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

정모의 풍경은 다리우스님과 유리알 유희님께서 속보로 생생하게 현장 보도를 한 만큼, 정모에 처음으로 참석한 초짜의 감상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영업을 한다고 하면서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늘 익숙치 않다. 사당역을 스치면서 유희님께서 쓰신 그 광장이라는 곳이 어딜까 하며, 시계를 본다. 6시 58분. 적당한 시간에 모임 장소에 도착할 것 같다.

적당한 시간? 늦지도 이르지도, 사람들이 다 모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허전하지도 않은 그런 시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마는 얼추 그런 시각이라고 생각했다.

골목으로 들어가 이화주막을 찾았고, 지하로 내려갔더니, 분명 레테의 식구인 듯한 분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레테에서 오신 분들은? 하고 묻고 있었다.

종업원이 가르키는 자리로 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레테의 식구들 속에 어떻게 섞이면 좋을까 싶었다. 자리로 가서 “저 여인이라고 합니다.”하자, 명함을 나누고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투로, 사람을 만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내게, 레테의 가족들이 보여준 환대는 나의 기준으로는 소란이었다. 악수와 얼굴을 맞추어보기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 익숙한 이름들 그리고 보았던 글들에서 풍기던 독특한 느낌과 처음으로 만나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을 추스르고 정리하기에는 좀 시간이 필요할 듯 했다. 하지만, 손을 잡고 허둥지둥 인사를 하는 그 짧은 와중에도 아! 이분들은 모두 내가 잘 아는 분들이며, 오랫동안 한 공간에서 지내왔으며, 오래 전부터 나를 위하여 가슴 한켠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는 것을 쩌릿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리우스님이 비워준 자리에 앉으며, 왜 내가 레테의 식구들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하고 꺄웃했다.

하지만 안다와 모른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믿음이라는 것, 안다고 생각하면, 아는 것이고, 모른다고 생각하면, 모르는 것임은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느 날인가 수학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시험을 망치기 시작한 것처럼, 예전부터 한 작가의 글을 수없이 읽었음에도 그의 사진을 대하기까지 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작가로 치부하게 되는 것처럼, 나는 레테의 식구들을 모른다고 그냥 생각해 왔다.

익명의 저편,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환한 것처럼, 레테의 식구 각자의 삶이 투명함에도, 아득한 공간을 건너온 통신부호, ㄱㄴㄷㄹ… ㅏㅑㅓㅕ들이 글자를 만들고, 의미를 만드는 그 기적같은 화면을 바라보며, 레테의 식구들이 나와는 다른 행성의 이질적 풍경 속에서 전혀 다른 생활 속에 깃들고 있다고 생각만 했지, 각자의 생생한 실존으로 살아가는 보편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기에는 나의 상상력은 너무 빈곤했거나, 아니면 터무니없이 조궤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도올은 Homo-Momience라는 말로 인간을 규정하면서, 몸(Mom)은 肉으로써의 몸과 魂으로써의 맘(마음)이 중첩된 개념이며, 몸을 떠난 마음도, 마음을 떠난 몸도 더 이상 몸은 아니라고 한다.

그동안 레테의 속에서 마음이 글로, 다시 글이 0과 1로 환원되어 인터넷을 배회하다가 다시 글로, 마음으로 가역되는 그 시간동안 이미 마음들을 나누어 왔다는 것, 그리고 이 자리의 만남은 그동안 나누어 왔던 추상의 마음을 구체의 몸과 결합시키는 하나의 랑데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마침내 오랫동안 함께 자리를 해왔던 것처럼 식구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있었다.

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정신을 차리자, 그제서야 정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곧장 오다 보니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쌩뚱맞은 넥타이 차림이었지만, 다행히 자유인님께서 양복을 입고 오신 바람에 어색한 차림이 무난해졌고, 다리우스님께서는 호스트로써 본인보다 식구들을 먼저 챙기시느라 좀 바빴다. 유희님께서 본인과 자유인님 그리고 내가 같은 나이라는 말씀을 해주시니 이상하게 자리가 흔쾌해지는 느낌이었다.

