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9 09:22 : 벌레먹은 하루

정모의 풍경은 다리우스님과 유리알 유희님께서 속보로 생생하게 현장 보도를 한 만큼, 정모에 처음으로 참석한 초짜의 감상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영업을 한다고 하면서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늘 익숙치 않다. 사당역을 스치면서 유희님께서 쓰신 그 광장이라는 곳이 어딜까 하며, 시계를 본다. 6시 58분. 적당한 시간에 모임 장소에 도착할 것 같다.

적당한 시간? 늦지도 이르지도, 사람들이 다 모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허전하지도 않은 그런 시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마는 얼추 그런 시각이라고 생각했다.

골목으로 들어가 이화주막을 찾았고, 지하로 내려갔더니, 분명 레테의 식구인 듯한 분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레테에서 오신 분들은? 하고 묻고 있었다.

종업원이 가르키는 자리로 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레테의 식구들 속에 어떻게 섞이면 좋을까 싶었다. 자리로 가서 "저 여인이라고 합니다."하자, 명함을 나누고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투로, 사람을 만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내게, 레테의 가족들이 보여준 환대는 나의 기준으로는 소란이었다. 악수와 얼굴을 맞추어보기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 익숙한 이름들 그리고 보았던 글들에서 풍기던 독특한 느낌과 처음으로 만나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을 추스르고 정리하기에는 좀 시간이 필요할 듯 했다. 하지만, 손을 잡고 허둥지둥 인사를 하는 그 짧은 와중에도 아! 이분들은 모두 내가 잘 아는 분들이며, 오랫동안 한 공간에서 지내왔으며, 오래 전부터 나를 위하여 가슴 한켠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는 것을 쩌릿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리우스님이 비워준 자리에 앉으며, 왜 내가 레테의 식구들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하고 꺄웃했다.

하지만 안다와 모른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믿음이라는 것, 안다고 생각하면, 아는 것이고, 모른다고 생각하면, 모르는 것임은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느 날인가 수학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시험을 망치기 시작한 것처럼, 예전부터 한 작가의 글을 수없이 읽었음에도 그의 사진을 대하기까지 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작가로 치부하게 되는 것처럼, 나는 레테의 식구들을 모른다고 그냥 생각해 왔다.

익명의 저편,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환한 것처럼, 레테의 식구 각자의 삶이 투명함에도, 아득한 공간을 건너온 통신부호, ㄱㄴㄷㄹ... ㅏㅑㅓㅕ들이 글자를 만들고, 의미를 만드는 그 기적같은 화면을 바라보며, 레테의 식구들이 나와는 다른 행성의 이질적 풍경 속에서 전혀 다른 생활 속에 깃들고 있다고 생각만 했지, 각자의 생생한 실존으로 살아가는 보편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기에는 나의 상상력은 너무 빈곤했거나, 아니면 터무니없이 조궤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도올은 Homo-Momience라는 말로 인간을 규정하면서, 몸(Mom)은 肉으로써의 몸과 魂으로써의 맘(마음)이 중첩된 개념이며, 몸을 떠난 마음도, 마음을 떠난 몸도 더 이상 몸은 아니라고 한다.

그동안 레테의 속에서 마음이 글로, 다시 글이 0과 1로 환원되어 인터넷을 배회하다가 다시 글로, 마음으로 가역되는 그 시간동안 이미 마음들을 나누어 왔다는 것, 그리고 이 자리의 만남은 그동안 나누어 왔던 추상의 마음을 구체의 몸과 결합시키는 하나의 랑데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마침내 오랫동안 함께 자리를 해왔던 것처럼 식구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있었다.

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정신을 차리자, 그제서야 정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곧장 오다 보니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쌩뚱맞은 넥타이 차림이었지만, 다행히 자유인님께서 양복을 입고 오신 바람에 어색한 차림이 무난해졌고, 다리우스님께서는 호스트로써 본인보다 식구들을 먼저 챙기시느라 좀 바빴다. 유희님께서 본인과 자유인님 그리고 내가 같은 나이라는 말씀을 해주시니 이상하게 자리가 흔쾌해지는 느낌이었다.

또 멀리에서 오신 그라시아님께 고향(부산이 고향임) 소식을 묻고 싶었지만, 자리가 멀어 묻지도 못하고 따스한 미소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샤론님께서는 저 때문에 한쪽 구석으로 몰려가시게 되었지만, 이러저런 말씀을 해 주셔서 마음이 푸근했다. 아마 그 후 라마님 등장? 평소 글의 '칼있으마'와 다른 해맑은 미소로 들어오셔서 증말 라마님 맞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했다. 그리고 솔바람님이 들어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좋아하시는 외수 형님과 전혀 사맞지 아니한 용모(이상한 현상은 외수형님께서 통상 예쁜 처자들을 팬으로 보유)로 다소곳이 들어와 카메라와 관련된 저간의 불행한 사태를 말씀하시는 사이, 스테판님이 오셨다. 하지만 처음 식구가 된 후에 올리신 글을 그만 읽지도 못하고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죄송했다.(지금은 다 읽었습니다. 댓글은 이 글 다 쓴 후에...) 그리고 트루쓰님이 오셨는데, 너무 멀어서 목례로 인사를 나눌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비에벨님이 훤칠한 키에 잔잔한 미소로 들어와 처음에는 좀 넓지 않은가 하던 자리를 꾹꾹 눌러주셨다.

몇시에 자리를 파하고 이화주점을 나왔는지 모른다. 아니 그만큼 주어진 시간을 짧았고 할 이야기는 많고 듣고 싶은 것은 많았다. 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스테판님의 모나리자 이야기를 필두로 지그재그식으로 자기 소개를 했지만, 글을 쓰시는 분들께서 자신의 글을 형상화해 가는 그 이야기들을 잡아내기란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래서 아쉬운 모임의 시간을 끝내고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가득히 정을 담고 노래방으로 자리 이동. 선후천적으로 노래에 알레르기가 있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 노래를 부르는 사고까지 치고, 또 기분좋게 라마님이 이끄는대로 삼차. 라비에벨님을 먼저 보내고 술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니 보통 내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에 가까운 새벽 4시 반.

아내는 어디 여자 나오는 술집을 갔다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무슨...? 그저 좋은 사람들 만나서 기분좋게 보내다 보니..."
"아무래도 이상해? 근데 견디지 못하면서도 밤새도록 술은... 속은 어쩌려고?"

술김에 어지럽고 졸려 침대에 무너지면서도, "까짓 것 때론 속도 베릴 수 있지."라며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치 도리원에서 술 잔치를 벌였던 이백처럼...

"떠도는 이 삶이 꿈과 같으니, 즐거움이 될 것이 그 얼마더냐? 옛 사람들이 등불을 잡고 밤나들이 하던 것은 정말로 그 까닭이 있나니..."

정말 그랬다. 모르는 사람으로 모임에 나가, 겨울이긴 했지만, 이백이 序한 봄 밤에 열렸던 도리원의 잔치(춘야연도리원서)를 즐기다 온 기분(술김 포함)으로 레테의 식구들을 그리워하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너무 늦은 후기 죄송합니다.

2009/01/19 09:22에 旅인...face
2009/01/19 09:22 2009/01/1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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