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16 20:09 : 무너진 도서관에서

!÷?=


느낌(체험)을 이성으로 분석하면 ...이라는 뜻임.


언어의 사회 실용적인 기원은 내적 삶의 정신적 개인적 현실들 간의 소통에 있어서는 부적당하게 된다. 나의 내적 지속의 순간들은 비교할 수 없이 독특하다. 내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단어를 통해 그 순간들을 타인에게 전달하게 되면 그 순간들은 평범해지고 왜곡될 뿐이다.[베르제즈와 위스망이 쓴 <철학강의> 61쪽]

이 철학강의의 내용을 보면,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언어(이성)로는 자신 만의 독특한 내적 지속의 순간(체험)들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언어(사고)란 아래의 보르헤스의 언명과 같이 차이점(독특한 점, 변별적인 것)을 잊는 것(즉 일반화하고 개념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기된 해석학은 설명되어지지 않는 것(정신과학)의 이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해란 결국 오해에 다름이 아니다.

그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칼어, 라틴어를 습득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의심이 들곤 했다. 사고를 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며, 또한 일반화를 시키고 개념화를 시키는 것이다. 푸네스의 풍요로운 세계에는 단지 거의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세부적인 것들 밖에 없었다.[보르헤스의 기억의 천재, 푸네스 중]

나는 보르헤스의 글을 읽으면서 경험의 폭죽들이 터지는 그 순간 순간들과, 그 매순간에 우주의 넓이로 다가오는 경험의 무늬들을 생각했다. 시공간에 펼쳐지는 그 무한한 세계를 생각하자, 절망적인 공포가 다가왔다. 아마 개와 개구리와 여치들은 매순간 공포와 경이에 사로잡혀 그 무한한 세계를 받아들이고 또 흘려보낼 것이다. 마치 말을 모르는 갓난아이의 눈 위에 스쳐지나는 정체를 모를 다양한 표정들처럼 말이다. 결국 언어란 우리의 뇌가 감내할 수 없는 이 무한한 경험들을 잠재의식 속으로 흘려보내고, 감각의 경험을 추상화하는 것, 그래서 기억과 사고를 가능케 하는 압축장치가 아닐까?

결국 느낌(! : 체험)은 사유(? : 이성)로 분석(÷)하고 종합(=)할 수없는 것이다.

2007/10/16 20:09에 旅인...face
2007/10/16 20:09 2007/10/1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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