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14 16:40 : 걸상 위의 녹슨 공책

장짓문을 넘어드는 늦봄의 볕이 좋다. 눈이 짖무른 탓인지 때론 풍경이 아지랭이처럼 어른거렸지만, 어제 내린 비가 개인 과천 들의 봄빛은 싱싱했고, 초당의 낮은 담벼락 위로 관악산이 성큼 다가와 앉았다.

이런 봄 풍경을 또 다시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는 맑고 따스하여 좋건만 노인의 마음 한켠에는 서글픔인지 허허로움인지 아니면 웃음인지, 해소기침과 같은 것이 들어찬 것만 같았다.

노인은 서안에 올려져 있는 그림을 집어들었다.

재작년인가 달준에게 쳐준 난이었다.

"어찌 이것이 소산의 손에 들어있는 것일까?" 하며 노인은 볕에 그림을 비춰보았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건만 언제 보아도 좋았다.

"부질없는 것이야. 그리고 부질없는 욕심이고..."

참으로 인연이 많은 그림이었다.

북청에 유배되었다가 해배되어 선친의 무덤이 있는 과천으로 흘러들어와 선친께서 별서로 쓰던 집의 당호를 과지초당으로 짓고 청계산이나 관악산 사이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청관산인이라고 부르던 어느 날이었다. 봉은사를 들렀다 왔는데 문은 열려 있었으나, 달준은 보이지 않았다.

"달준아~!"하며 행랑채를 들여다보자 달준은 부스럭거리며 종이쪼가리를 치우며 일어났다.

"예, 지가 마님 오시는 줄 깜빡했지라. 지송해서 어짜까나?"

"허허 괜찮다. 사략은 아니외우누?" 노인의 목소리는 손자에게라도 건네는 것처럼 살가왔다.

"조금 전에 쪼깐 읽구 말았구만이라우."

"그럼 지금은 뭐하누?"

"눈가 그러는디요. 마님의 난이 조선에선 제일이람서... 당구삼년패풍월라고 달준이 너도 난을 칠 줄 알렸다 하드만요. 그런데 지는 한번도 마님께서 난을 치시는 것을 본 적도 없는지라... 어디서 난초 그림의 초본을 받아 한번 슝내를 내보고 있는 중이지라."

"어디 네 녀석이 친 난을 한번 보자?"

"이거슨 난초가 아니라 잡초여라..."하며 달준은 쭈뼛거리며 그림을 노인에게 넘겼다.

노인은 달준의 그림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달준이 그린 난은 그의 말대로 잡초도 못되는 지푸라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난을 치는 법이란 그리는 것을 꺼려야 한다. 글쓰는 법과 같아서, 만권의 책을 읽어야 난에 기세가 오르고, 난잎에서 문자향이 묻어나는 법이다. 그리는 그림은 중인 출신인 소치(허유)에게 전할 수 있었다지만, 난 치는 법까지 소치가 이어받기에는 선비가 아닌 그의 학문은 짧았다. 우봉(조희룡)이 제법 난을 친다 했지만, 향기가 없었다. 결국 석파(이하응)에게 난을 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이란 것 또한 들에 피어나던 잡풀에 불과하던 것이 아니던가?

노인은 달준의 그림을 보다가 문득 심득이 있었는지, 한번 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울컥 솟았다. 난을 쳐본 지 한 스무해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달준아! 먹이나 한번 갈아봐라."하고 친 것이 이 난이었다.

난은 들에 핀 잡초를 닮았다. 한편 노인 자신을 닮았고, 또 한편으로는 쑥대머리 달준을 닮았다. 자신이 과거에 그렸던 난맹첩에 들어있는 그런 난과는 달랐다.

노인은 자신이 친 난이 마음에 들었다.

"달준아! 이 난은 네 것이다."

"아이쿠 마님 무신 말씀이어라? 지같은거시 언감생심 마님의 난을..."

