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29 09:49 : 걸상 위의 녹슨 공책

그녀가 말한 오늘 밤은 얼마나 아득한 옛날이던가?

이우 안!사랑해요! ” 때때로 나의 가슴 속에서 그녀는 속삭였다. 그 소리는 비 오는 저녁, 홀로 만을 건너가는 갈매기의 울음소리 같다. 가슴 속에 차오르는 것을 머나먼 타국의 언어로 풀어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사랑해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친 시간 속에 터져 나오는 섬광과 같은 빛. 빛이 사라지면 더 어둡기 마련이다. 이슬이 내리는 여울에 차오르는 조수에 젖어, 위태로웠던 나의 인생은 노을처럼 어둠 속에 완전히 허물어졌고, 밤이 오면 그녀를 품에 안았다. 서로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하여 헐떡일수록,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왔다. 일이 끝나도 잠들지 못하고, 우리는 오래 서로를 토닥여 주어야 했다.

오늘 밤만이라도...

그 소리에 이끌려, 육지의 끝에서 염해로 바스러져 내리는 아잉의 집에 머물렀다. 3평짜리 단칸방에 2.5평짜리 드나드는 문이 있는 부엌, 2평짜리의 어두운 마당. 그곳에서 서성거린지 한달인가 지나 핸드폰을 노을이 꽉 들어찬 바다에 던져 버렸다.

알아왔던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에게 이어지던 열자리 열한자리의 숫자들이 가라앉았다. 핸드폰을 던져버림으로써 세상과 절연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 밤만이라도...”라는 그녀의 속삭임에 하룻밤을 저당잡힌 나는, 그 하루를 통하여 나에게 닥쳐왔거나 닥쳐올 나날들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를 유예하며, 어디에 머물 것인가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생각 속에 그동안 살아왔던 나날들을 뒤섞을 필요는 없었다. 일용할 양식을 벌던 직장에서 쫓겨났고, 더 이상 우정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 줄 친구도 없으며, 남편과 아버지라는 의무로만 올올한 집에 대하여는 의무를 다하기에 이제 나는 무능했다. 여지껏 믿고 살아왔던 나날들은, 더 이상 앞날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잔설이 남은 섬 그늘 밑을 배회하며, 내륙의 끝에 다가와 속살거리는 해조음을 듣거나, 마을 공동변소 가에서 해풍에 말라가는 마을 사람들의 빨래를 보았다. 그들의 생활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김치찌개가 익어가는 냄새가 나고, 어느 집에선가 악다구니 부부 싸움 소리가 들리면, 어떻게 무엇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때문에 사는 것이라는 것, 너무도 자명하게 <그냥>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를 가든 어디에서든 마찬가지다.

섬으로 가지 못한 나는 어느 여인의 외로움에 부딪혀 침몰했고, 세상의 끝에 가라앉은 것을 마침내 감내하기로 했다. 그래서 핸드폰을 바다에 던졌다.

무서웠다. 더 이상 세상 속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두려웠다. 여자의 외로움과 마을을 감돌고 있는 가난이 나의 뼈 속까지 스밀 것에 몸서리쳤다.

그날 저녁, 아잉을 때렸다. 세상과 가족과의 결별이 그녀의 탓인 냥, 모질게 때렸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손 한번 대보지 못했던 나는, 그녀를 때렸다. 아잉은 소리없이 주먹과 발길질을 받았다.

밤이 되자 그녀는 비실비실 방바닥에 쓰러졌고 앓았다. 열이 오른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은 나는 오십이라는 나이를 접고 바보같이 울고 말았다.

“미안해요, 아저씨. 울지 말아요. 아저씨 울면, 아잉은 가슴 아파요.”

