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7 11:49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일본에서 맞이하는 날씨는 좋았다. 덥고 습하며 때론 태풍에 지진, 미칠 듯 하다는 주재원의 말에도 불구하고, 내가 맞이한 날씨는 환장할 정도로 좋았다.

하네다에 도착하자 비가 내렸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는 길은 어두웠다. 지하철로 갈아타고 가와구찌(川口)에 내렸을 때도 비는 을씬년스럽게 내렸다.

화풍(和風)의 일식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잠을 잤다.

비 개인 아침은 미치도록 맑았다.

시간에 맞춰 역으로 가야 했지만, 호텔 문 앞에 선 나는, 그 투명한 대기 속으로 선뜻 들어설 수가 없었다. 비린내가 날 정도로 맑은 하늘을 보자, 서울의 사대문 안에 전차가 다니던 그 시절의 햇빛이 떠올랐다. 그 시절의 하늘은 그토록 높고, 풍경은 뚜렷했다.

한가한 도로가 끝난 지점에 은행나무와 포플러 등이 아직도 잎을 간직한 채, 색이 바래고 있었고, 간혹 열차들이 철거덩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도쿄에서 후지산을 볼 수 있는 날은 몇일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시내로 가는 길에 아득하게 먼 저쪽에 후지산이 보였다.

거리

지하철을 몇번 갈아탄 후에 요가(用賀)에 있는 거래선에 가기 위하여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일본의 가지런한 골목과 거리를 보면, 소박한 풍요를 배운다.

관념 속의 일본은 닛뽄도처럼 서슬퍼런 적의를 품고 있는 반면, 내가 몸으로 만난 일본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혹자는 혼네(本音: 속마음)와 타데마에(建前: 겉으로 드러난 모습)가 다른 이중성 속에 그들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일본의 마찌(町)를 부러워한다.

도쿄의 번화한 건물보다, 햇빛과 함께 골목에 가득한 정적을 밟으며 거닌다는 것을 즐겁다. 마을과 거리가 오랜 시간동안 숙성되어 모나지 않고 차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좁지만, 차들이 골목을 침범하지 않고, 균열된 벽이나, 쓰레기가 보이지 않는 단정한 골목을 거닌다는 것은 즐겁다. 게다가 청량한 가을 햇빛이 그 위에 떨어지고 있다.

상담을 마친 후, 버스를 타고 시부야(涉谷)의 에비수(惠比壽)로 간다. 왕복 이차선의 거리를 버스는 급할 것 없다는 식으로 달렸고, 정류장에 버스가 선 후 노인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또한 급할 것은 없었다. 갓길 주차가 없는 관계로 도로의 소통은 원활했지만, 차들은 천천히 달린다.

서울에는 이미 은행잎이 다 져버렸지만, 여기에서는 노랗게 물들며, 몇잎의 낙옆 만 떨어질 뿐이다. 크게 자란 은행나무 뒤로 가을 하늘이 공활하다. 도쿄에 겨울이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은 듯하다.

거래선이 있는 에비스 가든 프레이스 타워의 38층에서 단정한 일식요리를 먹고, 창 가에서 도쿄를 보았다. 산이 없는 도시는 낮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심바시(新橋)로 간다. 역에서 내리니 긴자(銀座)가 보인다. 건물들을 따라 거래선을 방문한다. 우리나라보다 해가 30분 일찍 뜨는 이 곳은 저녁이 일찍 오는지 4시 30분이 되자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심바시에서 만난 고객은 재일교포다. 그의 말은 다급하고, 전에 한 말을 번복했고, 예의가 없었다. 그의 말은 나를 피로하게 했다. 아마 타국에서 사는 어려움이 그의 말을 거칠게 했는지 모른다.

신칸센(新刊線)을 타기 위해 동경역에 도착했을 때, 5시 30분. 날이 까맣게 저물었다.

마을

예전에 신칸센을 타고 센다이(仙台)에서 도쿄로 오면서 아침이 밝아오는 마을들을 본 적이 있다. 마을을 보며 부러웠던 것은 일본의 마을들이 전쟁이나 새마을운동 등으로 해체되지 않고 온존되어 왔고 지방자치제로 지역별 균형발전이 이루어져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마을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 부러웠다.

