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30 18:54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며칠동안 출장에 대한 보고서(9/27~9/29)


형양으로 가는 길

장자는 낯선 도시에 밤에 도착하기 마련이다. 비록 낮에 그 곳에 당도한다고 하여도, 일을 놓고 마침내 낯선 도시와 마주하는 시간은 언제나 밤이다. 때론 낮에 어느 도시에 당도하여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고 방의 커튼을 걷으니, 날은 맑고 도시의 거리가 내려다 보인다.

그때 출장자는 불현듯 거리의 풍경과 자신은 무관할 뿐 아니라,  이제부터 낯선 이들과 힘겨운 상담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짜증스럽게 깨닫기도 한다.

일요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삼성동으로 달려가 서쪽 저 멀리로 가는 공항버스를 탔다. 공항에 도착하니 6시 반. 국수를 말아먹고 북경발 8시 10분 비행기를 탄다. 북경시간으로 9시 10분, 예정보다 이르게 도착하여 장사로 가는 국내선으로 바꿔 탄다. 11시 5분에 이륙한 비행기는 오후 1시 35분 호남성의 성도인 장사에 도착한다.

10월 1일부터 시작되는 기나긴 중국 국경절 연휴를 앞두고, 일요일에도 관공서, 은행을 비롯, 공장, 회사들이 근무를 한다. 그래서 장사에 있는 거래선을 방문한 후, 3시 30분경 장사를 출발한 차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두시간 반을 달려 형양(衡陽)에 들어선다.

가는 동안 중국에서 처음으로 벼가 자라는 논을 보았다. 그동안 중국 출장 중에 논을 본 기억은 없다. 도로 주변에 논이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이 호남성이라는 곳이 중국의 산업화에서 뒤쳐져 있다는 하나의 반증인지도 모른다.

가을걷이를 하는 지 볏단들이 모인 곳도 있고 아직 벼가 자라는 들판도 있다. 형양에 들어가는 길 가에 볏단을 태우는 연기가 들 위에 흩어지고 있다.

무뢰한 도시

호남성은 내륙 깊숙히 자리잡고 있어서 중국의 공업화에 있어서 소외된 곳이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기 위한 인력 시장이 형성되고, 많은 사람들이 광주지역으로 풀려간다. 그래서 광주의 근로자의 출신이 어디냐고 물으면 호남성에서 왔다고 한다.

형양은 중국 오악(五岳: 주) 중의 하나인 형산(衡山)의 남쪽에 있다하여 형양이다. 형산은 오악 중 경관이 가장 수려하며, 도교사원과 불교사원이 혼제되어 중국사람들이 한번 오고자 하는 곳이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사의 서쪽에 있는 장가계를 간다. 이 형산을 둘러 상수(湘水)가 흐르고 상수는 장사를 지나 중국 제2의 호수인 동정호로 흘러들고 동정호는 악양을 지나 장강과 합한다.

형양은 중국에서 존경받는 학자인 왕부지(王夫之 :1619~1692)의 고향이자, 만년을 보낸 곳(船山)이다. 그는 명말에 태어나 향시에 우등으로 합격하였으나, 청조로 들어서면서 관직에 나갈 것을 포기하고 학자로 지낸다. 그의 글을 읽어보지 못했으나, 명나라의 멸망을 반성하고 성리학적인 관념주의를 배격하며, 경세치용의 입장에서 텍스트 중심의 경학으로 옮겨간다. 그는 황종의(1610~1695), 고염무(1613~1682)와 함께 청조의 3대 거유로 고증학의 기틀을 다진 셈이다. 우리의 다산의 경학 또한 이 세사람의 학문을 이어받아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유향(儒鄕)임에도 이 도시는 무뢰하다.

형양은 호남성의 두번째 도시이자, 공업도시다. 자신 살던 곳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와 서식을 하는, 뿌리가 없는 도시인지도 모른다.

