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시절 -21

그 해 가을 무엇을 했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월말고사 때 계속 반에서 20등대를 유지했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면, 영어 수학 성적이 좀 모자라도 외는 과목에서 성적을 올려, 전교 이삼십등 대로 올라서곤 했다.

그러니까 그럭저럭 보냈다고 보면 된다. 좋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중학교 때부터 관리하던 출석부와 학급일지가 내 손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깁스 탓에 다른 놈에게 넘어간 학급일지는 그냥 그 놈의 몫이 되었고,  그 덕에 더 이상 교무실을 출입을 않해도 되었다. 학급에서 은밀하게 벌어진 일들을 담임이 알고 있어도, 더 이상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반에서 상위권을 달리던 <재수파>들의 성적도 오팔 <애들은 가라 파> 에서 치고 올라오면서,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재수파들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교내폭력써클과의 충돌과 무관하지 않다.

일학기 방학이 시작되기 전 어느 날인가 현창이가 나에게 와서, “너두 몽따다다.”라고 말했다.

“몽따다가 모냐?”
“짜식 무식하기는… 너 요즘 선배새끼들이 헌팅나오는 것 알지?”
“응! 써클에 안든다고 준병이가 맞았다고 하던데?”
“그래서 애들끼리 써클을 만들기로 했어.”
“폭력써클을?”
“폭력써클은 아니고 자경조직이지. 그 이름이 몽따다란 말씀이야.
“그런데 왠 일본말이냔 말이지?”
“짜아식, 보기보다 되게 무식하네? 몽따다는 순수 우리 말이야. 모른 척하다. 안면을 몰수하다. 뭐 그런거다.”
“우리 말인건 알겠는데, 뜻이 왜 그따구냐?”
“인마 폭력써클과 싸우면 어떡게 되겠냐? 순경이 오거나 선생이 오면 튀더라도, 걸리는 놈들이 한두놈 생길 것 아니냐? 걸린 놈은 혼자 퇴학을 당하던 정학을 당하던 혼자 뒈지는 거다. 물귀신은 없다. 그러니까 일단 걸리면 누구랑 싸웠냐 해도 묵비권 행사, 몽을 따는거란 말씀. 그래서 몽따다다.”
“그런데 아이 씨팔! 싸움을 할 줄 알아야 몽따다가 되던지 말던지지…?”
“인마 언제 너보고 싸우랬냐? 넌 마스코트 아니냐? 우리의 마스코트!”

당시 나는 무럭무럭 크고 있었다. 그러니까 슬슬 컸던 교복이 맞기 시작했고, 반에서 중키 정도는  되었고, 더 이상 귀여울 구석도 없었다.

하지만 한번 마스코트는 영원한 마스코트라고 했다.

이학기에 들어서자 쉬는 시간에 고삼 선배들의 우리 반으로 출몰이 잦아졌다. 이른바 교내 폭력써클의 세력 확장을 위한 헌팅이었다. 선배들은 재수파들 한두 놈을 끌고 나가 복도에서 두런거렸고, 선배와 이야기가 끝난 놈들은 돌아와 책상 위에 고개를 파묻고 고민을 하곤 했다.

때론 어디에선가 얻어맞고 오는 놈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막연히 만든 몽따다가 슬슬 몸을 풀기 시작했고, 교내의 폭력조직과의 충돌이 간헐적으로 발생했다. 그런 몽따다는 이학년 여름방학을 지나자 학내 폭력조직 전체를 제압하고 교내 최대 폭력조직으로 컸다.

그토록 몽따다가 커지게 되기까지 내가 한 일이라곤 옆에서 싸움 구경하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양상은 일대일 정도였다. 학교 내 써클과의 싸움은 규모가 커서 대부분 학교 밖에서 벌어지곤 했는데, 그 경우는 지들끼리 소근대고 하다가 방과 후에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이학년 일학기가 될 때까지, 우리는 교내의 폭력써클 세군데를 박살냈다. 그리고 이학기가 되자, 폭력써클의 잔류들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써클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기에는 너무 미미했다.

이렇게 교내의 폭력써클이 무참하게 쓰러진 데는, 좀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학교 당국에서 몽따다를 적절하게 이용했기 때문이다.

