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5 21:22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그 날의 기행문을 마쳐야 할 것 같다. 적의와 같은 어둠과 변두리의 황폐함 속에 깃든 외로움과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했던 그 날 밤의 붕괴에 대하여, 마침내 불모를 벗고 봄이 다가오는 것을 뚜렷하게 맞이한 그 밤에 대하여, 더 이상 말하기를 그쳐야 할 것 같다.


비행기는 늦은 밤 대련에 도착한다. 그는 여행가방을 끌고 공항청사의 전면 유리에 새카맣게 몰려든 어둠을 바라본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자신이 가야할 주소가 적힌 쪽지를 꺼내 본 후,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홍콩에서 너무 늦은 비행기를 탄 것을 후회했다. 준공식의 초청장을 받은 다른 사람들처럼 인천에서 왔어야 했다. 밖의 어둠은 너무 깊어 유리창에는 청사의 안 쪽의 풍경만 하얗게 맺혔다.

탔던 비행기가 마지막 비행기였는지, 몰려나온 여객들이 청사 밖으로 몰려나가자 발걸음 소리가 점차 줄어들었고 마침내 한두사람의 구두소리만 또깍또깍 높은 소리로 텅빈 청사 안에 울렸다.

그럼에도 그냥 서서 그는 청사의 바깥을 응시했다.

환청인지 철커덩 철커덩 하고 청사의 안쪽에서부터 실내등이 한줄씩 꺼져가며 어둠이 청사의 출구 쪽으로 밀려왔다.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청사의 바깥으로 나갔다.

전력이 부족해서인지 가로등이 고장나서 인지, 국제공항 청사 밖의 가로등은 거의 꺼져 있었다. 동서남북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택시를 찾았다. 하지만 택시도 사람도 모두 어둠의 바다 밑에 침몰해 있었다.

보이지 않아 바닥의 돌에 걸려 몇번이나 넘어질 뻔했으나, 광장 가운데로 나가자, 광장 한쪽 구석에 불빛이 희미하게 맺히는 것이 보였다. 차의 앞유리인듯 싶었다. 그는 여행가방을 덜덜거리며 끌고 그 방향으로 갔다. 거기에 막 비행기의 마지막 손님을 놓친 택시기사들이 서성대고 있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호텔 주소가 적힌 쪽지를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들 중 하나가 택시요금인지 손가락을 펼치면서 뭐라고 소리쳤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택시에 올랐다.

택시는 대련시내를 벗어난 외곽도로를 달렸다. 멀리 대련시내인 듯 도시의 불빛이 하얗게 보였다. 하지만 택시는 어둠 속으로 어둠 속으로 하이빔을 켜고 달렸다. 때때로 도로 위를 뒹굴던 안개가 차의 앞유리를 스치고 지났다. 택시는 하염없이 달렸다. 당도할 목적지가 새벽이기도 한 듯, 운전기사와 그, 택시는 침묵하며 적의에 가득한 어둠을 향하여 달리고 달렸다.

마침내 가로등이 켜져 있는 고가도로와 다른 도로가 얽히는 교차점에 당도했고, 거기에는 '공업구'라고 쓰여 있는 이정표가 보였다.

거기서부터 드믄 드믄 가로등이 켜져 있었지만, 공업구 입구에서 부터 호텔까지는 멀었다. 공업구의 4월의 밤은 헐벗었고 탕빈 개활지나, 때론 어둠 저쪽에 흉칙스런 구조물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공업구의 중심에 가까워진듯 벽돌을 쌓아올린 이삼층의 획일적인 건물들이 이어졌고 그 가운데 OO야총회(夜總會)라고 네온이 켜진 건물도 보였다.

택시는 쪽지에 적힌 호텔에 도착했다. 하지만 프론트에서는 예약된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갔기 때문에 방이 없다고 했다. 방을 어떻게든 구해달라고 했으나, 방이 없다고 한 후 미안하다는 소리도 없이 프론트의 사람은 사라졌다. 프론트의 다른 사람들에게 왜 방이 없느냐고 했더니 프론트의 중국인들은 안됐다는 표정만 지을 뿐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간신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나, 길을 건너 십분 쯤 내려가면 호텔이 있다고 했다.

가방을 끌고 밖으로 나갈 즈음, 그의 등 뒤로 프론트에 있던 그 빌어먹을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공업구의 넓은 길 위의 가로등은 대부분 꺼져있었다. 십분 쯤 가면 있다던 호텔은 가도가도 나타나지 않았고, 안개만 도로 위를 뒤덮고 있었다.

간신히 호텔 불빛을 찾았고, 다행히 방을 구했다.

짐을 던져놓고 커피포트의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담배를 피웠다.

먼 곳의 밤은 황폐했다. 커튼을 열자, 창 밖에는 어둠이 적의의 눈빛을 번득였고, 도로 저편으로 가로등이 한두개 켜져 있을 뿐, 도무지 도시의 윤곽을 그려낼 수 없었다.

