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3 16:02 : 걸상 위의 녹슨 공책

나의 기억들은 1960년대 서울 광화문 일대의 한 소묘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 동네는 경복궁의 영추문 서쪽으로 약간 어긋난 골목에 위치했다. 경복궁 서쪽 벽을 따라 전차가 지금은 궁정동이 된 청와대 입구까지 우웅하는 모터소리와 함께 선로에 쇠를 긁는 소리를 내며 달렸고, 간혹 전차운전수는 줄을 당겨 전차 앞에 달린 놋쇠종을 댕댕댕 울려대기도 했다.

행정부는 지금은 철거된 조선총독부 건물에 있었는데 중앙청이라고 불리웠고, 국민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부터 내자동 쪽에 정부종합청사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진명의 여중고생과 청운동 쪽 경복 혹은 경기상고의 중고등학생들이 동네 옆을 지났다. 당시에는 국민대학이 동네 근처에 있었는데, 도로로 나서면 남녀가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이 보였다. 어른들은 그들을 아베크족이라고 했고, "그냥 껴안고들 걸어라"하며 혀를 차곤 했다.  

동네의 한쪽 골목에는 적산가옥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적산가옥이라고 해봤자 불과 열몇평에 지나지 않는 작은 집들이었다. 동네 일대가 일제 때는 광산갑부의 소유였다고 했다. 아마 우리가 살던 적산가옥은 그때 지어진 것으로 사택이나 합숙소였는지도 모른다. 이 가옥들은 앞 뒷 집 사이로 담이 없이 마당을 함께 썼다. 가옥들의 기둥과 창틀과 벽의 합판 등은 콜탈이 먹여져 있어 갈색이었고, 다다미가 깔려져 있었다. 그 적산가옥으로 우리는 이사를 갔다.

앞 집에는 황해도에서 월남한 노인 두분이 살고 계셨다.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그 아들을 한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왕래가 드물었다. 두분은 떠들썩한 동네와 어울리지 않게 조용하게 살았다.

우리가 처음으로 이사를 왔을 때, 앞 집의 할아버지는 올망졸망 사형제가 좁아터진 마당에 들어서자 '아이쿠, 큰일났다'는 표정이었지만, 아버지께서 선생이고 어머니 또한 당시로서는 고학력의 여고 출신이라는 점과 아이들이 인사성이 밝다는 것 때문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한 마당을 쓰면서 한사코 싫다시는 바람에 밥상을 함께 하지는 못했어도, 서로 먹을 것을 나누고 끼니에 지장이 없는 가를 신경 써가며, 8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지냈다. 우리가 마포로 이사한 후, 두분은 1년인가 지난 후 우리 옆 집으로 이사를 오셨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아들집으로 들어가신 후 그만 연락이 끊겼다. 

사근동에 살 때, 마당이 넓어서였는지 아니면 골목이 넓어서였는지 모르지만 나의 기억에는 빛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통의동의 기억은 불순한 그림자로 뒤덮혀 있다. 좁은 골목 위로 적산가옥과 개수한 집들의 처마가 한뼘으로 붙어있어 햇볕이 들지 못했고, 마당으로 든 햇빛 또한 마루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 그림자 밑으로 수시로 거지들이 동냥을 왔으며, 때로는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문둥병자들이 돈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우리를 마당  끝으로 물리고 몇푼을 그들의 동냥통에 던져주어 보내곤 했다. 때론 술취한 상이군인들이 옷소매 사이로 집게손을 내밀며 빚진 돈이라도 받으러 온 것처럼 적선을 하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때론 배고픈 거지들이 남의 집 부엌에서 먹을 것을 훔쳐먹다가 들켜 순경에게 쫓겨 도망가다가 우리집에 들어서기도 했다. 어머니는 순경들에게 동냥온 거지일 뿐이라고 했고, 여보란듯이 식은 밥을 덜어다 그들의 동냥통에  넣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들은 문 밖에서 그들을 잡았다. 경찰도 가난하여 수갑과 같은 장비가 없었다. 그들은 범인의 바지가 흘러내려 도망갈 수 없도록 허리띠와 바지단추를 풀은 채, 그들을 앞장 세워 파출소로 몰고 갔다.

어머니에게 왜 도둑을 도와주냐고 물으면, "배고파 하는 도둑질은 죄가 아니다"시며, 골목 밖으로 사라지는 거지를 안타깝게 바라보곤 했다. 그러면 "숨겨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가는 거지도 있었다.

골목 한쪽에는 공동수도가 있었다. 때론 수돗가에서 똥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전날 밤에 골목 안 어느 집인가 도둑이 들었다는 것이다. 학교를 가다가 똥을 보았다면 누구나 집으로 돌아가 "엄마~ 도둑이 들었나봐? 수돗가에 누군가 똥싸고 갔어"라고 했고, 그런 날이면 집집마다 도난당한 물건이 없는가 집을 뒤졌다.