우리는 육이오를 거치면서 숙청이니 부역이니 마을이 찢어졌고, 1952년 동란의 와중에 형식적인 지방의회를 구성한다. 장면정부(1960~61)가 들어서면서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제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61년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대규모의 자본을 중앙에 집결하고 방대한 노동력을 경제발전에 투여하기 위하여, 박정희는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자치제의 효력을 정지시킨 후, 새마을운동이라는 명분 하에 논과 밭 사이에 서식하던 마을 사람들을 울산과 구로동 혹은 종삼, 오팔팔 등으로 내몬다. 그 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된 1995년까지 지방의 마을이란, 단순히 통일벼 증산의 현장이거나, 자식들을 버젖한 대학에 보내 서울에 살도록 하기 위해 땅을 팔아버리는 곳, 아니면 떠나야 할 곳, 사람이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후의 지방이란 이미 마을이 풍비박산이 난 상태로 새롭게 거듭날만한 경제력이라곤 없다. 아이가 없어서 폐교가 늘어나고, 노인네들만 남아서 푸성귀만 가꾸는 그 땅의 마을은 언젠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일본의 마을은 온존하다. 오랫동안의 지방자치제로 그 지역에서 배우고 벌고 살 수 있다. 그 지역의 대학을 나오고, 그 지역의 버젓한 기업에 취직하여 자신이 자라난 고장에서 출퇴근하거나, 가까운 도시에서 주말이면 마을에 가거나 할 수 있다.

일본의 살아있는 마을을 보면, 풋풋하다. 세상 어디에나 사람들이 들어차고 논과 밭을 갈아 살아가는 모습, 게다가 풍요롭고 행복한 삶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둠 속을 1시간 50분 가량 달려 센다이에 도착했다. 동북쪽의 군소도시임에도 인구가 백만을 넘는 이 곳의 밤거리는 시골처럼 촌스럽지 않고 도쿄의 어느 거리처럼 휘황하다. 하지만 거리의 바람은 동북지방이라 그런 지 추웠다.

여장을 풀고 어느 건물의 5층에 和屋처럼 꾸민 샤브샤브집에서 저녁을 했다. 어렸을 적 적산가옥에 살았던 적이 있는 나는 다다미며, 미닫이 문이 정겨웠다.

음식이 좀 짜기는 했지만, 고기는 달았다.

아침

아침에 일어나니 바깥의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창에 이슬이 잔뜩 맺혔다. 이슬이 서린 창 밖에는 아침이 웅장한 광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빛으로 가득하고 건물들은 빛을 받아 번쩍였다.

호텔의 5층에 있는 식당의 창 밖에는 일본의 정원이 꾸며져 있다. 조찬을 마친 후, 역으로 가서 지방의 전철을 탄다. 시내의 바깥으로 가는 열차라 그런 지 한적하고, 지나는 역사들은 아담하다. 지방의 촌임에도 스쳐지나는 주택의 모습은 단정하고 마당이 있어 햇볕이 좋다.

전철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한참을 가다 보니 10시인데 개울과 논 위로 늦은 안개가 피어오른다.

어제의 추운 공기 속에 이슬이 내린 논바닥에 아침 햇볕이 닿자 땅은 온기를 받아 부풀고 이슬은 해살거리며 풀리며 수증기가 되어 떠오르고 다른 수분들과 섞여 아침 안개가 되어 바람결에 떠돌며 들 저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유쾌한 영혼들이 재잘거리며 아침 햇살을 맞이하러 가는 모습이다.

좋은 아침이었다.

거래선은 단풍이 한창인 언덕 사이에 있다. 공장 건물이 자연과 그냥 한무더기라서 나뭇 잎 사이로 건물이 보이고 건물 사이로 산이다.

상담을 마친 후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귀국한다.

20081124~20081126 출장

2008/11/27 11:49에 旅인...face
2008/11/27 11:49 2008/11/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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