일학년 이학기, 최초의 무력충돌이 벌어졌을 때, 교내 폭력가담자들을 불러들였을때, 상대 써클의 가담자들은 일 이학년이 섞여 있고 성적과 학업 전반에 있어 골치거리들이었던 반면, 우리는 1학년 2반(선생들은 우리 조직의 이름이 몽따다라는 것을 몰랐다)에 국한되어 있고 일부 성적이 문제되는 아이들도 있지만, 현창, 진국 등 월등한 성적과 출결 등에 타의 모범이 되는 아이들이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이냐?”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의 반성문과 담임 남주의 의견을 바탕으로 그들은, 성실하게 공부를 하려하는데, 교내 폭력써클에서 헌팅을 나왔다. 그리고 몇놈이 맞고 하니 의협심의 발로로 서로 합심하여 폭력써클과 충돌이 벌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도 교무실로 불려가 반성문을 쓰고, 아이들이 퇴학은 아니라도 정학처분이 될 것이라는 풍문이 돌더니, 놈들은 무사히 반으로 돌아왔다. 반면, 상대 폭력써클의 대빵은 고삼임에도 퇴학처분이 내려졌고, 싸움에 가담한 다른 멤버들은 죄다 정학을 맞았다.

학교에서는 우리는 학업에 전념하기 위한 자기방어로 폭력써클의 폭력에 맞선 정당방위의 행위이며, 그동안 교무실에서 반성문을 쓰며 근신한 점을 감안할 때, 수업에 복귀시키는 것이 맞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존경하옵는 교장선생님의 선처가 계셨다는 말은 빠지지 않았다.

반면, 폭력써클의 경우 공부도 못하고 늘상 교내에서 문제거리였는데, 반성문을 쓰는 과정에서 여름방학동안 시골로 전지훈련을 갔고 거기에서 여자애를 건드리는 사건이 드러났다. 그것을 빌미로 대빵을 경찰에 입건시킨다 만다하며 퇴학이 종용되었고,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관계된 학생 전원 정학처분을 내렸다.

그 후 며칠 후 써클 대빵은 가을볕이 따가운 운동장에서 멤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복을 벗어 내팽개치고, 교모를 박박 찢은 후, 런닝차림으로 쇠파이프를 들고 교무실이 있는 본관으로 난입했다. 선생들이 줄행랑을 놓아 텅빈 본관을 서성이며 유리창 몇장을 박살낸 후, 삼학년들이 수업하고 있는 서관 이층으로 올라가 “야이! 새끼들아~ 공부만 하면 다냐? 이런 똥통에서 좋은 데 잘들 가겠다?”며 팡팡팡 복도의 유리창을 부시는 과정에 그만 경찰에게 연행되고 말았다.

대빵이 사라진 폭력써클을 접수하겠다고, 다른 써클이 써클을 덮쳤다. 그러다 보니 정학이 남발되었고, 두번 정학을 맞은 써클 멤버는 개전의 정이 없다는 이유로 그만 퇴학 처분되었다. 하지만 경찰의 수갑에 채워져 끌려간 대빵을 본 후, 더 이상 교실 복도에서 유리창이 깨지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도 몇번의 무력충돌 속에서 우리 ‘몽따다’는 한두명의 정학이 나왔을 뿐, 대부분 무사했다. 반면 상대편 써클에는 무기를 사용했다, 살인미수다 하며 퇴학이다 정학이다 하며 세력이 점차 약화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종종 써클의 잔류들이 일대일 맞짱을 붙자며 도전을 해 왔다. 그들은 허망하게 사그러드는 써클을 이름만이라도 살리겠다는 생각에서인지 우리에게 와서,

“너희 몽따다에서 누가 주먹이 젤 쎄냐?”고 했다.

써클 대 써클이 맞붙는 싸움과 달리 일대일 맞짱은 교정의 한 구석에서 쉬는 시간에 치뤄지는 것이 관례였다. 소식은 늘 은밀하게 전교로 퍼졌다.

“수완이랑 넘버원의 기원이란 놈과 대운동장 축대 밑에서 붙는다. 점심먹지 말고 나와라!”

수완은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놈은 선수였다. 다른 놈들의 싸움은 동작이 크고 소리가 컸지만, 수완의 주먹은 짧고 강했다. 놈은 싸움에 임해서도 흥분하지 않았다. 약간의 미소가 어린듯한 얼굴로 상대편을 바라보았다. 싸움이 벌어지면 항상 놈은 한두발자국 밀렸다. 그리고 우리가 볼 사이도 없이 상대편은 허무하게 쓰러지곤 했다. 나는 놈이 한번도 상대편을 때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상대편은 놈의 어깨를 잡고 무릎을 끓었고 간혹 놈은 넘어진 상대의 등을 쳐주며 괜찮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면 상대편은 침을 뱉으며 운동장 저쪽으로 사라지곤 했다. 그와 함께 써클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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