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증 유발자들

1. 나란 인간

나란 인간은 속물이다. 사회의 단물을 어떻게 빨아먹을까하고 심각히 고민하면서도, 고기를 다 발라먹은 뼈다귀 정도는 남한테 줄 수 있는 관용은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쫌팽이다. 빨아먹지 못한 세상의 단물을 내 새끼가 독식할 수 있도록, 지도 육성하고 싶은 대한민국의 학부모이다.

최근 몇달동안 나는 나와 편차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 논 우리 사회의 한부분들을 만났다. 그런 것들이 우리가 만든 사회의 실상임에도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2. 봉사활동과 각종 사회활동 및 대회

봉사와 사회 활동은 더 이상 자발적이고도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입시나 취직에 필요한 경쟁요소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봉사와 사회활동도 능력있고 돈있는 사람들의 점유물이 되었다.

아이들의 봉사활동이나 사회활동은 자발적이거나 이타적인 사회공헌이라기 보다, 성적을 따듯 지겹지만 할 수 없이 해야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기생하여 학원이나 단체들이 생겨난다.

3. 영어웅변대회

딸내미를 데리고 사단법인 세계XX교류협회에서 하는 영어웅변대회에 갔다. 아이들이 3분씩 영어로 웅변하고 내려갔다. 그리고 2~3시간 후면 시상자 발표 등도 없이 대상, 우수상, 장려상이 대회장 앞의 벽에 게시된다.

그 자리에서 시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발표와 시상을 할 경우 수여할 상장 및 부상이 형편없다는 것 때문이라기 보다, 시상식이 이루어질 경우, 웅변을 시키고 참가비를 챙길 시간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 아이들이나 학부모 또한 상장과 부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단지 수상을 했다는 사실이 진학에 유리할 것이란 생각 밖에는 없다.

대회장에는 각 지역의 영어웅변학원의 아이들이 떼거리로 와 있다. 어느 학원에서는 아이가 단상에서 웅변을 하면 학원 선생이 단상의 맞은 편에서 원고를 보며, 큰소리를 내라, 천천히 말하라고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지휘를 하듯 손을 휘둘러대고 있다.

대회장 문은 활짝 열려있고, 꼬마들이 객석 안을 뛰어다니고, 웅변이 끝난 아이를 만나기 위하여 부모가 아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등, 개판 오분전, 돗떼기 시장이다. 다른 아이들이 연설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 객석의 소란에 대하여 주최 측은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얄팍한 사기에 휘말려 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그 대회에서 영어로 웅변을 잘한 아이가 대상을 거머쥔 것은 사실이다.

사기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 때문이다.

  • 공신력없는 단체이면서도, 그 단체의 영어웅변대회에서 상을 받으면 혜택이 있는 것처럼 인터넷 등에 그럴 듯한 광고를 하고, 참가비를 받아 이문을 챙기고 있다.

    <한국문화홍보를 위한 미국공연 한국학생 대표단원 선발 겸 제 OO회 대한민국 학생영어말하기 대회>라는 무지하게 긴 명칭에도 불구하고, 앞의 대표단원 선발과 하등 관련이 없고, 선발이 된다고 해도 미국공연에 대한 언급은 없다. 완전히 내 돈내고 상 따먹기 대회인 것이다.

    하지만 대상을 받은 트로피와 상장은 참가한 아이의 해당학교로 보내주는 성의는 잊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트로피와 상장을 보내기에는 너무 형편없어서 집으로 보내준다.

    학교장은 단체의 공신력 등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그럴듯한 이름의 단체로 부터 온 트로피와 상장을 월요조회 때 학생에게 자랑스럽게 전달한다.

    딸내미는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집으로 배달된 상패에는 수상자의 이름도 없는 조악한 것이다.