첩첩산중에 있는 이 도시에 차가 들어섰을 때, 시각은 여섯시였다. 퇴근시간이 겹쳤는지, 도시는 서로 얽혀 마비되어 있었다. 차선도 신호도 없다. 차들은 빵빵대고 사람들은 보도 위를 걸어다니듯 도로 위를 걷거나 도로를 가로지른다.

도로에 세워진 이정표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지 차는 도시의 곳곳을 누비지만, 우리가 자야할 호텔을 찾지 못했다. 길을 가다보면 문득 도로가 막혀있다. 차는 같은 곳을 몇번이나 지나면서 이 사람 저사람에게 길을 물어 간신히 호텔에 당도하니 7시 30분.

가까스로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가니 8시가 넘었다. 서울의 시각은 9시다. 숙소에 돌아가니 10시가 되었다.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우니 TV에서는 인민공화국 수립 60주년을 며칠 앞두고 해방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든 채널을 점유하고, 간혹 가수가 나와 높은 음자리로 건국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소리를 들으니 머리 속이 곤두서 TV를 끄고 눈을 감는다.

하루종일 피곤한 여정 때문인지, 눈을 감고서도 아득하게 먼 곳으로 나는 계속 달려가고 또 달려가고 있었다.

끄아앙~!

문득 깨어나니 4시 반. 호텔 앞을 지나는 트럭의 집요한 경적이 나의 잠을 산산조각 낸 모양이다.

아직 캄캄한 도시의 이 곳 저 곳에서 차들은 이유없이 밤을 향해 짖어대고 있었다. 때론 멀리 때론 호텔 앞의 도로를 달리며, 도로의 저 끝에서 맞은 편 끝까지 기인 경적을 울려대고 있다. 때론 화물차의 경적이, 때론 승용차의 경적이 그렇게 짖어댄다.

정말 무뢰한 도시다.

그리고 방음도 안되는 4성급의 호텔의 방 안은 불을 밝혀도 어둡기가 그지 없다. 잠을 잃은 나는 침침한 등불 아래에서 책을 읽는다.

세계의 공장, 중국

아침 8시 반에 와 달라는 요청에 따라 형양의 공업지역에 있는 공장으로 간다.

정말 중국이란 이해하기 어렵다. 엄청나게 낭비적이고 허술한데도 이 나라는 어찌 저찌 꾸려져 가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의 공장으로서 위상은 날로 강대해져 가고 있다.

어제와 오늘, 방문한 회사들의 건물을 보면, 생각보다 터무니없이 큰 반면, 일감은 없어서 놀고 있는 것 같다. 이 회사들의 복도를 거닐면 오가는 사람도 적고 복도를 향하여 문은 열려 있음에도 전화벨 소리와 같은 것은 들리지 않고, 사무실 안은 자리는 많으나 한두사람 만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늘 모든 것이 잘되어가고 있으며, 문제가 없다(메이원티!)고 한다. 하지만 아침에 방문한 회사는 설비를 설치한 지 삼년이 되도록 제대로 가동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제 공장이 돌기 시작했으니, 또 다른 설비를 놓아야겠다고 다른 설비동을 짖고 설비를 물색하고 있다.

삼년동안 이 회사는 무엇으로 먹고 살았을까? 공장의 땅값, 설비투자에 따른 자금의 이자, 삼년동안의 인건비나 제반 경비 등 그 엄청난 금액을 어떻게 충당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게 커간다. 빚을 얻든 뭘하든 그렇게 커간다.

8시 반에 상담이 시작된 만큼 일과를 일찍 끝내고 장사로 일찍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무려 세시간 동안 그 공장에 머물고 사장이 점심을 함께 하자는 바람에 어느 허름한 식당으로 갔다.

호남음식은 파와 마늘을 쓴다. 그래서 우리의 입맛과 유사하다. 하지만 늘 호텔에 있는 식당 등에서 먹기 때문에 호남음식이라고 하기에는 각 지방의 음식이 짬뽕되어 있다. 허름한 식당의 음식은 채소를 위주로 한 소박한 것이었지만, 맛은 그 지방의 풍미가 절로 우러나는 근사한 것이었다. 게다가 사장의 강권에 못이겨 52도 짜리 백주를 맥주 글라스로 반잔 쯤 하니 몸이 펄펄 끓어 땀이 난다.

