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1.

이명박 정부를 까는 영화라고 누군가 말했다. 영화를 보면서 어디가 이 정부를 폄하하고 있는가를 찾아본다. 그러나 서울 시장에게 누군가 똥을 던지는 장면 외에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는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1柳永哲(1970년생)은 2003. 9월부터 2004. 7월까지 20명을 연쇄 살해한다을 모티브로 찍었다고 한다.

유영철이 잡혔다고 발표된 날은 휴일인데 비가 내렸던 것으로 기억난다. 아니다. 유영철은 그 전에 잡혔고, 유기된 시체들을 발굴하던 날 비가 새까맣게 내렸는지도 모른다. TV는 경찰차들이 시체들을 묻었다는 봉원사 부근 야산에 앵글을 맞추고 있었는데, 야산 밑 공터에는 경찰차와 몰려든 방송국과 신문사의 취재차들로 얽혀 있었고, 차들과 야산 위로 하루종일 장마비가 쏟아졌다. 야산은 질척거렸고, 유기된 사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빗물에 뒤섞여 온 산을 물들일 것만 같았다. 때론 토막난 사체의 일부가 여름 장마비에 씻기어 토사와 함께 흘러내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하루종일 TV에 눈을 주고 있었음에도 유기된 시체의 발굴 소식 만 전해질 뿐, 발굴장면은 나오질 않았다. 휴일 내내 유영철이 어떻게 그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는가 하는 방송이 계속됐다. 신사동과 노고산동 등의 지명이 나왔고, 보도방의 업주 의 신고로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런 보도를 들으며, 유영철의 집에 있다는 목욕탕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피를 흘리며 가공할 만한 공포에 휩싸여 죽어간 여자들의 시시각각들이, 파편처럼 나의 가슴 속을 쑤시고 들어왔고, 벌어질 수 없고, 벌어져서는 안되는 일들이 그만 현실로 드러나고야 마는 이 사회를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 쓴 사이로 잔혹한 살인자, 유영철의 섬뜩한 눈빛이 잠시 브라운관에 떠올랐고, 사람들은 인간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고 했다.

으스스했던 그 해 7월의 말, 폭양 아래 스산한 기억이 사라질 즈음에, 인간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는 무심한 사람들의 질문에 대하여 누군가 “인간이기에 그런 짓을 하지 동물들은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인간이라는 종의 잔혹성에 대하여 경고를 올리는 글을 보았다.

그의 글은 불행하게도 사실이다.

유영철은 반사회적 인격장애(Psychopath)라고 한다.

이들 싸이코패스는 다른 사람의 슬픔을 판단하지 못하고 살인을 저질러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공격성을 억제하는 분비물인 세라토닌의 생성이 부족해 사소한 일에도 강한 공격성을 보인다고 한다.

싸이코 패스의 내용을 좀더 살펴보면, 후회나 자책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무책임하다고 한다.

불란서 혁명의 불씨를 지핀 마리 앙뚜와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굶주린 민중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런 앙뚜와네트의 무책임한 언사 속에서 타인의 슬픔에 대한 불감증과 극도로 자기중심적인 일면을 찾아볼 수 있다. 마리도 반사회적인 인격장애로 혁명의 불을 지핀 것은 물론 단두대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마리 앙뚜와네트와 같은 인격장애를 금번 인사 청문회에 출석한 인물들의 언사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무책임함은 남대문 화재 때의 책임전가와 안상수 원내대표의 개혁의 발목 어쩌고 저쩌고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청문회 때 출석한 인사들의 표정이 어째 지영민(하정우 분)의 표정을 닮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청문회에 나온 인물들의 부동산 투기, 자녀들의 국적 문제 등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보면, 반사회적이라는 것을 뚜렷이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정신병도 아니고, 뚜렷한 치료방법이 없다. 단지 처절할 정도로 냉혹하고 잔인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살해의 방식이든, 자신의 존재방식이든 말이다.

2.

이 영화의 연기는 치밀하다 못해 너무 자연스러워, 영화를 보면서 엄중호(김윤석 분)가 달리면 나도 숨이 찼다. 그리고 “안 팔았어요. 죽였어요… 근데 그 여잔 아직 살아있을걸요?”라고 날 잡아잡수, 판을 벌여주었는데도 입건할 증거 하나 잡아내지 못하고, 숨가쁘게 흘러가는 12시간은 보는 사람의 진을 빼는 멋진 기획이었다. 그리고 경찰의 우지근 뚝딱식 단순무식한 대응은 우리 사회가 고속도로는 쭉쭉 뽑아낼 수 있어도, 아직도 선진화되기에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홍진 감독은 좀 심술굿다. 김미진(서영희 분)을 간신히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놓고, 다시 지영민으로 하여금 살해하게 하다니…? 혹시 나감독도 싸이코 패스?

나감독, 망원동을 내가 좀 아는데, 망원동에는 그렇게 높은 언덕은 없다. 그것 말고 흠잡을 것 없는 영화!

3.

연차를 쓰라는 회사의 성화에 갑자기 쉬게 되어 간 평일의 극장은, 관객 300만 동원이라는 어마한 숫자에 비하여 <추격자>를 하는 우리 동네 극장의 9층 10관 안에는 스무명이 안되는 관객이 영화를 보았다.

참고> 추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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