본시 달준은 북청으로 유배를 갔을 적에, 늙은 몸을 걱정하여 본가인 예산에서 보내온 아이였다. 참으로 무덤덤한 아이였다. 싹싹하지는 않아도 어린 나이에 어른을 생각하는 것이 자별났고 머리보다는 몸뚱이가 바지런한 아이였다.

노인은 그런 달준을 몇년동안 바라보았다.

달준은 겸손하고 성실했다. 자신이 주역을 배우고 상수를 알며 실사를 따져 주공이 효사를 지었다는 것이 그르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교만하여 지산겸괘에 나온 '귀신은 가득 찬 것에 해를 주고 겸손한 것에 복을 내리며, 사람은 가득 찬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피하지 못한 까닭에 결국 귀신과 사람의 해함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것은 어리석은 노인네가 마음이 바른 젊은이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난을 쳐준 후 며칠이 지난 후였다.

노인은 서얼출신으로 역관이었던 이상적의 집에 들러 자신이 보냈던 세한도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이상적이 스승의 세한도를 들고 북경에 갔을 때, 장악진 조진조 등의 청나라의 문인 명사들에게서 받아온 제찬(題贊)을 다시 한번 읽게 되었다.

세한도를 그리려던 것이 아니었다. 제주도 대정에 위리안치되어 자신이 언제쯤 귀양에서 풀려날지를 알지 못할 무렵, 친구와 제자들은 자신을 도울 경우 안동김씨의 눈 밖에 날까하고 자신을 외면했다. 친구 권돈인 외에 자신을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중인 출신의 제자 소치가 머나먼 대정까지 와서 자신 곁에 한동안 머물렀고, 친구인 선사 초의가 먼 길을 와서 차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함께 지냈던 친구들, 함께 시화를 나누던 친구들은 안동김씨의 눈 밖에 날까 노인을 기피했고, 그 중 몇몇은 안동김씨보다 더 매몰차게 자신을 배척했다.

서얼 출신이나 중과 같은 낮은 신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곁에 남았고, 예와 도학을 운운하던 자들은 붕우의 신의를 져버렸다.

그래서 책을 받아들고 고맙다는 서찰을 쓰던 중, 논어 자한편의 '날이 추워진 후에야 솔과 잣나무의 늦게 시듦을 알겠노라."는 공자의 말씀에 문득 붓이 멈췄다. 그래서 서찰쓰기를 마치자, 편지지 위에 "우선(藕船) 이를 보시게"하고 제발을 달아 자신의 심사를 자한편의 글귀처럼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려 이상적에게 보냈던 것이다.

그러니까 세한도는 서찰에 덧붙여진 그림에 불과했으나, 우선 이상적이 이를 들고 청나라로 가서 시인 묵객들의 제찬을 받아오고 난 후, 조선의 문사들 사이에서 '세한도'라고 불리우기 시작했다.

이상적은 이제 역관을 그만두고 궐에 들어가 국조보감과 통문관지 등을 편찬했을 뿐 아니라 그의 시문은 임금 또한 극찬할 정도라서 조정에서 크게 쓰일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아무튼 노인은 기분이 좋았다. 오래 전 자신이 그린 세한도를 다시 감상할 수 있었던 만큼, 일전에 달준에게 쳐주었던 난이 보고 싶었다.

이상적의 집에서 일박을 하고 아침에 출발했지만, 초당에 도착한 것은 미시(오후 1~3시)가 막 지난 무렵이었다. 아무래도 칠순의 노인에게는 한양길은 멀었다.

초당에서 멀지 않은 말죽거리에서 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떼우다가,

"달준아! 집에 가면 전에 내가 쳐준 난을 한번 보여주겠느냐?" 노인이 물었다.

"야! 그라지요. 마님."하고 말한 달준은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난을 들고 노인의 방 밖에서 인기척을 했다.

노인은 달준에게서 받아든 난을 보았다.

