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9 11:41 : 벌레먹은 하루



가을! 햇살과 한결 가벼워진 공기를 마주하게 되면 겨울이 오기 전에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날이 맑다면 쉰내 나는 生을 한번 쯤 세상에 널어 놓아도 좋다. 책도 없이 친구도 없이, 가족도 도시에 남겨놓은 채, 빈 몸으로 포구에 당도하여 낡은 선술집에 술도 없이 말짱한 정신으로 앉아, 마침내 교과서 크기의 창에 노을이 스미는 저녁을 맞이하고 싶다. 그러면 홀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나그네에게 술집 아주머니나 포구로 돌아온 어부들이 말을 걸 것이다. 너의 生은 몇푼 짜리냐고? 나는 그 값을 알지 못한다. 내 삶의 틈 속으로 비집고 들어온 사랑이나 우정이나 따스한 대화들을 달아보면, 저들의 슬픔의 무게만 못할 것이고, 애틋하기는 선창에 울리는 노래가락만 못할 것인데, 바람은 펄럭펄럭 울고 결국 나는 혼자일 것이다. 이 세계와 나의 사무친 혈연이나 우애는 그와 같다. 사랑이나 우정처럼 나의 하루에 붙들어 매어놓아야 할 것들은 모조리 빠져나갔고, 헐거워진 내 인생은 삶의 향기도, 애착도, 서글픔이나, 기쁨도 하얗게 바랜 탓에 가슴에서 명함을 한장 꺼내면, 거기에 쓰인 이름은 絶緣이다. 기억은 흐릿하고 추억은 없다. 얼마나 좋으랴? 홀로라는 것이. 밤이 되어도 좋고 낮이 되어도 좋은 것은, 길은 끝이 없고, 세상은 무변한 데, 나는 늘 여기에 있을 뿐이지 저기에 있을 수 없음이니. 너무 흔하여 흔적조차 없고, 너무 가벼워 바람 결에 휘날릴 뿐

20091019

2009/10/19 11:41에 旅인...face
2009/10/19 11:41 2009/10/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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