  • 학원은 신문사나 공신력있는 단체에서 개최하는 웅변대회에서 학원 아이들이 입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런 돈내고 상 따먹기 저질 쇼에 아이들을 참여시켜 상을 받도록 함으로써, 부모의 만족도를 높히고 학원의 위상을 올린다.

  • 부모나 아이들도 공신력이나 대회의 위상보다, 쉽게 상이나 타고 남에게 “우리 딸내미가 영어웅변대회에 나가 이런 상을 타지 않았겠어요?”하고 자랑할 수 있으면 좋고, <어느 영어웅변대회에서 우수상 수상>을 했다고 수상경력에 쓸 수 있는 빌미를 마련한다. 그도 저도 아니면 염가에 아이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주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 이 단체는 다음 주 일요일에는 대전의 그럴듯한 건물의 회의실을 빌려 또 대회를 열고 참가비를 챙기고 예상경비를 계산한 다음, “이번에는 남는 것이 한푼도 없어서 큰일이군.”하고 씨부린다.

결론은 이 대회를 주관한 단체는 물론, 참가자 모두가 이런 저질 쇼를 유용하게 즐기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것도 모르고, 남들은 학원에서 연설문을 써주고 했는데, 우리는 딸 아이에게 영어로 문장도 만들게 하고, 연습도 시키고 해서 데려갔다. 결국 우리는 완전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바보가 된 셈이다.

4. 청소년 통역 봉사활동

학생들인 만큼 면접은 일요일에 가질 계획이라고 해서, 어느 일요일에 서울의 반대편에 있는 공원 옆의 OOO연맹으로 딸내미를 데리고 갔다.

면접대기실까지 딸아이를 데려다 주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건물 내에는 어른이 한명도 보이지 않고, 고등학생들만 우리를 안내하고 접수를 받고 있었다.

딸 아이의 면접 때까지 한시간 가까이 남았으나, 건물 안에 부모들이 대기할 곳이 없었다. 건물 밖의 벤치는 부서져 있어 서성이며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서성이며 현관 옆 경비실 안을 보니 경비는 보이지 않는다. 경비실 안은 넓었고, 책상과 함께 그럴듯한 소파까지 갖추어져 있다. 왠만한 회사의 중역실의 풍모를 갖춘 경비실이다.

면접을 마치고 나온 딸아이에게 면접은 누가 보았냐고 물었더니, 예상대로 고등학교 언니들이 보았다고 한다.

“선생님이나 어른들은?”

“없었어. 근데 그 언니들 영어 딥다 잘해.”

아이와 집으로 오면서, 나도 OOO연맹 같은 곳에서 한번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 평일에 아이들의 면접을 보려면 학교가 파한 시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려면 퇴근시간 이후에 면접을 보아야 한다. 또 아이들은 학원을 가야하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 면접을 본다는 것은 아이들의 학업에 지장을 준다. 그러니까 우리는 수업이 없는 일요일에 아이들이 면접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러나 휴일은 우리도 쉬어야 한다. 그러니 어떡하겠는가? OOO연맹에 나오는 아이들이 면접을 보면 된다.

  • 게다가 우리들은 영어 통역봉사활동에 지원한 아이들의 면접을 볼만큼 영어가 유창하지 못하다. 그러니 외국물도 먹어 영어를 잘하는 고등학생들이 면접을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 일요일? 학생들은 쉬는 날 아닌가? 그 애들은 어짜피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봉사활동에는 평일이나 공휴일이 따로 없다. 금요일 퇴근시간 전에 “준비는 잘 되어가니?” 한번 묻고, 학생에게 연맹의 현관 열쇠 만 맡기면 된다.

  • 한가지 더 변명을 한다면, 경비를 보는 O씨 아저씨도 연맹의 직원인 만큼, 휴일에는 쉬어야 하고, 퇴근시간 이후에는 귀가해야 한다. 퇴근시간 이후와 휴일은 경비용역 회사에서 경비를 맡으면 된다.

