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09 10:48 : 무너진 도서관에서

금강경을 읽기 위하여 민족사 불전간행회편의 금강경(정호영 옮김) 집어들었다. 뒤에 부록으로 실린 한문을 읽어가며 해석이 안되는 부분을 앞의 번역을 참고할까 했더니, 이 놈의 책의 번역이 이상하다.

일러두기를 보니, 책의 뒤의 한문은 구마라집의 것이되, 우리말 번역은 산스크리트본에서 번역된 나가오 간진(長尾雅人)의 일역과 에드워드 콘즈(E.Contz)의 영역본을 참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마라집의 글에 비하여 번쇄하다.

1. 구마라집의 역본을 참고한 글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依鉢, 洗足已, 敷座而坐.

<姚秦 天竺三藏 鳩摩羅什 譯>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 급고독원에서 큰 비구 무리인 천이백오십인과 함께 계시었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진지드실 때가 되었으므로 가사를 입으시고 바리때를 드시고, 사위라는 큰 성에 들어가시와 그 성에서 차례로 밥을 비시었고, 돌아오셔서 공양을 마치신 뒤 가사와 바리때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

(여인의 참조역)

2. 민족사의 금강경의 번역문

다음과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1,250인의 큰 비구 승가와 수많은 위대한 보살들과 함께 슈라바스티(사위성)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핀다다(급고독장자)의 기원(祇園)에 계신 적이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바지를 입고 발우와 저고리를 들고는 탁발하기 위하여 큰 도시인 슈라바스티로 가셨다. 큰 도시인 슈라바스티에서 탁발을 하며 다니시고 공양을 마친 세존께서는, 오후에 탁발에서 돌아와 발우와 저고리를 정돈하고 두 발을 씻고, 가부좌하고 몸을 곧게 하여 마음을 눈 앞에 집중한 뒤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세존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세존의 두 발에 자신의 머리를 대고 예배하고는 세존 주위를 세 번 돈 후 한쪽에 앉았다.

(민족사의 번역문)

3. 당 현장의 역본을 참조한 글

如是我聞一時薄伽梵在室羅筏住誓多杯給孤獨園與大苾篘衆千二百五十人俱爾時
世尊於茵初整理常服執持衣鉢入室羅筏大城乞食時薄伽梵於其城中行乞食已出還
本處飯食訖收衣鉢洗足已於食後時敷如上座結加趺坐端身正願住對面念時諸苾篘
來詣佛所到已頂禮世尊雙足右遶三匝退坐一面具壽善現亦於如是衆會中坐

<唐 三藏의 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 中>

다음과 같이 저는 들었습니다.

한때 석가모니(薄伽梵)께서 슈라바스티(室羅筏)의 수다타(誓多杯)의 급고독원에서 큰 비구(苾篘) 무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때 자리에서 이윽고 입던 옷을 가지런히 하시고 가사와 발우를 들고 슈라바스티의 큰 성으로 들어가 밥을 빌었습니다. 석가모니께서 그 성 중을 돌아다니며 걸식을 마치자, 성을 나와 본래 계셨던 자리로 돌아와 진지를 드신 다음,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씼으셨습니다. 공양을 마치신 후 펼친 자리에 앉아 결가부좌를 트시고 몸을 가다듬고 바로 하신 후 생각을 마주하시고자 했습니다.

그때 비구들이 부처께서 계신 곳으로 와서 머리를 숙여 두 발에 예를 드린 후 오른쪽으로 세 번 돈 후 돌아가 한 쪽에 앉았습니다. 수보리(壽善現) 역시 이와 같이 무리 가운데 앉아있었습니다.

(여인의 개판역)

4. 3개의 텍스트에 대한 생각

세 개의 텍스트를 놓고 비교해보면, 민족사의 해석과 당 현장의 글은 유사한 반면, 구마라집의 글은 금강경의 원문 텍스트 상에 차이가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구마라집의 글에 비하여 두 텍스트는 세세하고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든다.

이런 이유로 전통적으로 반야심경의 경우 당 현장의 글을 취하면서도, 금강경의 경우는 구마라집의 글이 널리 알려졌을 것 같다.

하지만, 두 텍스트에는 '마음을 눈 앞에 집중한 뒤...'와 해석하기가 까다로운 '願住對面念(맞은 편에 집중하는 것에 머무르고 싶어하다)...'라는 명상적인 용어가 있으나, 구마라집 역에는 없다.

반야심경에 소본(우리가 보는 일반적인 심경)과 대본(일반 경전식으로 편재가 되어 있는 조금 긴 심경)이 있는 것처럼, 이 금강경에도 소본과 대본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

텍스트는 하나인데, 후일 경전을 가감하면서 이본이 생겨나고 하여 구마라집과 현장이 본 텍스트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어제 이 텍스트를 비교하다보니 재수좋게 고려대장경의 구마라집과 현장의 영인본 File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상호 비교해가며 금강경을 읽어보아야겠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반야심경의 경우는 뭔가 알듯 모를 듯 감이라도 잡히는데, 이 놈의 금강경은 늘 아득한 것이 시방 부처께서 무신 말씸을 하시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것이다.

20091109

참고 : 김훈 씨의 본 구절(법회인유분)에 대한 감상을 보시려면, 김훈과 김용옥을 참조

2009/11/09 10:48에 旅인...face
2009/11/09 10:48 2009/11/0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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