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23 15:33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빛이 좋은 날이었다.

식구들은 싱가포르로 여행을 갔고, 집 안은 공허했다.

한 해가 다 가려 하고, 조금 더 있으면 길 위로 눈이 올 것이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잎이 진 산과 들은 갈색의 메마른 피부를 늦가을의 저린 햇빛 아래 내 놓았다.
황량함을 눈이라도 내려 덮어주기를 친구는 기다린다고 했다.
그래도 모든 것이 낱낱이 보이는 오늘 같은 날이 좋았다.
시외버스정류장에서 난로 가에 서서 길 위로 내리는 눈발을 보던 가난하고 젊은 시절이 끝나버렸고, 남들처럼 스키장을 즐길 여유는 없었기에 눈에 젖은 풍경이 그립지가 않았다.

차는 충주를 지나 단양으로 가는 길에서 수산면 쪽으로 차를 좌회전했다.
왕복 2차선의 도로는 한가했다. 조금 가자 충주호가 도로의 왼편으로 언뜻 보이기 시작했고, 더 가자 월악산 송계계곡이 우편에 있었다.

서울부터 내내 켜 놓았던 음악을 껐다.
충주호의 물은 우거졌던 녹음이 사라지고 땅이 다갈색으로 변했음에도 오히려 푸르렀다.

왜 나는 남들처럼 사랑을 못해 봤을까 하고 푸념처럼 말했다.
친구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사랑을 못해보다니……?

길 위로 내려앉는 만추의 햇살은 사람의 심정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인지 우리는 더 이상 대화의 꼬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청풍의 문화재 단지에 내렸다.
청풍이란 무슨 뜻이지?
푸른 바람? 아니 맑은 바람.

날림으로 만든 목제 수문장이 지키는 팔영문을 지나자 수몰지구에서 옮겨온 고가며 동헌, 누각들이 있었다.

높은 언덕 위에 놓인 문화재 단지에서 내려다 보는 충주호는 좁은 협곡 사이에 놓여 있어 호수인지 강물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차디찬 바람에 푸르렀고, 저 먼 곳은 반사되는 햇빛으로 아련했다.

먼 곳의 사람은 눈과 입이 없고, 먼 곳의 강물은 움직임이 없다더니, 호수의 물 위로는 오후로 가는 햇빛 만 가득하다.

문화재 단지를 벗어나기 전에 고가를 한 곳 더 들러 볕 좋은 툇마루에 앉아 잎이 진 개암나무와 열린 사립문 너머로 사람들이 오고 감을 본다.

사람들은 즐겁게 떠돌아 다니는 데, 내 마음은 조용하기만 하다. 그리고 볕은 따스했고, 집으로 돌아가도 식구들은 없었다. 단지 나를 기다리는 것은 월요일이었다.

더 이상 머물기도 뭐하여 다시 길을 떠난다. 그리고 다리를 건넌다. 길은 두 갈래로 한 쪽은 제천으로 한 쪽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나 있다.

알지 못하는 쪽으로 난 길이 아름다웠다. 핸들을 무심결에 틀었고 호반을 따라 차는 언덕을 오르고 다시 물과 합류하며 한참을 갔다.

수산면이라더니 물과 산이 함께 하는 곳이란 뜻인지? 지도 상에 한자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물과 산에 맑은 바람이라…… 이만한 지명이 이 땅에 더 있으랴 싶다.

하염없이 길을 가다가 더 이상 돌아가지 못할 느낌에 차를 돌렸다. 아니 그 보다는 아쉬운 풍경을 다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일 지도 몰랐다.

늦은 점심을 했다.

친구가 자신은 불행하며, 불운하기 까지 하다고 했다.

불행은 인간에게는 늘 있는 것이며, 그 뜻은 단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무의미하며 차라리 고통스럽다, 괴롭다가 더 어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친구는 나를 쫓아다니면서 괴롭다는 말만 해왔던 것 같다.

여자친구와 사귀면서 즐거울 때는 연락도 않다가 불현듯 나타나 괴롭다고 하며, 나처럼 조용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부럽다고 했다.

나도 괴로울 때가 있으며 괴로움을 참노라고 하면, 녀석은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불안과 질투와 번민과 고통 등으로 버무려진 것이 인생이며, 이런 부정적인 것이 잠시 사라진 순간에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분명 친구와 나에게 외면적 차이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

녀석은 4수 끝에 대학을 갔으며, 백수생활을 1년인가 보내고 간신히 취직을 했으며, 직장에서도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몇 군데의 직장을 전전하다가 자신을 인정해주던 상사가 떨려나가는 통에 자신도 사표를 썼다.

장사를 시작했고, 생각보다 많은 돈을 벌어 행복해 했었다. 그러나 장사 4개월 만에 점포근처의 기아자동차의 도산으로 손님이 끊겼다.

안 되는 점포를 아내에게 맡기고 자신은 푼돈이나 벌겠다고 조그만 사무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후배를 만나게 되었고 어찌하다가 자신의 아파트를 후배의 담보로 내 놓았고, 후배의 회사는 예상대로 부도가 났다.

