 건물들을 지난 후 새로운 거리로 들어선다.

거리는 낡은 시가와 달리 생경할 정도로 말끔한 색조를 보이고 있으며, 적색의 보도블럭이 깔려있고 주상복합의 건물들은 갑자기 몸집을 부풀리며 하늘 위로 치켜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거리는 인적이 드물어 공허하고 생기를 찾아볼 수 없다. 화려한 색조와는 달리 음울하며 추워보인다.

집과 건물들은 거기에 누군가가 살 때만 생기를 찾고 또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뚜렷한 부로 환원된다. 그러나 중국 도처에 널려있는 빈 집과 건물들은 무엇일까? 그것은 비약적인 성장의 그늘 속에서 인민의 부로 환원되기 보다 사생아처럼 버려지고 추악한 낭비라는 몰골로 투기된다.

낡은 거리와 새 거리가 융화하기엔 그동안 중국이 달려온 시간이 너무 빨랐는 지 모른다. 거리는 여기의 시대와 저기의 시대로 엄정하게 갈라지고 섞이지 못한다. 아마 또 많은 세월동안 시간이 퍼부어지면서 거리는 서로 버무려진 후 이웃하게 될 것이다.

닝보시의 모든 구석에 강이 흐르고 있다. 호텔 방에서 밤에 본 강은 어둠 속에서 도시의 희미한 빛을 받아 꿈결처럼 흘렀다. 새벽의 강은 식지않은 대기와 공해와 뒤섞여 아침 안개를 뿜어냈다. 해가 뜨면서 도시에 흩어져 있던 안개는 다시 강으로 흡수되고 바다로 흘러간다.

나는 호텔 밖으로 나가 강 가로 갔다. 그 강을 보면서 강에 대한 통념을 버려야 했다. 그곳은 강이 아니라 뻘의 길 같았다. 강은 먼 산에서 바다로 향해 오랜 여행을 하는 명징하고도 유장한 물의 여로가 아니었다. 단지 뚝을 따라 어기적거리며 밀려가는 혐오스런 흐름일 뿐이었다. 그런 강에도 배가 지나가자 물결이 일었다.

닝보(寧波)는 그 뜻이 조용한 바다 쯤 되리라. 그리고 5대 개항도시이다. 그러나 나는 바다를 보지 못했다. 단지 위야오와 스시로 이어지는 도시의 공로와 공업지역을 보았고 엄청난 크기로 이어지는 대륙을 보았을 뿐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감상도 일지 않았다. 메마른 대지와 죽은 듯 조용히 흐르는 수로와 같은 강과 개울들. 닝보의 거리 또한 길과 건물, 그리고 사람 이외에 무엇으로 이 도시를 설명할 것인가?

풍광을 이야기할 수 없기에 그들은 먹고 마시기를 즐겨하는 지도 모른다.

나는 이 흐릿한 도시의 밤 속으로 기어들어갔으며, 알 수 없는 저들의 언어에 피로감을 느꼈다. 미지의 밤은 나에게 적의를 드러냈고, 용의 민족인 그들은 타국의 언어를 받아들일 만큼 관대하지도 않았다, 나에게 자신들의 언어를 요구하였고 나는 그것에 무지했다. 그리하여 침묵과 눈치를 반죽하면서 내가 아는 중국어의 조각을 맞추어 보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환대해 주었고 나는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닝보에서 상해로 올라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가 타야 할 동방항공의 비행기는 아무런 예고없이 취소되었고 뒷 비행기로 나의 스케줄은 일방적으로 변경되었다. 아마도 손님이 없어서 항공사에서 일방적으로 항차를 취소한 듯 했다. 한시간 십오분이나 기다린 끝에 뒷 비행기의 출발조차 연기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짱꼴라 비행기는 어쩔 수가 없다고 서울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공항에 내려 버스정류장으로 가보니 막차가 남았을 뿐이다.

서쪽 끝에서 집이 있는 동쪽까지 깊은 밤을 지났다. 한강은 어둠과 교각에 비춰진 조명 속에 경쾌한 흐름을 보였고 강물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들과 산과 높은 건물과 낮은 집들이 어두운 밤 속에 조화롭게 도시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육백년 왕도의 실체를 보았다.

산이 있기에 하늘이 더 넓고, 강이 있기에 도시가 더 높으며, 자연과 인공이 제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 서울이었다.

2004.12.13~12.15일간의 여행

2004/12/17 17:42에 旅인...face
2004/12/17 17:42 2004/12/1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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