티브이를 켜자, 한국방송이 나온다. 우리 말이 티브이에서 나오자 이국이라는 느낌이 풀어지면서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그는 불을 끄고 한국방송의 푸르고 붉은 빛이 흩어져 내리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새벽에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

아침에 어제의 그 호텔로 가서 거래선의 공장 준공식에 가는 버스를 탔다. 가는 길에 바다가 보였다. 그 바다가 서해인지 발해인지 알 수 없었다. 언덕에서 보이는 바다는 맑았다. 봄이 다가오는 해안도로 주변은 헐벗은 대지와 메마른 초목들로 황폐했지만, 봄이 부풀어오르는지 바다는 푸른 빛으로 아득하게 멀었다. 밤의 안개는 사라졌고 공기는 투명하고 햇살은 따스했다. 해안의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조만간 입주될 빌라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분양을 위해 걸린 현수막이 펄럭였다.

준공식에 아는 사람이 있을까 둘러보았지만 없었다. 준공식이 끝난 후 호텔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했다. 합석한 사람들과 명함을 나누고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자신이 묵는 호텔에 돌아와 넥타이를 풀고 잠시 낮잠을 잤다.

깜짝 놀라 깨어나니 다섯시가 넘었다. 미열과 갈증으로 목이 탔다. 창 밖은 이미 컴컴해지기 시작했다.

입맛은 없지만, 저녁을 먹겠다고 거리로 나섰다. 이미 저문 도로를 따라 한동안 걸었으나, 식사를 할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가자 골목이 보였다. 골목의 양쪽으로 낡은 육십년대식의 식당과 주점들이 보였다. 한집 한집 들여다보며, 식사를 할만한 곳을 찾았다. 식사하기에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좁은 골목은 다른 골목과 합쳐지는지 갑자기 넓어졌다. 젊은이들이 골목마다 토해져 나와 거리를 메웠다.

거리에는 카페와 햄버거집, 호프집들이 늘어서서 현대식의 조명을 뿜어내고, 유리창 너머로 한껏 단장한 젊은 남녀들이 친구들에게 소리를 치거나, 웃으며 맥주잔을 높이 치켜세우곤 하는 모습이 보였다.

긍지에 찬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자, 자신이 이방인이며, 나이도 먹었으며, 게다가 혼자라는 것이 쑥스러웠다. 네온 불빛이 미치지 않는 골목 한쪽으로 물러나, 골목이 끝나는 곳까지 계속 걸었다. 더 이상 저녁이 문제가 아니었고 구경이나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선가 음악소리가 들렸다. 방향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을 흘러가는 곳을 따라 걸었다. 한동안 따라가니 골목을 채우던 상점의 불빛도 끝나고 어두웠다. 이 도시는 어둡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골목의 끝,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사라졌다. 그들을 따라 그동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눈 앞에 광막한 어둠이 펼쳐졌다.

어둠에 놀란 그는 흠칫 멈춰서서 한동안 어둠 속을 응시했다.

누군가 자신을 어깨를 부딪히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불현듯 자신이 낯선 땅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약간 외롭고 배가 고팠다.

어둠 저편에서 음악이 울려왔다. 음악소리가 나는 곳의 밑에 새끼손톱만한 전광판이 보였다. 너무 멀어 영상이 흐릿했다. 흐릿한 전광판의 빛 아래로 무수한 사람들이 벌레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고, 한가롭게 애인들과 산책을 하거나 롤러 블레이드를 타는 것 같기도 했다.

어둠의 밑은 광장이었고, 광장 위로는 어둠이 출렁였다.

미미한 빛 속에서 꿈틀대는 군중들을 보자, 포말처럼 사라져 버릴 어떤 정점에 자신이 다가왔다는 것을, 가슴 속을 채우고 있는 비릿한 외로움과 이 황폐하고 대지 위를 맹렬하게 채우고 마침내 터트리기 시작한 봄의 체취로부터 분명 느낄 수 있다.

온기는 맹렬했다. 어디에서 오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차디찬 바람 속에도 열정처럼 감도는 그 온기는 자신의 몸 속 깊이 스며들었다.

광장을 둘러싼 밤은, 별빛 한점없이 팽팽했다. 어둠이 자신의 어깨를 무한대의 깊이로 내리누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낯선 밤의 무게를 지탱할 자신이 없었다.

견딜 수 없어 미친듯이 광장의 안쪽으로 허겁지겁 기어들어가 사람들 틈에 숨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그 사람들을 끌어 안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모르는 이들의 체취와 대화를 들으며, 웃음소리들과 전광판 위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속에 몸을 풀어놓고 목놓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래서 광장 위 어둠에 휩쌓인 하늘을 보며, 그는 팔을 활짝 펼쳤다.

밤이 폭포처럼 무너져 내렸다.

광장의 건너편, 어둠 속에 높히 쏫아있는 탑 위, 밤의 한쪽 귀퉁이가 찢어지더니 가슴 속 깊은 구덩이 속으로 어둠이 해일처럼 쏟아져 내렸다.

숨도 쉬지 못한 채, 어둠이 외로움 속으로 쏟아져내리는 굉음들을, 고스라니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밤이 그의 가슴을 채우고 스쳐지나자, 온몸이 나른했다.

그를 스쳐지난 밤은 아직도 광장 위를 출렁이며 골목과 또 다른 어둠 속으로 스몄고, 어둠이 빠져나간 광장 위로 또 새로운 밤이 채워졌다.

봄이 다가오는 향기를 맡은 것 같았다. 그리고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허기가 몰려왔다. 내일이면 이 도시를 떠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비행기는 11시 30분이니까 늦잠을 자도 될 것이었다.

from20040409to20040410

2008/10/05 21:22에 旅인...face
2008/10/05 21:22 2008/10/0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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