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03 10:46 : 무지개, 24분지 1의 꿈
jennie

예술과 영혼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있을지도 모르지만 예술은 구체성을 띄고 다가오는 것이지만, 영혼이라는 것에 대하여 나는 모른다. 영혼이라는 것은 유한한 삶을 놓고 이 삶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의문에 대하여 나의 삶은 과거세와 현세와 내세에 자기동일성을 지닌 어떤 것 즉 영혼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모호한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영혼이란 아주 나이브한 물활론적인 사고에서 출발한다. 아침 안개를 토해내는 호수, 숲길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이 그늘과 뒤섞이면서 바람에 반짝이는 화음과 같은 것, 그리고 물결 위를 거니는 달빛, 아스팔트 위를 서성이는 어스름한 등불과 같은 속에 충만한 정신이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이 정신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우주 속에 꽉들어차 있으며 굽이치고 뒤섞이는 영혼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의 생명 속에도 그 굽이침은 흘러들고 또 빠져나가며 세상과 호흡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예술과 영혼 사이에는 일정의 상관관계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반면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당도한 우리는 영혼과의 문제를 떠나 예술이 무엇이냐 하는 점에서 다시 혼미를 거듭할 수 밖에 없다. 이 시기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되고 쓰레기가 될 수 있다.

제니의 초상 줄거리...

1948년작인 <제니의 초상>은 어떤 미국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소재나 줄거리는 참신한 것이 못된다. 가난한 화가가 십년 전에 죽은 소녀, 제니를 만나고, 고갈난 예술적 열정을 되찾아 불후의 명작 <제니의 초상>을 그리게 되었다는 그저 그런 서프라이즈류의 유령이야기다.

총천연색(Technicolor)가 정착된 시기임에도 마지막 등대에 해일이 몰아닥치는 장면 5분 정도가 녹색의 단색조로 나오고 박물관에 걸린 <제니의 초상화>가 몇십초 정도 풀 컬러로 나오지만, 86분간의 런닝 타임 대부분은 흑백이다.

흑백영화는 세상의 다채로운 색조를 빛과 그림자로 추상해낸다. 추상된 흑백영화를 볼 때는 빛과 그림자로 구성된 화면을 우리가 맞이하는 일상의 풍경으로 채색하고 재인식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흑백영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집요해지지만, 빛과 그림자를 세상의 풍경으로 환원하기에는 언제나 은밀한 부분이 남게 마련이다.

그래서 흑백은 총천연색 영화보다 늘 몽환적이고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런 빛과 그림자로 충만된 뉴욕의 겨울, 이반 아담스는 먹을 것과 방세를 얻기 위하여 그림을 들고 화랑을 전전한다. 거리는 앙상한 가지와 건물에 부딪는 오후의 햇빛 등으로 공허하고, 몇군데의 화랑을 전전했지만 아무도 그의 그림에 관심이 없다. 그것보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열정이 그에게는 고갈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들린 화상의 여사장은 그림보다 가난한 예술가의 재능을 사겠다며 그의 그림을 산 후, 풍경화보다 인물화를 그려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센트럴 파크에서 작고 귀여운 소녀를 만난다. 소녀의 이름은 제니 애플린. 그녀는 자신의 부모가 줄을 타는 사람이라는 말을 남기고 노래를 부르며 어둠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다.

이반 아담스는 겨울부터 다음해 가을까지 시시때때로 소녀를 만난다. 저쪽 세상의 지나간 시간이 구겨지는 지점에서 소녀는 나타났기에 언제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 전혀 기약할 수 없다. 그가 제니를 만나는 시간은 불과 한달 또는 몇주의 시간 밖에 차이가 없었지만, 그때마다 제니는 몇년이라는 세월을 건너 뛰어 소녀에서 청소년 또 성숙한 여인으로 나타난다.

이반 아담스는 어린 소녀 제인에 대한 기억들을 스케치북에 그려 화랑으로 간다.

화랑의 여주인은 예지에 가득한 눈으로 그림을 보고, 소녀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습작을 이반 아담스가 생각한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구입한다.

겨울에서 여름을 지나는 동안 어린 소녀 제니는 부모를 잃었고, 수녀원 산하의 기숙학교를 졸업하면서 성인이 된다.

아담스의 생활이 도시의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살아가는 예술 노동자의 무기력한 외로움이지만, 제니를 만나는 동안 그의 예술적 영감은 점차 되살아나고 생활도 점차 나아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제니의 등장은 늘 가슴 아프다. 그녀는 아담스를 만나기 위하여 몇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을 뿐 아니라, 부모의 상실 등으로 외로움 속에 깃들어 있었으리라는 나의 짐작 때문일 것이다.

아담스는 수녀원의 기숙학교를 졸업한 제니를 자신의 화실로 데리고 가서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다. 그림을 마칠 즈음, 제니의 모습은 빛 속에 반투명으로 떠올라 금방이라도 햇빛에 용해되고 사라질 것처럼 보인다.

그림을 마친 후 제니는 이모님이 아파서 더 이상 만나러 올 수 없다며, 여름동안 등대가 있는 어느 해변 마을에 머물 것이라고 한다.

아담스는 제니의 과거를 살피다가 십년 전 그 등대에서 폭풍을 만나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완성된 제니의 초상을 화랑의 여주인에게 맡기고 제니가 머무는 해변마을로 간다.

그가 배를 빌려 등대로 갔을 때, 십년 전과 같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그는 간신히 제니를 만나고 등대로 피신하자고 하지만 제니는 아담스에게 사랑한다고 하며 높은 파도 속에 사라지고 만다.

결국 제니는 죽음 속으로 사라지고 아담스는 살아남지만, 더 이상 아담스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는다.

단지 죽은 영혼과 한 가난한 화가가 만나 남긴 <제니의 초상>만이 박물관에 걸리고 영화는 끝난다.

배암의 뒷다리...

제니퍼 존스는 신비한 눈을 가진 배우다. 은막의 스타 가운데 눈이 번쩍 띌만큼의 미모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영화를 보면 늘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녀의 자태와 몸짓, 눈동자를 보다보면 가슴이 설레게 된다.

이 영화를 찍을 때 그녀의 나이는 29살이었다. 어린 소녀 역을 하기에는 나이가 들었고 눈 가에 주름이 잡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늘 설레게 하는 매력의 정체를 찾기 위하여 1953년작 <종착역>을 보았다. 20세기에 가장 우울한 배우라는 몽고메리 클리프트 열연을 벌인 이 영화에서 그녀는 젊은 이탈리아노를 사랑하게 된 중년의 유부녀로 나온다. 로마역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남겨두고 남편과 딸아이에게 돌아가야만 하는 유부녀의 심리를 열연한다.

이 영화에서 제니퍼 존스야말로 20세기 은막의 스타 가운데 가장 뛰어난 내슝과 교태를 가진 스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릴린 먼로의 교태가 뭇남자들에게 향하여 열려있는 것이라면, 제니퍼 존스의 교태는 오직 한사람을 향하여 닫혀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더 매력적이다.

이 영화 이후 <모정>, <무기야 잘 있거라> 등의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내슝연기는 더욱 더 빛을 발하며 그녀의 자태가 보여주는 정숙성 너머, 여인이 지닌 관능성 속에 그만 빠져들 수 밖에 없도록 하는 야릇한 눈빛과 교태가 빛을 발한다.

참고> Portrait Of Jennie

2010/06/03 10:46에 旅인...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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