또 멀리에서 오신 그라시아님께 고향(부산이 고향임) 소식을 묻고 싶었지만, 자리가 멀어 묻지도 못하고 따스한 미소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샤론님께서는 저 때문에 한쪽 구석으로 몰려가시게 되었지만, 이러저런 말씀을 해 주셔서 마음이 푸근했다. 아마 그 후 라마님 등장? 평소 글의 ‘칼있으마’와 다른 해맑은 미소로 들어오셔서 증말 라마님 맞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했다. 그리고 솔바람님이 들어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좋아하시는 외수 형님과 전혀 사맞지 아니한 용모(이상한 현상은 외수형님께서 통상 예쁜 처자들을 팬으로 보유)로 다소곳이 들어와 카메라와 관련된 저간의 불행한 사태를 말씀하시는 사이, 스테판님이 오셨다. 하지만 처음 식구가 된 후에 올리신 글을 그만 읽지도 못하고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죄송했다.(지금은 다 읽었습니다. 댓글은 이 글 다 쓴 후에…) 그리고 트루쓰님이 오셨는데, 너무 멀어서 목례로 인사를 나눌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비에벨님이 훤칠한 키에 잔잔한 미소로 들어와 처음에는 좀 넓지 않은가 하던 자리를 꾹꾹 눌러주셨다.

몇시에 자리를 파하고 이화주점을 나왔는지 모른다. 아니 그만큼 주어진 시간을 짧았고 할 이야기는 많고 듣고 싶은 것은 많았다. 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스테판님의 모나리자 이야기를 필두로 지그재그식으로 자기 소개를 했지만, 글을 쓰시는 분들께서 자신의 글을 형상화해 가는 그 이야기들을 잡아내기란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래서 아쉬운 모임의 시간을 끝내고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가득히 정을 담고 노래방으로 자리 이동. 선후천적으로 노래에 알레르기가 있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 노래를 부르는 사고까지 치고, 또 기분좋게 라마님이 이끄는대로 삼차. 라비에벨님을 먼저 보내고 술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니 보통 내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에 가까운 새벽 4시 반.

아내는 어디 여자 나오는 술집을 갔다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무슨…? 그저 좋은 사람들 만나서 기분좋게 보내다 보니…”
“아무래도 이상해? 근데 견디지 못하면서도 밤새도록 술은… 속은 어쩌려고?”

술김에 어지럽고 졸려 침대에 무너지면서도, “까짓 것 때론 속도 베릴 수 있지.”라며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치 도리원에서 술 잔치를 벌였던 이백처럼…

“떠도는 이 삶이 꿈과 같으니, 즐거움이 될 것이 그 얼마더냐? 옛 사람들이 등불을 잡고 밤나들이 하던 것은 정말로 그 까닭이 있나니…”

정말 그랬다. 모르는 사람으로 모임에 나가, 겨울이긴 했지만, 이백이 序한 봄 밤에 열렸던 도리원의 잔치(춘야연도리원서)를 즐기다 온 기분(술김 포함)으로 레테의 식구들을 그리워하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너무 늦은 후기 죄송합니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다리우스 09.01.20. 00:00
    헉 잘 읽겠습니다. 여인님~^^; 저런, 사모님이 무척 걱정하셨군요. 이례적인 일이십니다, 금요일로 하기를 잘한듯,,,
    ┗ 旅인 09.01.20. 10:47
    예 토요일이었다면, 조금은 힘들었을 듯 싶습니다. 그 날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 다리우스 09.01.20. 14:27
    아닙니다, 여인님을 대하는 순간 모든 피로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었음을 고백합니다.^^;(헉, 분위기가 왜~)

    라비에벨 09.01.20. 00:33
    디지털 만남에서 아날로그적 만남으로…춘야도리원서 레테에 어울리는 적절하고 멋진 표현입니다.^^
    ┗ 旅인 09.01.20. 10:48
    이제 Off-Line의 만남을 가진 후에는 디지털이 편지가 된 느낌입니다.

