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22 16:14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포르모사(Formosa)는 아름다운 섬이란 뜻의 포르투칼어이다. 임진란 즈음 되는 때, 남중국을 떠돌던 흑선이 막강한 강국 중국 본토에 상륙하지 못하던 차에 만났던 타이완 섬은 그야말로 배멀미에 지친 선원들에게는 낙원과 같은 상하의 섬이었으리라.

그러나 타이완은 중국 역사 속에서는 영원한 변경이며, 첸수이벤 정권 하에서 양안독립의 이슈는 항오(홍콩, 마카오)식의 일국양제라는 본토 정부의 한마디에 우습게 희석되어버리곤 한다,

지난 날 타이뻬이와 기륭을 배회하면서 대만에 대하여 가진 기억의 편린은 누추함이었다. 그리고 좁아터진 호텔과 습기에 휩쌓인 도시를 기억하던 나로써 타이쭝의 방문은 또 다른 경험이다.

새벽 5시30분, 타이쭝 거리는 가로등의 흔적들이 거대한 거리를 모자이크하고 있다. 그 지루했던 타이뻬이와 달리 이 곳은 밝고 넓은 거리와 남국의 가로수들이 어울어진 도시이다. 12월에도 성하의 계절과 짙은 햇빛이 거리를 매우고, 곳곳에 빈낭열매를 파는 점포에 젊은 아가씨들이 끈없는 윗가리개를 하고 짧은 치마 아래로 늘씬한 다리를 내놓고 지나는 행인을 유혹하고 있으며, 호텔의 시설 또한 양호했다.

타이뻬이(따오유완)의 중정공항에서 객가(외래성씨의 광동지방 도래인)출신의 현채인과 한국화교 출신으로 대만에 유학갔다가 지점에 현채인으로 취직한 왕선생과 동행하여 남북 390KM의 중간지점인 타이쭝(台中)까지 고속공로를 2시간 가량 달렸다.

날은 밝았고 섬의 중앙 고산지대의 서쪽은 경사가 완만하여도 구릉과 평야가 서로 뒤섞이며 그 사이로 공로의 연변으로 집과 건물과 공장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도시와 농촌으로 구별을 할 논과 밭이라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산과 남국의 나무들이 한가하게 햇빛에 졸고 있었다. 서쪽으로 펼쳐지는 평야는 끝이 보일 것 같으면서도 대만해협 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가는 지 끝은 가물했다.

건물과 가옥들은 비록 오래되었으나 사람의 손 때가 끼여 생명감이 있었고, 한 여름이 지나서 인지 웃자란 풀이나 더위에 지쳐 방치된 오물과 허접쓰레기 등은 보이지 않았다.

타이쭝 시에 접어들자 한가롭던 풍경은 매연 속에 웅성거리며 일어나는 빌딩과 차량과 사람들의 소란 속에 홀연히 사라졌다.

하루에 세 곳의 고객을 만난다는 것이 피곤했는 지 일찍 잠이 들었고, 서울에서 일어나는 시각에 깨어났다.

날이 밝아오는 그 시각들이 좋다. 어둠 속에서 사물이 앞으로 걸어나와 자신을 형상해나가는 그 시간들이, 낮이 되었다고 기대할 것이란 없어도 시시각각 그 형상들이 깊이를 달리하거나, 모습이 온전해잘 때까지 사물들 속에 먹어들어가는 시간의 길이가 나는 좋았다.

대만 정부와 우리의 정부는 아니 양국의 국민들은 같은 불안을 갖고 있다. 그들이나 우리나 이미 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은 상실하였으며, 밥그릇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노골적인 불안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바로 중국에 기인한다.

양국의 자본가들은 말한다. 돈은 단 한푼이라도 더 남는 쪽으로 흐르며, 거기에 도덕도 윤리도 체제도 국경도 없노라고, 그리고 자신들은 시장의 신인 돈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일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전대를 두르고 메인랜드 차이나로 간다. 그리고 국내에 고여야 할 돈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자 투자가 위축되고 고용이 줄고 내수경기는 침체되고 또 자본가는 국내시장이 없는 곳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식의 악순환은 거듭된다.

돈은 냉엄한 현실이고 부의 공평한 분배와 윤리, 도덕, 애국은 이념적이다. 그래서 개선된 노동조건을 희생할 개인과 집단은 없고 자기의 적은 밥그릇을 갈라먹겠다는 노동자는 없는 반면 기회이익을 희생해가면서 애국애족적 차원에서 국내에 투자하라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1949년, 국민당은 본토에서 밀려나와 타이뻬이에 임시정부를 설치한다. 그리고 본토 수복의 그 날을 기다려 왔다. 그러나 대만의 85%의 인구를 차지하는 민남인(푸라오)과 광동(커자) 출신들은 독립을 말한다. 대만은 그들이 인식하기로는 단지 식민지였을 뿐이다. 명의 식민지요, 네델란드인의 식민지였고, 만청정부의 식민지였을 뿐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였고, 다시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끌고 온 외지인의 식민지였다고 그들은 인식힌다.

