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명단 발표에 즈음하여

잠정적으로 <과거사규명법>이라고 불리우고 있는 이 법은 나중에 명칭이야 어떻게 되든 제안 이유에 언급된 대로 왜곡된 역사를 다루는 수치스러운 법안이며, <법>으로 심판할 수 없는 <역사>를 다루는 기형적인 법안이다.


역사란 당위(Sollen)가 될 수 없는 존재(Sein)의 문제이다. 따라서 국가와 민족 혹은 식민통치를 위한 당위성에 의하여 왜곡된 역사는 설령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하여도 고쳐져야 하며,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하여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여야 역사는 당위에 의하여 왜곡된 허구가 아닌 실재로서 존재할 수 있으며, 국민의 용서와 화해가 가능하다. 과거사 규명은 이러한 점에서 이 시대의 당위의 문제이다.

이 글은 오래 전에 썼던 글의 일부이다.

‘08.04.2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4,776명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명단을 공개했고, 라이트코리아 등 4개 보수 시민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명단 선정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그리고 어제 저녁 TV에서 심야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를 보자, 마음이 착찹했다.

역사란 위의 글대로 존재의 문제이다. 무엇이 실체적 진실인가는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하며, 공과에 대한 가치평가는 그 다음의 일이다. 누군가가 국가의 발전에 공헌을 했다고 하여도, 죄를 지었다면 그 죄는 죄로 평가되어야 하지, 그의 공헌에 의하여 죄가 덮어져서는 안된다.

우리 국민 중 친일문제에 대하여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너희 중에 죄지은 적이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요 8:7)는 말처럼, 친일명단에 기재된 사람들에게 감히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못하다.

발표된 친일 명단은 단죄의 칼이 아니라, 미래의 우리들을 위한 반성과 성찰의 도구일 뿐이다.

해방 이후 우리는 반성과 성찰을 결하였기에, 늘 저질렀던 잘못은 가려지고 잊혀졌기에, 늘 거짓 속에 살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을 잘못들을 장롱 속 깊숙히 감춰두고, 일제시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이승만 정권에, 박정희 정권에, 전두환 정권에 부역하거나, 침묵해 왔던 것이다.

친일인명사전은 뜻 깊은 작업의 결과다. 덮어두었고 미루어 두었던 우리의 치부를 밝은 대낯에 드러내놓고, 음산한 과거의 곰팡이를 말리는 작업이다.

이 친일인명사전이 단죄의 목적이 아닌,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우리의 앞 날에 빛이 되기를 소망한다.

저의 친일에 대한 생각이 들어있는 글이라서 올립니다.

또 위의 요한복음의 글을 보며, 돌로 칠 수 있는 자격이 저에게 있는가에 대해서… 물론 저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서에서 요구하는 용서의 언어와 진실의 언어는 섞일 수 없습니다. 진실은 진실이어야 하며, 용서는 진실에 즉한 개인의 판단의 문제인 것입니다. 판단에 즉하여 진실에 대하여 침묵하라는 것, 그것이 광복 이후 위정자로부터 줄곧 요구되어왔던 역사적 오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20090525일 어디엔가 첨부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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