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사라진 금서

책을 사다보면, 자신이 읽으려고 하던 것과 전혀 다른 책이라는 것을 알 때가 있다.

몇장을 읽고 나면 읽으려고 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임을 안다. 전혀 엉뚱한 책을 샀다는 것에 실망을 하면서도, 혹시 그 안에 뭔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갖고 읽는 경우가 있다. 결국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난 후, 책값과 함께 시간낭비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셔널 지오그랙픽의 <유다의 사라진 금서>라는 책이 명백히 그 예에 해당된다.

유다복음서의 내용과 함께 현존 성경과의 연관관계,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열어줄 새로운 관점들에 대하여 기대를 걸었다. 아니면 고문서의 복원과 관련된 이야기라도 얻어보려고 했던가, 이 복음서가 초기 기독교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고 느낀 점은 변죽을 울렸다고나 할까? 그보다 못했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내가 알고 있는 수준에 훨씬 못미쳤다.

그렇다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싸잡아 욕할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유다복음서 뿐 아니라, 포함되어 있는 ‘차코스 코텍스’ 1프리다 차코스 누스버거가 갖고 있던 유다복음서와 함께 발견되었던 코덱스들 의 내용이 ‘나그 함마디(Nag Hammadi) 문고’ 2이집트의 나그 함마디(Nag Hammadi)에서 발견된 영지주의 코덱스들로 그 양이 많아 문고라고 함 에 포함된 코덱스(Codex)에 비하여 엄청나게 빈약하여 학술적으로 그다지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2. 책을 쓴 허버트 크로즈니라는 작자는 유다복음서의 내용에 대하여 학술적으로 접근할 능력이 부재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유다복음서의 출토에서 분실, 다시 발견해내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취재했을 뿐이다.

3. 발라먹을 살이 별로 없는 유다복음서를 갖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어떻게 든 상업화하여 돈을 벌어보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어떻게 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유다복음서의 출판에 있어 독점권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이집트의 엘 민야에서 이 코덱스가 발굴되어 카이로의 암시장에서 거래되다가 분실되고, 미국, 스위스 등지의 은행금고에서 어떻게 부패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게다가 프리다 차코스 누스버거라는 스위스의 골동품 거래상을 유다복음서의 수호신으로 성녀화하고 있는데, 내가 볼 때는 좀더 비싼 값으로 팔아볼까 하다가 더 이상 자신이 갖고 있을 경우 썩어 먼지가 될 것이 뻔하자, 할 수 없이 코덱스를 메세나 재단에 보관을 의뢰했을 뿐이다.

이 책은 유다복음서가 그노시스의 한 분파인 카인종파의 코덱스라고 한다.

유다복음서는 180년경 리옹의 주교 이레나이우스의 이단반박(Libros Quinque Adversus Haereses)이라는 논문에 거론되고 있다. 이 리옹의 주교의 글을 보면서, 후대 학자들은 그노시스파들을 이단으로 몰아가기 위하여, 배신자 유다의 이름으로 된 복음서라는 것을 임의로 날조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레나이우스가 이 유다복음서가 카인종파의 문서라고 하며, 카인종파가 오파이트파(拜蛇敎)의 일파라고 한다.

당시 영지주의 오파이트파 중에 셋파나 여러 분파가 있었다는 것에 대하여 다른 저작물을 통하여 알 수 있으나, 카인종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영지주의가 아무리 신비를 추구하는 소규모 분파들의 종교활동이라고 하더라도, 그 분파의 이름에는 교조의 이름이나, 그 종파가 연유한 신학에 입각하기 마련이다. 과격한 오파이트파나 다른 분파의 경우의 이름에도 명백히 논리(신학)적 백그라운드가 있다.

반면 카인종파의 경우는 그런 이름을 가질 신학적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카인종파에 대한 언급이나 자료가 없음에도 이단반박에 거론된 것에 대하여, 아주 미미한 영지주의 분파이거나, 아니면 이레나이우스가 그냥 지어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사실 카인종파라는 이름은 기존의 기독교 종교활동에 불만을 가진 반동적 치기이거나, 소집단의 영웅주의가 아니라면 만들어질 수 없는 종파이름이다. 그리고 강력한 영적 지도자나 신학이 없다면, 종단을 이끌어가기란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강력한 신학적 백그라운드와 영적인 리더쉽을 갖추었다면, 호교론자들의 저작 속에 자주 등장했을 것이나, 그렇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카인종파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리옹의 주교가 허위로 문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라, 유다복음서의 내용이 어느 분파의 저작물인지 분명하지 않아, 버림받은 인물, 카인을 따르는 자들의 저작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다+카인=이단>이라는 공식은 멋지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는 갖추고 있다.

책에서 소개한 유다복음서의 내용은 유다가 예수의 가장 사랑받는 제자였으며, 예정된 십자가 처형을 위하여 예수가 자신을 팔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 정도 밖에 안된다. 중요한 것은 예수가 유다와 은밀한 대화를 통해서 유다에게 전달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 가르침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한마디로 헛다리 만 벅벅 긁다가 끝난 책이다.

참고: 유다복음서, 오파이트파

참고> 유다의 사라진 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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