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8 14:00 : 무지개, 24분지 1의 꿈

영화를 보고 난 후, 왜 좋았는지 모를 경우가 있다. 화면, 음악, 대사, 주인공의 연기 등을 낱낱이 분해해 보아도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신카이 마코토(新海 誠)는 빛의 작가라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나를 매혹시키는 요소는 애니메이션의 밑에 깔리는 자막이다. 물론 누군가 번역한 자막이지만 말이다.

<초속 5센티미터>를 보면서도 빛을 조율해내는 그의 화면보다, 토오노의 독백에 그만 매료되었고, 마침내 신카이 그가 중앙대학/日의 일본어문학과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서야 아하, 그렇구나 하고 한숨을 내쉰 적이 있다.

그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독백을 위해서 - 화면에 주인공의 내면을 새겨넣는 방법은 그것 이외는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을 정적 속으로 이끌고 - 그 정적 위에 빛을 덧칠한다. 이것이 그의 애니메이션이 간직한 비밀이다. 때론 정적 때문에 맑은 여름 낮엔 끼끼끼끼하는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彼女と彼女の猫)는 1999년 작으로 거의 최초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으며, 5분짜리 흑백 애니메이션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자신이 제작하고 연출했을 뿐 아니라, 그림도, 그녀의 고양이인 쵸비의 독백조차 신카이 마코토가 담당한다. 음악은 덴몬(天門)의 것이다.

침묵과 고독으로 버무려진 빛의 화면 속에서 그녀를 짝사랑하는 쵸비의 독백을 보자.

彼女と彼女の猫

Lady&Cat1/Movie

계절은 초봄으로, 그 날은 비가 왔다.


Sec.1 처음에

Lady&Cat2/Movie

그래서 그녀의 머리카락도 내 몸도 무겁고 눅눅해졌고
주위는 너무 좋은 비 냄새가 가득했다.

지축은 소리도 없이 천천히 회전하고
그녀와 나의 체온은 세상 속에서
조용히 계속 열을 빼앗기고 있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용건을 남겨주세요."

그 날, 그녀가 날 주웠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고양이다.


Sec. 2 그녀의 일상

Lady&Cat3/Movie

그녀는 어머니처럼 상냥하고
연인처럼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는
금새 그녀를 좋아하게 됐다.

그녀는 혼자서 살며
매일 아침 일하러 간다.

어떤 일을 하는 지는 모르며
관심도 없다.

하지만 나는, 아침에 집을 나서는
그녀의 모습을 무척 좋아한다.

깔끔하게 묶은 긴머리,
가벼운 화장과 향수냄새

그녀는 내 머리에 손을 얹고서

"갔다 올께."

...라고 말하고서

등을 쭉 펴고
기분좋은 구두소리를 내며
무거운 철문을 연다.

비에 젖은 아침 풀밭같은 냄새가
잠시동안 남아있다.


Sec. 3 그의 일상

Lady&Cat4/Movie

여름이 되고
내게도 여자친구가 생겼다.

새끼 고양이 미미다.

미미는 작고, 귀엽고
응석을 부리는 솜씨는 좋지만

역시 그래도 나는,
나의 그녀처럼
어른스러운 여자 쪽이 좋다.

"있자나 쵸비?"
"왜, 미미?"
"결혼하자."
"미미, 전에도 얘기했지만
내게는 어른인 연인이 있어."
"고진말!"
"거짓말이 아냐!"
"만나게 해줘."
"안돼."
"어째서?"
"있잖아 미미, 몇번이나 말했듯이
이런 얘기는 네가 좀 더 큰 다음에..."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된다.

"다음에 또 놀러와.
정말로 와야 해.
꼭 와야만 해.
꼭꼭 와야만 해."

이렇게 첫 여름은 지나고
점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게 됐다.


Sec. 4 그녀의 외로움

Lady&Cat5/Movie

그러던 어느 날
길고 긴 전화 통화 후,
그녀가 울었다.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곁에서 오랜시간 울었다.

나쁜 건 그녀 쪽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 만이 언제나 보고 있는...

그녀는

언제나 누구보다 상냥하고
누구보다 예쁘고
누구보다도 현명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누군가...
누군가...

누군가 도와줘."


Sec. 5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Lady&Cat6/Movie

끝없는 어둠 속을
우리들을 태운 이 세상은
계속해서 돌고 있다.

계절이 바뀌어 지금은 겨울이다.

내게는 처음인 눈오는 풍경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 든다.

겨울에는 아침이 늦어지기 때문에
그녀가 집을 나가는 시간이 되어도
아직 바깥은 어둡다.

두꺼운 코트에 감싸진 그녀는
마치 커다란 고양이같다.

눈 냄새에 빠진듯한 몸의 그녀가
그녀의 가늘고 차가운 손가락과
먼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와
그녀의 마음과
나의 기분과
우리들의 방.

눈은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다.

하지만 그녀가 타고 있는 전차의 소리만은
쫑긋하게 서 있는 내 귀에 닿는다.

나도,
그리고 아마 그녀도,

이 세상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 終 -

20091008

참고> 彼女と彼女の猫

2009/10/08 14:00에 旅인...face
2009/10/08 14:00 2009/10/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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