다시 한 공장을 들르니, 오후2시, 이 곳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상담이 끝나니 오후 다섯시다.

아침 일찍 상담이 시작되어 오후 두시쯤 일과를 끝내고 장사로 돌아가면 오후 4시쯤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악록서원에 가보자고 할 생각이었다.

다시 장사로

영국에 가면 웨스터민스터 사원을 보아야 하고, 프랑스에 가면 개선문이나 노틀담 성당을 떠올리면서도, 중국에서 가서 보아야 할 곳에 악록서원은 빠져 있다. 풍기의 소수서원이나 도산서원 등의 우리의 서원은 이 악록서원을 꿈꾸며 지어졌다. 웨스터민스터나 노트르담이 서구 정신의 일각을 대변한다면, 곡부의 문묘와 장사의 악록서원은 동양의 정신을 대변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과거를 보러가자면, 사는 곳이 어디라도 보름이면 한성에 당도하고도 남는다. 중국의 독서인들은 북경까지 가는데 얼마가 걸렸을까를 생각하니 그 날 수가 아득하다. 형양에서 북경까지가 직선거리로 2,300Km이니 육로로 짧게 잡아도 3~4천Km, 평탄한 길을 가도 두달에서 석달이 걸린다. 그동안 먹고 자자면 행랑에 엽전 무게는 묵직하고, 고갯길을 넘자면 산적들의 밥이요, 산 길로 접어들자니 호랑이가 무섭다. 그러니 더 먼 광동성이나 사천성의 선비들이 과거를 한번 보겠다고 북경으로 올라와 낙방하여 돌아간다면 그저 한 해가 지나는 셈이다.

그러니 꼬리가 밟혀면 머리가 아야하는데 반년이 걸리는 중국의 왕조는 한반도의 왕조에 비하여 절반으로 짧다.

일로 북으로 북으로, 장사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7시가 되었다.

결국 악록서원은 보지 못한다.

집으로 가는 길

이제 과거를 보러가던 시절과 같은 안온한 공간과 시간의 함수관계는 깨져버렸다. 대신 스피드가 육체에 가하는 피로감은 남는다. 걸어가는 것보다 차를 타는 시간이, 차를 타는 시간보다 비행기 안에서 육체에 가해지는 피로감은 더욱 깊고 아릿하다.

하지만 장사에서 상해로 가는 시간이 1시간 20분, 상해 홍차오에서 김포로 오는 시간이 1시간 30분이다. 하지만 김포에서 집에 까지 가는데, 2시간이 걸렸다.

상해에서 오후 4시 40분에 출발한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할 무렵, 노을을 보았다.

두껍게 가라앉은 구름과 지상의 사이를 비집고 노을은 낮고 형연할 수 없는 색깔로 타오르고 있었다. 멸망의 그 날이 오고, 아마겟돈이 피빛으로 물든다면 그 색이 바로 저 노을의 색일 것이었다. 비행기의 창으로 카메라를 들이밀려다, 그 처참한 색조를 그냥 가슴 속에 담기로 한다.

7시 10분 랜딩, 청사를 벗어나자 이미 날은 까맣게 저물었다.

5호선 지하철을 타면 1시간 20분 걸릴 것이었지만, 시간이 단축될까 9호선 직통을 타려다가 일반을 탔고, 차들이 꼬이는 강남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당도하니 9시 반.

먼 길을 달려와 밥 달라는 남편에게, 아내는 "비행기에서 밥 안줘?"라며 투덜댄다.

20090930

주) 北岳 恒山, 東岳 泰山, 中岳 崇山, 西岳 華山, 南岳 衡山

참고> 중국 호남성 장사에 대한 예전 기행문

2009/09/30 18:54에 旅인...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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