연맹의 직원들이 집에서 가족과 함께 알뜰한 휴일을 보내는 가운데, 먼 길을 다녀 온 딸아이와 나는 왠지 허기가 져서 집 앞에서 어묵을 사먹었다.

“나 면접 잘못보았어. 떨어지면 어떡해?”

“떨어져도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만약 붙는다면?

우리 아이도 지하철을 타고 먼길을 가서 직원이 없는 연맹의 현관문을 따고 들어가 또 어떤 아이의 면접을 보게 되거나, 연맹의 직원도 나가지 않는 공항으로 홀로 나가 낮선 나라에서 온 사람의 이름이 적힌 도화지를 들고 서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딸아이는 떨어졌다. 

5. 어느 학교장의 태도

집 사람이 서울특별시에서 주최하는 <글로벌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보고 딸아이를 등록시키는 과정에서, 이웃 고등학교 아이들에게도 좋은 체험기회가 될 것 같아 소개를 시켜주었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5명 이내의 팀을 구성하고 지도교사(어학능력과 해외활동 경험이 필요)를 갖추어야 하는 만큼, 이웃들은 팀을 짜서 학교장 추천서를 받으러 갔다.

지도교사가 필요하고 추천서를 써주셨으면 한다고 하니, 학교장은,
“추천서를 왜 제가 써주어야 하죠? 그리고 인솔할 (영어를 잘 하는) 지도교사도 저희 학교에는 없습니다.”하고 불쾌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고 한다.

그 소리를 전해들은 집 사람은 대신 말 한번 해달라는 이웃의 부탁으로 그 교장을 만나, 이 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대학 진학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며, 지도교사의 수배가 어렵다면 지도교사도 직접 수배해 볼테니 추천서를 써달라고 한다.

교장은 그런 말을 듣고 “대학 진학이 다는 아닙니다. 추천서는 교장이 발급하는 고유한 권한이니…”,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를 한참동안 해대더라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학교 측에서 찾아내서 아이들의 참여를 독려해도 뭣할 판에, 팀도 짜고 모든 서류를 꾸며온 학부모들 앞에서 구차한 변명을 해대는 것이 하도 답답해서,

집사람은 “어떻게 하면 이 추천서에 도장을 찍어주실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이 팀 중 다른 학교 아이가 둘 있는 것 같은데, 그 쪽의 교장의 추천서를 받아오시면 저도 찍어드리지요.”

집 사람이 그 아이가 다니는 OX외국어고등학교로 가, 학교장 추천서를 발급해주기를 요청하니,

“물론 해드려야지요. 벌써 저희 학교에서는 학생들 서류를 이미 접수시켰습니다. 잘해서 그 팀도 선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며 그 학교에 간지 불과 수분 만에 추천장을 발급해주었다.

추천서를 들고 다시 그 학교로 가 교장에게 보여주었더니, 어쩔 수 없이 추천장을 발급해 주더라는 것이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도교사 하나 붙여줄 수 없는 교육현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꿈꾸는 영어몰입식 교육이 과연 가능한가와 알량한 학교장 추천서 하나로 얼마나 막강하고도 허무한 권력을 교장이 휘두를 수 있는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치졸한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학교로 가서 친구들에게 교장의 만행에 대하여 말할 것이고, 곧 전교생이 형편없는 교장의 교육관에 감동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엿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교장의 그 탁월한 교육관 혹은 선견력 때문인지 몰라도, 그 팀은 <글로벌 리더> 선발에서 그만 탈락되고 말았다.

6. 번역봉사활동

딸내미 만 봉사활동이니 뭐니 하는 것이 뭐해서 아들 놈도 봉사활동 좀 하라고, OOO재단에서 모집하는 번역봉사 활동에 신청토록 했다.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데 무슨 자격요건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지만, 재단의 홈피를 보면 이 메일로 신청서를 넣고 모월모일 몇시에 시내 모처에 설명회에 참석해야 된다는 것이다. 바쁜 아들 대신 집 사람이 참석해도 되느냐 하고 문의한 후, 참석하여 설명회를 듣고 선발여부를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전화를 했더니 명단에 없다는 것이다.

