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3/05 15:14 : 벌레먹은 하루

3월에 내리는 눈

밝은 햇빛을 밟고 아산으로 내려갔는데 오는 길은 폭설을 떨쳐나가는 길이었다. 삼월의 폭설은 처음에는 우울하더니 저녁에 돼서는 크리스마스가 다시 온 듯한 느낌이다.

코트에 묻어나는 눈송이를 떨어가며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집 밖으로 나갔다. 딸 아이는 눈사람을 만들겠다고 나가더니 머리 위에 김을 올리며 언 손을 호호 불며 돌아온다. 골목에는 수은등이 빛을 발하기 위하여 지글거리며 자기의 몸을 데우고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수은등이 있었다는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년동안 그 자리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마누라의 강압에 쫓겨나긴 했으나 좋은 점은 있었다. 밤공기의 변화를 알 수 있었고 달이 서쪽에서 떠서 매일 동쪽으로 조금씩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다. 목련이 언제 꽃을 틔우고 지며 잎을 내미는 지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수은등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자국을 여미며 내 앞을 지난다,

마침내 수은등에 불이 들어왔다.

골목 건너편에 늘어선 높다란 활엽수의 가지에 쌓인 눈이 벚꽃으로 피어난다. 그러더니 골목 이 편에서부터 저 끝까지 순식간에 벚꽃 잔치이다.

툭! 하며 높은 가지에 쌓인 눈이 떨어지며 낮은 가지의 눈을 떨어낸다. 아마 한 밤을 지나며 찬란하게 피었던 눈꽃들이 지고 아침이면 다시 앙상한 가지 위에 잔설을 남기고 한발자국 씩 봄으로 나아가리라.

2004/03/05 15:14에 旅인...face
2004/03/05 15:14 2004/03/0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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