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사로 가는 아침

로모사진

11월 2일 아침 날씨는 몹시 추웠고, 날은 날선 듯 푸르렀다. 미사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팔당댐을 넘어 수종사로 가려고 했으나 팔당댐은 막혀있다. 다시 차를 돌려 팔당대교를 너머 조안으로 간다. 다산 생가를 지나 그만 수종사를 스쳐지났다. 가을이라 다 괜찮다. 오늘의 가을은 참으로 풍성하다. 길을 따라 가다보면 그만 자신마저 잃어버릴 것 같은 가을이다. 스쳐지나는 차들이 몰아친 바람에 가로수의 잎새들은 거진 다 떨어지고 가지들은 겨울을 가리키고 있다.

두번이나 수종사 입구를 스쳐지난 끝에 결국 언덕길로 올라섰는데, 가파라서 차가 미끌어질 듯 했다. 간신히 절 앞에 도착하니 일주문은 대찰의 크기인 데, 불이문을 지나 올라가니 절은 아담하다. 수종사 해탈문 앞의 은행나무에선 노란낙엽이 분분히 떨어지는 것이 망자의 혼, 나비 같다.

수종사의 대웅전 앞에선 남북한강이 두물머리에서 합하는 것이 보인다.

핫셀블라드와 로모로 사진을 찍었으나, 디카의 전지가 나가 은행나무 사진을 올리지는 못한다.

이른 아침이라 삼정헌(三鼎軒)에는 오늘 차 공양은 안한다고 쓰여 있다. 맛배지붕의 건물이 단정하다. 창틀에 메말라 붙은 담쟁이의 잎이 가을바람에 흔들렸다.

산을 내려가 양수리를 지나 양평대교를 건너 강하면, 남종을 따라 가을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조만간 가을이 끝나고 겨울일 것이다.

디카사진

This Post Has 10 Comments

  1. 삼정헌에서 통유리창으로 밖을 보며 차 마시는 일을 누리지 못하셨군요..
    저는 그 길을 걸어올라갔다가.. 아주 죽는 줄 알았습니다. 🙂

    1. 여인

      차를 몰고 올라가다가 이 길은 걸어가는 길인가 보다 하며 올라갔습니다. 월요일에 이른 아침이라 대항차가 없었기에 다행이지 올라가다가 마주 오는 차를 만났다면 아찔했을 것 같습니다.

      일주문 앞에서 절까지 가는데도 숨이 턱에 차는데, 어찌 저 아래에서 그 위까지???

      삼정헌의 건물은 얼마되지 않은 건물인 것 같은데, 참 잘 지은 것 같습니다.

      해탈문 밖의 은행나무가 어떻게 찍혔을 지 궁금합니다.

  2. 플로라

    수종사에 다녀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걸어다녀오시기를 기대했는데 ㅋㅋ, 차로 다녀오셨군요. 내려오는 차들이 데굴데굴 굴러내려올 것만 같은 비탈이죠^^

    1. 여인

      수종사가 유명한 절인가 보네요? 플로라님도 다 아시니…

      수종사와 같은 절에서는 아마도 득도가 어려울 듯 싶습니다. 자신의 속을 바라보기에는 눈 앞이 넓고, 가을도 좋고 여름도 좋고 겨울도, 봄도 좋아서 말입니다.

      올라갈 때 보다 내려갈 땐 좀 수월했습니다.

    2. 플로라

      걸어올라가느라 어찌나 고생했는지, 다시는 안오리라 생각하곤 정말 열심히 사진 찍었었죠. 그런데 내려올 땐 더 죽이더라구요 ㅎㅎ~ 무릎으로 온 몸이 쏠리는 그런 경사라 똑바로 걸어내려오기도, 뒤돌아걸어내려오기도 힘들었다는…
      다산과 초의선사가(맞나???ㅡㅡa) 매일 만나서 차를 들었다던데, 저는 아주 독한 사람들이로구나 했답니다…ㅎㅎㅎ

    3. 여인

      초의선사는 다산의 제자로 다산이 고향으로 돌아간 후 종종 보성의 차를 가지고 수종사로 올라간 모양입니다. 마재에서 수종사까지가 도보로 한두시간 걸리고, 게다가 산길까지 올라가시려면 다산 노구로는 힘이 드셨을텐데…
      아마 수종사에서 방 한칸 내어 제자와 몇일 몇날을 함께 보내셨겠지요^^

      초의선사와 추사는 동갑내기로 상당히 친했던 모양입니다.

  3. 위소보루

    다녀오셨군요 수종사에 ㅎ 저 사진에서 보이는 풍경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탁 트인 듯한 그 느낌이 무척 좋았습니다.

    다른 사진도 기대해봅니다 ㅎ

    1. 여인

      언제 사진을 뽑을 지 모르겠습니다.

      큰 나무가지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떨어지는 은행 낙엽이 그 곳에 계속 머물고 싶게 만들었는데…

  4. 흰돌고래

    오늘 날씨 같아선 가을이 끝나고 이미 겨울인 것 같아요, 덜덜. 추웠어요. 어제 ‘와 가을이야’이러면서 가족들이랑 산에 다녀왔는데 말이에요.. 하루 사이에 가을/겨울 이런 느낌이에요.

    1. 여인

      수종사에 올라가는 길의 아침 공기는 몹시 차가워 후덜덜 거렸는데, 올라가 아침 햇살을 받으니 몸이 녹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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