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10 07:52 : 벌레먹은 하루

알 수 없었으나, 내 적이 나와 나의 함대를 향해 총포를 겨누는 한 나는 내 적의 적이었다. 그것은 자명했다. 내 적에 의하여 자리매겨지는 나의 위치가 피할 수 없는 나의 자리였다. <칼의 노래 1권 71쪽>

1.

때때로 엄숙한 통찰을 통하여 뼈저리고 천박한 나의 일상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나의 일상이 천박한 것은 이른바 내가 주체가 아닌 탓이다. 나는 하나의 다루어져야 할 객체이며, 그것에 걸맞게 숨을 죽이고 나를 부르는 자의 눈치를 보거나 아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아버지답게 자식에게 처신해야 하는 것이다. 대체로 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저들의 요구 수준에 늘 미달하는 그럴듯한 외양을 간직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언어를 나의 언어가 아닌 저들의 말로 구사하는 것이기에, 나의 욕망과 나로부터 분출되는 언어란 없다.

2.

아바타를 보았다. 산스크리트어 '아바따라(avataar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바타는 사이버 상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분신(가상육체)으로, 단지 나를 대신하는 익명의 상징으로 쓰인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조세프 루스낵의 <13층>에서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영화의 서론에 예고했지만, 가상세계 속에 프로그래밍된 허구의 존재(아바타)들은 자신이 자명한 주체를 지니고 스스로 사고하는 실존이라고 생각한다. <매트릭스>의 네오는 자신이 매트릭스 속에서 현실을 꿈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매트릭스 내의 프로그램과 싸우는 구세주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니까 1999년에 나온 두 영화는 사이버 세계가 실존하지 않는 세계이면서도 <>을 바탕으로 세계와 우주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몹시 불교적이다.

이번 <아바타>는 가상세계 속에 존재하는 아바타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본인의 의식을 현실공간 속의 다른 생명체(아바타)에 텔레포트하는 것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최근에 나온 SF영화치고는 몹시 낙관적이다. 이러한 낙관론은 인간에 대한 믿음보다, 생존방식이 원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외계인 나비족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다.

이 영화는 아름답다. 인간의 상상력이 그린 화면도 아름답지만, 주체와 객체로 이원화하고 객체는 주체를 위하여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다는 서구의 합리주의에 대한 물활론의 승리, 모든 생명체가 교감하는 세계가 아름답다.

이 영화를 찍은 감독은 서구문명이 아메리카 인디언과 남미에서 자행한 만행을 나비족의 승리로 속죄하는 것 같다.

20100110

참고> 아바타

2010/01/10 07:52에 旅인...face
2010/01/10 07:52 2010/01/10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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