도둑들이 똥을 싸질러 놓는 이유는, 똥을 싸면 몸이 가벼워져 담도 훌떡 넘을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고, 똥을 싸놓으면 똥냄새에 취한 개들이 더 이상 도둑을 뒤쫓을 수 없어서 도둑들은 한밤 중에 동네에서 제일 깨끗한 곳에 똥을 질러놓고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집마다 훔쳐갈 변변한 것은 없었다. TV래야 동네를 통털어 두대인가 있었고, 우리 집에서 그나마 값이 나간다면 싱가 미싱 정도나 될까? 하지만 종종 골목 안으로 도둑들이 들었고 은수저 등을 훔쳐가곤 했다. 당시의 도둑들은 칼과 같은 험한 물건을 몸에 지니지 않았고, 집 안으로 든 도둑을 보면 사람들은 조용히 헛기침을 해서 도망가도록 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서로를 안스러워하고 서로를 해하지 않으려 했지만, 골목에는 늘 어둠이 깃들고 빈한한 집집마다 쥐들은 들끓었다.

그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을 것이다. 늘 쌀독의 바닥을 보고 내일의 끼니는 어떻게 하나 한숨을 지어가며 그 날 저녁을 지었고, 구들에 불을 피우고 비가 새지 않는 지붕 아래서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은 참 좋은 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른들께 "진지드셨어요?"하고 인사를 여쭈었다.

그래도 골목을 벗어나면 또래의 아이들이 백송나무가 있는 공터에서 뛰어놀았다. 대부분 평안도에서 월남한 사람들의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동네에는 서울말과 평안도 말이 섞였고, 아이들은 아버지를 닮아 거칠었다. 그들은 싸움을 즐기고 아이들조차 노름을 좋아했다. 이들은 또 질겨서 다방구를 한번 했다하면, 동네의 경계를 넘어서 잠박(자하문 밖의 준말로 지금의 구기동)까지 도망을 갔고, 방학과 같은 경우 잘못 술레를 하면 며칠동안 애들을 잡으러 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때 그런 놀이마저 없었다면, 다른 할 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골목의 한 집에 세들어 살던 처녀가 목을 매 자살을 했다. 그리고 골목 사람들이 몰려든 사이로 하얀 천으로 얼굴까지 덮힌 처녀의 시신이 지나갔다. 동네 사람들은 아이쿠 저를 어째 하며 웅성거렸고, 그 뒤로 아이들은 신기한 일이나 있는 냥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른들은 얘끼 이놈들! 집에 가서 공부나 하라고 했지만, 죽은 사람을 본 적 없는 아이들은 죽음이 궁금했다.

한동안 처녀의 죽음에 대해서 남자를 사귀었는데 그만 정조를 잃고 남자가 떠나서 자살을 했노라고 하기도 했고, 더 이상 먹고 살 길이 막연해서 세상을 버렸다고도 했다.

집 주인은 처녀가 자살한 집에서 살기가 너무 꺼림칙하다고 이사를 서둘렀다.

그러던 중 누군가 밤 중에 골목을 접어들다가 그 집 문 앞에서 울고 있는 처녀를 보았다고 했다. 그 후론 밤 중이면 골목의 발길이 뜸해졌고, 방과 후 자습이 끝난 누나를 집으로 데려오기 위하여 어머니가 골목 앞까지 나가 서성이곤 했다.

더 끔찍한 소문은 산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노름을 즐겨하던 동네에서는 어느 집 아들이 나가서 도박을 즐겼는데 결국 손목을 자르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그것보다 골목 앞에 삼층 양옥이 한 채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집에서 노름이 벌어졌고 경찰이 급습했다는 것이었다. 노름꾼들은 도주를 했고 그 중 한사람이 이층에서 담 밖으로 뛰어내리다가 담에 걸쳐진 쇠꼬챙이에 찔렸다는 것이다.

"죽었어?"
"죽지는 않았는데 쇠꼬챙이가 똥구멍을 지나 뱃 속 깊숙히 들어간 채, 사내는 담벼락 위에서 오랫동안 소리를 질러댔다는거야."
"뻥이지?"
"아니야! 우리 아빠가 노름꾼이라는 것은 잘 알지? 우리 아빠가 그러던걸."

나는 골목을 들어설 때마다 그 양옥집의 담벼락에 둘러쳐진 쇠꼬챙이를 보며 얼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이야기는 다른 동네에 없는 백송나무 밑의 공터에서 은밀하게 번져갔고, 모든 일들이 사실인냥 받아들여졌다.

20100203

2010/02/03 16:02에 旅인...face
2010/02/03 16:02 2010/02/0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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