친구는 후배를 찾아 헤매느라 집에도 들어가질 못했고, 아내는 남편이 외도를 한다고 의심하여 점쟁이를 찾아보니 그렇다는 점괘에 자식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 버렸다.

집이 날라가는 지경에 식구들마저 처가 집에 간 상태에서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이 외도를 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병원에 와 보지도 않았다.

수술은 성공하였지만 집도 절도 없게 되었고,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내가 홍콩에서 돌아와 만난 녀석의 몰골은 삐쩍 마른 육십 대초의 노인 모습이었다. 위를 잘라내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본가에 기어들어가 부모에게 더부살이를 하는 처지라 꿈도 의지도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문제는 친구가 자신의 처지를 개선해 나가지 못할 상황으로 더욱 악화되어 갔다는 데 있다.

집 안에서 요양 아닌 요양 중에 고등학교 친구(내 동창이기도 함)가 전화를 했고 전산계통에 일한 경력이 있는 만큼 자신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친구는 거기에서 보수라곤 한 푼도 못 받고 몇 개월인가를 일했다. 이른바 IT업종이라는 것이 절반은 사기라고 그곳의 종업원들도 몇 개월 동안 ‘대박이 터지면’이라는 한 마디에 봉급도 받지 못하고 일만하고 있었다. 친구는 ‘너 그럴 수 있냐’ 라며 결별선언을 했다. 그러자 그 곳의 종업원이 친구에게 우리도 봉급도 받지 못했으니 자신들이 개발하던 아이템을 갖고 함께 사업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끼리끼리 모여 사업을 시작했으며, 진행이 잘되지 않자 나에게 와서 자신의 사업을 도와달라고 했다.

몇 번의 사업계획을 들여다 보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들어보고 난 후, 나는 친구에게 사업을 포기하라고 했다.

사업의 내용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자체 기술이 하나도 없이 남의 기술과 제품을 레고 블럭을 조립하듯 만들어 그럴 듯한 솔루션인 냥 팔아먹는 사업일 뿐이었다. 그리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업이기는 하지만 정작 고객에게 니즈는 없는 사업이었다.

결국 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친구는 자칭 프리랜서라고 하며 이것 저것을 찔러대었지만 3년 동안 아무런 과실이 없는 백수 비스므레한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 친구의 아내는 남편이 외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이들 학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며 알뜰살뜰 마련한 집마저 날려버린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또한 친구는 아내가 가련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기는커녕 원수처럼 대한다고 섭섭해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 음악을 켜려고 했다.

친구가 좀더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딸 아이가 루프스 병이야. 혈액루마티스라나…… 어렸을 때 먹지도 않고 편식을 하는 애를 어미라는 여자가 내버려뒀어. 내가 억지로 라도 먹이자 해도 애가 싫다는 것을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우기더군. 그러더니 빈혈에서 진전하여 루프스가 되어버렸어.

고1에 루프스 병이라? 자신의 인생에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는 데, 아이마저 불치병에 들었다니 친구가 불행하다는 것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친구에게 분노하는 것은 한번도 친구가 삶을 대면하고 그것을 헤쳐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남의 삶은 편한 데, 왜 내 인생은 이렇게 고단한 것이냐 하며 친구는 방 바닥에 누워버렸던 것이다. 청년기에 누구들처럼 꿈을 지닌 적도 없었다.

학교 다닐 때 왜 그렇게 께꾸(단화)에 집착했었냐?

고교시절 녀석이 단화를 담임에게 빼앗기고 교무실에 찾아가 다시는 안 신겠다고 읍소로써 돌려받고 난 다음 날, 자랑스럽게 단화를 신고 나오고 또 선생에게 걸려 얻어맞고 하는 것을 보다 못해 단화를 빼앗아 어디엔가 버린 적이 있다는 것이 불현듯 기억났다.

그때 자신에 대한 긍지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 학교에서 금지하는 께꾸를 신고 등교함으로써 남들과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있다는 기쁨에 취해 있었지.

그렇게 우리의 인생에 자랑스러운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차는 남 제천에서 중앙고속으로 올랐고, 서울로 돌아가는 지루한 여정 만이 남았다. 오후 세네 시의 햇살에 졸음이 가득했다.

졸음을 몰아내기 위하여 속력을 올렸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식구들도 없고 나 혼자 저녁을 해 먹게 될 것이며, 천천히 설거지를 할 것이고 TV를 망연히 볼 것이었다.

오늘은 참 날이 맑았지? 친구여 안녕!

이제 인생과 계절이 지나는 창 가에서 연민과 분노, 불안과 절망 들을 난로 속에 한 토막씩 잘라 넣으며, 가녀린 불꽃이 피었다 삭는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지도 모른다.

오늘의 제목은 Suite No.4. C Minor, Ballade of Friend at Blue wind, Gate to the Winter인 것 같다.

2003/11/23 15:33에 旅인...face
2003/11/23 15:33 2003/11/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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