재단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다 충족시켰는데 왜 우리 아들이 선발이 안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선발은 자신들이 하는 것인데 왠 잔말이 많느냐는 식이었다. 집 사람은 재단 측에서 요구한 조건에 결한 것이 없는데, 선발이 안된다는 것은 멀리 설명회까지 가서 시간을 투자한 신청자를 우롱하는 처사가 아니냐고 하자, 반응은 몹시 짜증스럽고 퉁명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 봉사의 신청자를 모집하는 것은 재단에서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들을 모시는 과정인데, 번역활동에는 어학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약식의 선발절차를 거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재단 측의 여자는 따지고 드는 것이 귀찮은지 아니면 자신들의 행정절차에 하자가 있는지 “아무튼요”를 연발하면서 아들 놈이 왜 선발이 안되었는지 즉답을 회피했다.

반나절이 지난 후, 당당하게 이메일이 접수가 안되어 선발이 안되었다는 전화가 왔다.

아들 놈이 제대로 이메일을 보냈는지를 확인해보자, 녀석이 이메일을 엉뚱한 곳으로 보낸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재단에 전화를 해서 이 메일이 잘못갔다. 그러나 설명회는 갔다. 설명회에 참석을 하지 않았는 데, 선발이 된 학생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우리 아들도 선발이 돼야 한다. 이 메일은 다시 보내겠다 라고 했다.

그러자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한번 번역을 해서 보내달라. 그 번역이 최상이라면 선발을 할 수(도) 있다.”는 (거만한) 답이 왔다.

그래서 영문을 받아 번역을 해서 재단 측에 보냈다.

재단에서 “번역은 잘했는데 최상은 아니다. 그래서 안된다.” 라는 답변이 날아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무엇 때문에 아무도 바라지 않는 봉사를 하겠다고 이렇게 지랄발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수가 없었고, 또 저들은 무슨 권위로 멋대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을 모집하여 평가하고 선발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7. 혐한증 유발자들

자신의 나라를 미워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러한 우습꽝스러운 일들을 몇차례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가진 양식을 다시 한번 되짚어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느낀 것은 상식과 가치가 전도된듯한 느낌이었다. 학교와 재단, 연맹 이러한 단체들에 대한 나의 느낌은 몹시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것일수도 있지만, 그런 단편적인 일례로서도 그들이 봉사활동을 주도해 나갈 능력이 그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만큼이라도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봉사활동을 선도해 나가기 이전에 자신들이 몹시 황폐해 있고 허황한 권위주의와 관료적 안일함에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봉사활동이 성적에 반영되고, 그것이 진학이나 취직 등에 가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봉사에 대한 공급은 넘쳐난다. 그리고 도움에 대한 수요 또한 상당히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의 경험 상으로 공급과 수요의 중간에 매개한 이들 단체들이 수요와 공급을 적절히 맞추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그들의 도덕성에 대하여 의심이 갈 뿐 아니라, 오히려 봉사활동이라는 미명 하에 또 다른 기형적인 권위주의를 형성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동안 봉사활동 기회를 제공해 주고자 했던 부모로서 느낀 점은, 아이들에게 오히려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일면들을 보여주게 되어 사회에 대한 불신 만 가지게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라마 09.05.30. 09:31
    크크큿, 눈먼 봉사들의 봉사단체가 아이들까지 눈먼 봉사들로 만드는 봉사활동을 주도하고…호호홍,

    다리우스 09.05.29. 19:42
    잘 읽습니다. 이런 내용들도 우리가 알고 넘어가야겠죠.

    이슬 09.05.30. 09:23
    봉사가 점점 빛을 못 보고 눈이 멀고 있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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