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공대 사태를 바라보며

1.

총이란 손에 쥐면 한번 쏘아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것은 총이라는 도구의 용도이기 때문이며, 치러지는 값이란, 총의 외관 혹은 수집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채워진 탄환이 공이치기에 맞아 폭발하고 탄두가 날아가 어느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아주 불길한 가설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총과 칼은 그 모양이 아무리 찬란하여도, 불길하고 금지되어야 할 폭력과 살해의 도구일 뿐이다.

2.

조승희, 그는 동포학생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포학생이라는 이 단어에서 우리는 무엇을 유도해 낼 수 있는 것일까? 그가 동포학생이라고 해서, 우리에게 그의 행동을 막을 법적 강제력이나 아니면 다른 대체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그는 엄연히 아메리카합중국의 법적 현실 속에서 이와 같은 참담한 사건을 벌였고, 기숙사에서 두명을 피살한 후 두시간 지난 후 강의실에 들어가 침착하게 무수한 사람들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한국계 유학생들이 마약을 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동포에 의한 제2의 조승희 사건이 벌어지지 않게 할 방도란 단지 미국으로 이민이나 유학을 가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3.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가 우리의 동포이기에 일말의 책임과 죽은 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총기를 난사한 범인이 우리 동포가 아니라면, 우리는 과연 책임과 애도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우리는 과거의 미국 내 학원에서 벌어진 총기사건들을 보면서 강 건너 불이라고 오히려 미국 사회를 비웃음으로 바라 본 것은 아니었던가? 지금 우리가 느끼는 동포로서의 책임감과 우리가 표하는 애도 또한 재수없이 한국계가 총을 쏘았고 자칫 잘못하면 우리나 교포들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지도 모른다는 계산 때문은 아닌가 모르겠다.

4.

이런 사태를 먼 나라 남의 나라 일인데 재수없이 한인동포가 끼어있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작금의 우리의 교육 현실을 되돌아 볼 필요가 없을까? 조승희가 외로웠으며 그의 내면에 알지 못할 분노가 치열하게 싹터온 결과가 이번 사태라면, 나는 우리의 학생들의 얼굴을 본다. 그들에게서 웃음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다. 자식들로부터 웃음을 빼앗은 것은 우리가 만든 교육 현실이 아닌가? 왕따와 학교폭력이 난무하는 우리의 학원에 총기소지라는 변수가 도입된다면, 어떠한 결과가 빚어질 것인지 나는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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