아잉을 보면 늘 가슴이 저렸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구루마를 밀며 언덕을 오를 때나, 통장을 들여다 볼 때, 그녀의 어깨는 벌레처럼 가늘었다. 작은 얼굴로 소녀처럼 웃으면, 섬 그늘 아래 밥만 먹었지, 맛있는 것 한번 사먹지 못하고, 스타킹 한번 신어보지 못한 그녀의 웃음을, 나는 웃음으로 맞이할 수 없었다.

아내에게 꽃 한번 사주지 못한 나는, 읍내로 나가 은행에 남은 잔고를 털었다. 사만육천원. 세상에 기대어 번 돈의 마지막 부스러기였다. 눈치를 보고 자존심을 팔아 비루하게 빌어먹은 돈, 그것을 식구들과 모든 것에 퍼붓고 결국 넉장의 배추이파리와 율곡과 퇴계 각 한 장으로 남았다. 가장 싼 담배 한 보루, 여자 속옷과 함께 스타킹을 샀다. 케이크를 사려 했지만, 돈이 모자랐다. 대신 통닭과 백합 한송이를 샀다. 그러자 율곡과 동전이 남았다. 나는 그렇게 가난해졌다.

속옷을 받아든 아잉은 수줍어하며 방 한쪽에서 갈아 입었다. 그리고 장롱에서 하얀 아오자이를 꺼내 입었다. 하얀 꽃을 손에 들고 웃으며 나에게 합장을 했다. 그녀의 모습은 신부처럼 밝고 아름다웠다.

그녀의 고향은 호치민에서 버스로 반나절 거리인 빈롱이라고 했다.

“빈롱은 메콩강 건너면 있어요. 참 예뻐요. 메콩강 넓어요. 그리고 물고기 많아요. 아잉의 아버지 고기 잡았어요.”
“아잉을 좋아한 사람은 없었어?”
“반 꾸옥이 날 좋아했어요. 아잉이 한국으로 시집간다니까 그 사람 울었어요.”
“그 남잘 사랑했어? 뽀뽀해 봤어?”
“몰라요. 몰라요.” 소녀처럼 나를 흘겨보았다.

스물이 갓 지난 나이로, 마흔 살 남편의 손에 이끌려 남해의 섬마을로 아잉은 시집을 갔다. 섬마을에는 노인과 아이들만 있었다. 바다 만 보이는 그곳에서 그녀는 무엇을 했을까? 남편은 간혹 배를 타고 멀리 갔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시부모는 자신을 몹시 귀여워했다고 한다. 몇 년이 가도 아이를 낳지 못하자 “천오백만원이 어떤 돈인데...” 하며, 그들은 그녀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손자도 낳지 못하고, 말도 못하고, 음식도 못하면서 쳐 먹기만 한다고, 이년 저년하며 때렸다. 섬 아이들은 베트콩 베트콩하며 놀렸다. 시부모는 밥도 제대로 안주고, 자신을 부렸다고 한다. 어선을 타던 남편이 돌아와 멍들고 못 먹어 깡마른 자신을 보고, 이곳으로 데려왔다. 몇 달인가 살던 어느 날, 남편은 먼 바다를 간다고 나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 외로워요. 너무 외로워요. 외로우면 죽고 싶어요. 빈롱에 가고 싶어요.”

빈롱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아잉은 좋아하기보다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잉이 고향가면, 아저씨 외로워요.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돈 없어요. 고향으로 가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전 몰라요.”
“외로운 한국에서도 십년이 넘게 살았잖아? 아잉은 아직 젊어. 고향으로 돌아가면 어떻게든 살겠지. 여기만큼 외롭지는 않을거야.”

고향에 대해서, 그녀의 어린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짧은 우리말로 토막토막 이야기했다. 이야기 속에서 드믄드믄 그녀의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녀도 가끔 서울이며, 가족에 대해서 물었다. 생활 속의 무의미하고 우울한 것들을 발라내고 밝고 신나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알아듣는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내 얼굴 앞에 들이밀고 이야기를 들었다.

2007/06/29 09:49에 旅인...face
2007/06/29 09:49 2007/06/2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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