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20 09:40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여행이란 나를 비워버리는 지점에서 늘 시작되곤 한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눈을 차창 밖으로 향하고 들과 산들을 바라보며, 좀더 많은 것을 보고 겪기를 바란다. 그러나 여정은 아무 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무엇을 만날 수 있는 지 어떻게 알겠는가? 대숲에 바람이 불거나, 철분이 까맣게 탄 물확의 수면 위로 감잎이 바람에 천천히 밀려가고, 오후의 햇빛이 수면 위를 노닐 때, 갑자기 다가오는 그 적요한 갈증을 여행이 보장하리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다. 풍경 속을 찾아가지만 때론 세월을 만나고 자신의 삶, 그 모습이 너무도 하찮은 것에 점유되어 왔음을 알게 되거나, 어느 낯선 도시의 벤치에 앉아 나른함을 즐기다가 불현듯 시간이 멈추어 주기를 바랄 수도 있다. 단순히 풍경에 압도되기란 힘들다.

열차가 좁은 선로를 미끄러져 가는 것에서 여행은 시작되지 않는다. 여행이 강렬한 유혹이기는 하여도 무녀가 접신을 하기 위하여 굿을 하듯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여행은 다가올 뿐이다. 여행을 통하여 절정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생활의 짐을 떠나온 곳에 벗어놓고 피상적인 고독으로부터 예지가 끓어오르듯 고요함이 내려앉을 때, 갑자기 들과 수평선과 강, 그리고 낙조, 생명들이 하늘을 지고 부단한 살랑거림이나 깊은 호흡으로 다가오곤 했다. 산사의 풍경이 땡겅 울고 다시 자신으로 되돌아 온 나는, 그 침묵의 혼미를 더 이상 말로 할 수 없다.

너는 용사처럼 떠나가는 나를 보았지만, 어느 거리에서나 나는 네가 그리웠다. 늘 거리의 저편에서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하는 너를 향하여 걸어갔다. 그 마지막 골목에 광대한 세계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기쁨과 같은 서글픔으로 휩쌓인다. 그리고 가늠할 수 없는 외로움이 다가와 너의 이름을 속삭이기도 했다. 수느미!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거리가 보이거나, 늦은 밤에 집어등이 깜빡깜빡 흔들리는 바다가 보이는 선술집에서 파도소리를 찌그러진 양푼에 반되 정도 받아 마시고 추위와 피로에 삐그덕 거리는 관절들을 맞추기 위하여 밤새 문풍지를 스쳐 지나는 바람이 가득한 여인숙에 깃들어야 했다.

아침이면 나의 이름을 찾아 거기에 뼈와 살과 초라한 삶을 끼워 맞추기보다, 너의 이름을 부르며 깨어났다. 때론 신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그때 아침 햇살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하루가 노랗게 시작하면 행복에 겨워 어제의 고달픔을 잊을 수 있다. 마당에는 채송화가 피어있었고 나는 펌프질을 한 후 차디찬 물로 세수를 하며, 또 다른 날이 자유처럼 다가오는 것을 느끼곤 했다.

늘 낡은 것을 좋아했다. 그것처럼 새로운 것이란 또 있겠는가? 멸망이 존재하는 것에 아로새겨진다는 것은 늘 새롭고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네가 지금 그대로 내 앞에 현전하며, 젊음과 아름다움, 사랑마저도 그대로 라면, 더 이상 너를 사랑하거나 그리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울 때는 진정으로 너를 기억할 수 없을 때이다. 너의 웃음과 감돌던 그 향기를 기억할 수 있을 때, 안심할 뿐이며, 더 이상 그리운 것은 아니다.

단청이 바랜 산사, 수액이 메말라 나무 결이 노랗게 남은 기둥과 들보며, 무늬가 지워진 석등과 아예 정에 한번도 맞아보지 않는 듯한 돌계단들. 시간과 붕괴가 가장 뛰어난 예술의 형식임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멸망과 망각이 없다면 그 무수한 역사의 분비물들은 우리 옆을 뒹굴 것이다. 그러니 죽음의 새로움과 신선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늙은 시인의 노래를 듣는다.

하루살이 삶을 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 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그러니 어찌 멀리 떠나가 보지 않으랴?

2005/11/20 09:40에 旅인...face
2005/11/20 09:40 2005/11/2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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