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12 18:10 : 무지개, 24분지 1의 꿈

Un Homme Et Une Femme

Mireille Mathieu의 Un Homme Et Une Femme를 들으시려면...

침대란...

방바닥보다 조금 높게 만든 잠자는 곳이다. 하지만 병원침대는 집의 침대보다 훨씬 높기도 하다.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어 처음으로 침대라는 곳에 자게 되었는데, 그때는 너무 높아 정신없이 자다가 혹시 낙상이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하여 자는 중에 몇번이나 깨기도 했다.

때론 침대란 남녀가 사랑을 하게 되면 함께 올라가는 곳이며, 묵은 부부가 등을 돌리고 잠을 자거나 아니면 니 자리가 넓다 좁다, 이불 쫌 땡기지 말라고 실갱이를 벌이는 곳이다. 뜨끈한 온돌방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별반 필요가 없는 물건이지만, 이부자리를 깔고 개고 하는 것이 귀찮아진 아내가 사자고 하는 물건이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비싼 돈 쳐들이고 좁아터진 방을 꽉 채우고 마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우리 집은 그렇다. 아내는 리모컨을 들고 TV 쪽을 향해서 자고, 나는 아내와 벽 사이에 낑겨잔다. 그러니까 한 집안의 실질적인 위계질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밤마다 웅크리고 자며, 아침이면 어깨가 묵직하다.


남과 여...

이런 단순한 이름의 영화 이름도 un homme et une femme라고 쓰면 그럴듯하다. 그런데 영어 쫌 배웠다고 a man and a woman이라고 하면 어쩐지 심심할 것 같다.

그런데 아쉽게도...

1966년작인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이 영화는 심심하다.

내용이래야 미망인과 홀아비가 어린 자식을 만나기 위하여 기숙학교로 주말에 면회를 간다. 미망인은 늦어 그만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놓쳤고 홀아비의 차에 동승하게 된다. 서먹하다. 대화꺼리가 없는 둘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이 어떻게 미망인과 홀아비가 되었는가를 이야기한다. 그런 계기로 이들은 주말이면 함께 차를 타고 기숙학교로 자식들을 만나러 가게 되고, 결국 눈을 몇번인가 맞춘 후에 침대에 함께 들어간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다.


첫번째, 1968년

국민학교 4학년 때, 이 영화를 보았다. 지금은 종로 타워빌딩이 된 화신백화점의 맨 꼭대기 층에 있던 이본동시상영관인 화신극장이다.

어린 시절 나는 홀로 종로나 멀리는 퇴계로까지 걸어가 삼류극장의 간판을 보고 불쑥 들어가곤 했다. 영화가 좋았는지, 극장 안의 담배연기에 찌든 냉랭하면서도 외로운 냄새가 좋았는지 아니면 어둠의 저편, 자막 위로 번져가는 빛들이 응결되는 모습을 좋아했던 것인지...

여느 날처럼 홀로 계단을 올라가 표를 끊고 조용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가 자리를 잡고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당시에 나는 아무 영화나 마구잡이로 보았기 때문에 때론 외팔이시리즈, 때론 풍운아 판초빌라, 이스탄불에서 온 사나이 그리고 알랭 드롱이 마지막에 늘 죽어버리는 그런 영화들을 보았다. 때론 명화라는 것을 볼 때도 있지만, 그런 삼류극장에서 하는 명화란 늘 별다른 느낌없이 지루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내용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음악에 대해서 혐오감마저 갖고 있었던 나는, 영화관을 벗어나 종로통의 밝은 햇살을 마주하자 화면을 가득채웠던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이 머리 속의 건반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그 음악은 줄곧 내 머리 속을 지배하며 영화가 리바이벌되기를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했던 침대는 그들의 나이가 묵직할 뿐 아니라 아이들이 있는 두 남녀가, 함께 차를 탔고, 심드렁한 대화를 나눴으며, 몇번의 간절한 눈빛을 교환했다는 이유로, 함께 들어가 서로의 채취를 나누어가지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그들이 함께 했던 침대는 눅눅해보였다.


두번째, 1977년

대학 1학년 때, 영화라고는 중간고사가 끝난 후 단체관람 밖에 본 적이 없고, 열시 땡이면 취침이라 <주말의 명화>조차 보지 못한 요조숙녀를 만났다.