그들에게 식민지라는 것이 치욕이 되지 못했다.애시당초 그들의 정부와 민족이라는 배타적인 구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식민지 상태에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인권과 삶의 질일 뿐이었다. 그래서 민진당의 첸수이벤이 총통이 되었을 때 그들은 드디어 독립을 얻었다고 환호했으나 이제는 삶의 질이라는 문제에서 실망한다.

노무현이나 첸수이벤이나 도덕적일 수는 있으나 밥그릇이라는 현실문제에서 무력했다는 것은, 지난 총통 선거 시 총기피습 문제(조작했다는 이야기가 많았음)로 첸수이벤이 간신히 연임을 할 수 있었고, 최근 총선에서 민진당의 과반수 의석 미달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현실과 도덕이 화해하지 못할 때, 도덕은 사라지고 성매매금지법과 같은 타율적 강제성으로 변질된다. 그렇다고 도덕이 현실을 수용하고 타락할 수는 없다.

대만에 와서 루신의 책을 읽고자 했으나, 그가 저장성 샤오싱 출신이란 것 때문에 포기하기로 한다. 그의 책을 읽으면 현실과 도덕이 화해하지 못할 때 그 둘을 화해시키는 방법은 우선 민족을 상정하고 불의에 대한 분노이거나 정의에 입각한 혁명을 통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 불의와 정의를 가를 수 있는 냉엄한 잣대는 없고, 잘난 놈들은 자기가 빌붙어 먹고 사는 나라가 지겹도록 싫다고 국가를 초월하여 새끼를 낳는 즈음에 민족 또한 없다.

그래서 명분과 대의는 자칫 정략적 도구나 파시즘적인 구호로 비칠 수 있다. 그리하여 엄밀한 의미에서는 환상도 구원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거래선에서 시생산을 한 후, 남행하여 대만의 남단, 타이난(台南)으로 간다.

산은 적어지고 평야는 넓어진다. 그러나 아시아의 자본이 대륙에 투입되면 될수록 편서풍을 타고 날라오는 공해의 량은 비등한다. 삼모작이 가능한 타이난의 평원에는 대낮의 일조량으로 광합된 오존의 영향인지 안개도 아니고 스모그도 아닌 희뿌연 대기 속에 야자수와 활엽수 그리고 줄지어 선 빈낭나무들이 그림자로 스쳐지난다.

타이난의 낡은 도로는 어딘가 우리의 오랜된 길거리와 닮아 있다. 상점과 낡은 건물 그리고 낡은 차들을 따라 일모의 길 속으로 계속 남행하여 거래선으로 갔다.

일과를 마친 후 타이난의 옆에 있는 카오슝의 숙소로 가는 길에 대만의 공업지구를 보았다. 포르모사 그룹의 정유 콤비나트에서 불꽃이 치쏟고 정유탑에서는 수은등이 공허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제철소는 어둠 속에서 거대한 동체를 내보이며 차창을 스친다. 타이난에서 카오슝까지의 고속공도 주변으로는 끊임없는 공장의 불빛이 이어졌다.

카오슝에 도착하자 길은 넓었고 도시의 광채는 더욱 화려해졌다. 행정의 도시인 타이뻬이가 남루할 때, 대만 공업의 중심인 이 곳은 항구를 끼고서 불야의 성시를 이룬다. 타이쭝의 한낮이 12월의 여름으로 빛났다면 카오슝의 밤은 대만의 경제의 일면을 찬란한 빛으로 밝히고 있다.

85층인가 하는 건물의 62층에 숙소를 정하고 창 밖을 내려다 보았다. 다시 이렇게 높은 곳에서 잠을 자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카오슝의 시내는 감각의 끝까지 불을 밝히고 이어진다. 도시는 빛과 어둠이 서로 용해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디지탈 카메라가 있다면 대만에서 마지막 밤, 저 불빛들을 사각의 상자 속에 각인시키려 했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가 책을 샀다. 허름한 호프집에서 술을 한잔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호텔의 바에서 맥주를 한 후 이른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잠에 들었다.

비행기가 고도 일만피트에 달하자 안전벨트 싸인이 꺼졌다. 비행기는 내가 어제까지 남진했던 방향을 역으로 북진한다. 대만 고원의 산령들이 비행기의 윈도우 옆을 스쳐지난다. 대만에서 가장 높다는 옥산이 해발 3,950M이니 일만피트의 비행기 고도계보다 삼천피트가 높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령들은 아직도 푸른 빛이 감돌고 눈 아래의 평원은 상록의 빛을 잃지 않았다.

피로에 깜빡 졸았는 지 눈을 떠보니 어느덧 영종도 부근인가까지 비행기는 왔다. 땅은 생명력을 깊은 속에 감춘 듯 다갈색과 잿빛으로 변해있었고 인천 앞바다는 지친듯 잠잠했다.

어느날 봄이 올 것이고 대지는 노란색과 연두색으로 다시금 생명을 퍼올릴 것이고, 바다는 햇빛을 머금어 찬란할 것이다.

2004/12/22 16:14에 旅인...face
2004/12/22 16:14 2004/12/2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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