    집시바이올린 09.01.20. 09:26
    얼쑤~ 기분좋은 만남에 알딸따리하게 망가지는 밤, 너도 한잔 나도 한잔 우리 모두 건배를 들며 브라보! 사이버상에서 글과 댓글을 주고받던 달작지근한 만남…. 그 끈끈한 정이 오프 라인으로 이어져 밤하늘에 오색찬란하게 불꽃을 수 놓은 밤 금요일은 여지없이 술술 잘도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구낭!
    ┗ 집시바이올린 09.01.20. 02:40
    참 신기하죠 어제까지 몰랐던 사람들이 오늘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악을 쓰고 노래방을 전전하다니요 부산, 나아가서는 저 멀리 제주에 이르기까지, 뱅기로 날아오게 만드는 인터넷이야말로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두 소중한 인연으로 정겨움이 흐르는 레테에서 오래오래 끈끈한 정 이어가길 바랍니다.
    ┗ 집시바이올린 09.01.20. 02:47
    제가 억지를 부렸는데 …집시가 무서워서 모임후기를 올리셨다고 했는뎀…이힛^^ 여인님 무진장 감사해요^^ 그리고,….쿠쿠 …어부인께서 { 어디 여자 나오는 술집을 갔다오는 길이냐고 물으셨다…라는 대목에서…그만…..푸하하^^ 까르르….훔냐리 틀린말은 아닌 듯… } 기어코 함박 웃음을 터뜨립니다. ㅡ_ㅡ;;
    ┗ 旅인 09.01.20. 10:49
    못뵈어 아쉬웠습니다. 뵈었다면 시에 대해서 물고문을 할 참이었는데…
    ┗ 집시바이올린 09.01.20. 18:40
    엥?…………무슨소리에요….시에 대해….허걱~ 안나가길 잘했네요 모…쥐뿔도 아는게 있어야쥬~ 증말루요 아이고,,,문학에 대해 물어보면 절대 못나갑니다. ㅠㅠ

    유리알 유희 09.01.20. 02:52
    영국신사! 우산이 빠졌지만 앞으론 그런 별명으로 부르겠습니다. 그런 분이 후기를 올려 주셨군요. 그것도 간결함 속에 모든 걸 담으셨으니 장황한 제 글보다 훨씬 정감이 갑니다. 맞아요. 우리, 이제 확실하게 아는 사람,으로 합세다. ㅎㅎ 아파서 누워 있어도 후기가 짠해 딸아이 노트복 몰래 들고 나와 부엌에서 댓글 답니다. ㅋㅋ
    ┗ 旅인 09.01.20. 10:50
    그 날 무리를 하신 것 아니신지요? 여인이 그냥 좋습니다. 물론 잘 아는 사람이지요. 빨리 회복하시기를…
    ┗ 유리알 유희 09.01.20. 13:37
    어머! 저도 여인이 좋은디. 크크크
    ┗ 다리우스 09.01.20. 13:44
    맞다 영국신사,,,

    truth 09.01.20. 02:57
    이젠 컨디션 회복되셧나봅니다.^^ 떠도는 이삶이 꿈과 같으니….햐…
    ┗ 旅인 09.01.20. 11:23
    이백씨께서 쓴 글이라… 멋있죠? 다시 컨디션 다운 중입니다. 어제 잠을 설쳐서…

    라마 09.01.20. 11:42
    흐흐, ‘해맑은 미소’라는 표현을 읽으며, 라마도 인생에서 성공한 것이 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체 못하고 므흣해하고 있습니다. 오홍, 그런데, 여인님 고생시킨 요 헐렁한 술꾼은 그저 송구스러워 하면서도, 헤헷, 은근한 웃음도 머금고 있는 중입니다요^^;;
    ┗ 旅인 09.01.20. 12:36
    정신이 맑았더라면… 물어볼 말이 많았는데… 그 놈의 술 때문에… 다음날 고생은 안하셨는지요?
    ┗ 다리우스 09.01.20. 13:45
    ㅋㅋ 저도 읽으면서 회심의 미소를,,,

    그라시아 09.01.20. 12:14
    부산 안부 자주 전하겠습니다… ^^
    ┗ 旅인 09.01.20. 12:34
    동대신동 되겠습니다. ^^
    ┗ 집시바이올린 09.01.20. 18:44
    암튼 대단한 그라시아님 멀리 부산서 오시느라 무지 수고많으셨어요^^
    ┗ 그라시아 09.01.21. 22:08
    집시님, 번개 때문에 올라 간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애인 (아들)만나려고… ㅎㅎ

    다리우스 09.01.20. 15:17
    올린님의 직선적 독촉과 라비에벨님의 우발적 실수에 기인한 해명글의 덕택에 부응,기운 상승, 힘입어 우리가 이같은 따끈한 여인님의 후기를 몸소 접할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메~ㅎㅎㅎ
    ┗ 旅인 09.01.20. 20:49
    아마 다음번은 좀더 실감나게 쓸 수 있을텐데… 어리둥절한 바람에 현장감은 실종입니다.

    난향 09.01.20. 15:39
    지금은 건강에 모두 이상이 없으시겠지요? …낮엔 일하고 저녁엔 늦게까지 술좌석이라 …그래도 이상이 없다면 진정 건강한 분…이렇게 멋진 글까지 올려주시니….감사히 읽었습니다..
    ┗ 旅인 09.01.20. 20:49
    즐거우면 회복도 빠릅니다. 그래도 토요일에는 고생 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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