특별해보이고 싶었는지, 제법 영화를 본 것처럼 폼을 잡았고(하지만 그때까지 본 영화의 편수는 이미 수백편에 달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물경 다섯번 이상 본 것 같다고 했다.

바람과...는 이미 여덟번이나 보았고, 한번은 스크린의 한쪽 귀퉁이가 찢어져 짜깁기를 한 세기극장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속 두번 하루종일 본 적도 있었다. 극장에서 나왔을 때 탁한 극장 안의 공기 때문인지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보았던 영화 중 가장 감명깊게 본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슬프거나 즐겁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말하기는 쉬워도, 감명깊은 영화란 애매하다.

그럴듯한 영화가 기억나지 않던 나는 무심결에 이 영화가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그런 영화가 있었냐고 물었고, 나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보았다고 하자, 마치 부모가 버린 자식을 보기라도 하는 듯한 안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어떻게 아이가 그런 성인영화를 보도록 내버려두었어요?" 라고 말했다.

웃으며 나는 버린 자식이었고 그만큼 자유로왔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한 지 몇달이 되지 않아 이 영화는 다시 한국에 상륙한다.

그녀와 함께 영화관으로 갔다. 이번에는 삼류극장이 아닌 개봉관이었다. 그리고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보다 화면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된다.

영화를 다 본 그녀는 영화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영화는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기 위해서 보는, 그런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은, 때론 무슨 의미를 찾거나 어거지로 뭔가를 찾아내서 이해를 해야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른바 명화라고 치는 것에 대해서는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두번째 그들의 침대를 보자, 그들이 함께 침대로 걸어들어가는 짧은 여로에 이르기까지 남편과 아내를 잃은 남녀의 외로움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침대 위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다 여자가 죽은 남편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만 바람이 빠져버린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세번째, 2010년

이 흑백도 아니고 천연색도 아니며, 두 남녀의 과거가 하나의 대화처럼 둘 사이에 번지는 이 영화에서 사랑의 색깔은 아무런 색조를 지니지 않는다.

영화를 통해서 골라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랑(멜로?)은 <와니와 준하>와 같은 사랑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런 것, 오래동안 묵어서 아무런 향기도 없는 것 같고 사랑이라고 악을 써가며 서로를 구속하지 않아 자유로운 그런 사랑이다. 서로 약간 미워할 수도 있고, 의견이 맞지 않을 수도 있으며, 더 멋진 사람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을 가져볼 수도 있는...

너무 오랫동안 함께 하다보니 서로의 마음의 밑바닥까지 이해하는 그들은,

별다른 대화나 다툼도 없이 헤어진다.

어느 날 오전, 창을 넘어오는 햇살 아래 거실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집어들다가 마침내 자신의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다는 것을, 왠지 한숨이 새어나오는 것을 불현듯 알게 된다.

그런 공기처럼 무겁지 않은 사랑, 마셔도 아무 맛이 없는 냉수같은 사랑을 나는 좋아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ジョゼと虎と魚たち)를 보고 난 후, <와니와 준하>가 보고 싶었고, 심심한 영화 <남과 여>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자료를 받아놓고 오랫동안 보관하다가 최근에야 보게 되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미망인과 홀아비, 예전에는 30대 후반의 중년이었으나 이제는 나보다 한참 젊은 사람들이다.

그들 두사람의 미지근한 사랑을 까마득한 어린 시절부터 줄곧 나는 보아온 셈이다.

사랑은 아무래도 젊은 시절에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와 어깨와 얼굴 만 보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비쥬얼의 시대에 어쩐지 낡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과 해변의 부교 위를 걸어오는 사내와 개의 모습, 그리고 석양의 모습은 여전히 미치도록 좋다.

침대를 벗어난 후의 짧은 헤어짐과 플랫폼에서의 그들의 재회. 그것이 더 이상 안타깝지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들이 그 후로 결혼을 했을까? 행복하게 살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좋다.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는 그런 영화다.

참고> Un Homme Et Une Femme

2010/03/12 18:10에 旅인...face
2010/03/12 18:10 2010/03/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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