일부러 애써 그린 것이 아닌 세한도가 부작위의 묘경에 들어 자신의 심경을 담박하게 드러내고 있어서 이상적에게 보낸 서찰 속에 내비친 자신의 은원의 감정마저 초탈했다면, 자신의 시중이나 드는 달준을 위해 그린 이 난은 그동안 자신이 그려온 난의 아취와 향기마저 잃어버려 아예 속기라고는 없었다. 그렇다고 선기가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어렸을 적부터 사군자를 시작했지만, 노인이 매화, 대나무, 국화를 그렸던 경우는 극히 적었다. 그가 소치에게 산수화를 가르쳤다고는 하지만, 막상 그가 그린 산수화는 몇점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난을 쳤다.

난은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종이 위에 글자를 쓰듯 난을 쳤다. 남들이 행 초서를 쓰듯 난을 쳤다면 자신은 예서를 쓰듯 난을 쳤다. 그래서 다른 선비나 그의 제자들이 친 난은 날렵하고 법식에 맞고 움직임이 과하다면, 그의 난은 소략한 반면 난잎의 끝에 힘이 있어 붓으로 그리거나 서법을 담았다고 하나 초서를 쓰듯한 다른 이들의 난처럼 난창난창하지 않았다.

노인은 한동안 난을 들여다본 후, 유마거사를 떠올렸다.

첫번째 제발

리차비족의 수도인 바이살리(비야이성)에는 비말라키르티(유마)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가 병이 들자, 부처께서는 사리푸트라, 카샤파 등 제자들에게 문병을 다녀오라 하신다. 제자들은 비말라키르티의 높은 법력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만주스리(문수사리) 만 문안을 간다.

비말라키르티는 본래 병이 없지만, 중생들이 병을 앓기에 보살도 병을 앓는다고 말한 후, 만주스리에게 묻는다.

"어찌하면 보살께서 절대평등의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들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에 있어서 말도 없고, 설(說)함도 없으며, 가리키는 일도, 느끼는 일도 없으며, 모든 질문과 대답을 여의는 것이 절대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대답하고 만주스리는 비말라키르티에게 묻는다.

"이번에는 거사께서 말씀해주실 차례입니다. 어찌하면 보살은 절대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입니까?"

하지만 비말라키르티는 오로지 묵연(默然)한 채, 아무런 대답이 없다.

만주스리 또한 정적 속에 내려앉아 비말라키르티의 대답을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덧 베샤카의 아침 햇살이 창문을 넘어들어왔고, 새벽의 간다아크강으로 물을 마시러 온 코끼리의 높고 긴 울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난 후, 만주스리는 궁극의 진리는 결코 말로 가 닿을 수 없음을 안다.

"아아~ 문자도 언어도 없는 것(不立文字)이야말로 진실로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드는 길이군요?"

노인은 짓무른 눈꼽을 한손으로 닦아낸 후, 그림의 왼쪽 윗편에 제발을 달기 시작한다.

난을 치지 않은 지 이십년
우연히 본성의 참 모습을 쳐냈다네
문 걸어 잠그고 찾고 또 찾은 곳
이것이 유마거사의 불이선일쎄

만약 누군가 억지로 그림을 그린 이유를 묻는다면,
마땅히 비야이성의 유마의 무언으로 사양하리라.

만향 씀

노인은 비말라키르티를 빗대어 단 제발이 그림과 잘어울린다고 생각되었다.

"달준아! 잘되었구나."하며 추사라고 양각이 된 낙관을 찍었다.

"자, 가져가거라."

천자문과 소학을 배우고 십팔사략을 읽긴 하지만, 노인이 그림에 단 제발을 읽을 수 없었다. 당대의 명필이라는 마님의 글씨는 도무지 알아먹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난만 덩그라니 있는 것보다는 글이라도 있으니 그림이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달준은 마님에게서 받은 그림을 어떻게 할 줄 몰랐다.

어린 나이로 예산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함경도 북청에 가면 큰 어른이 계신데 모시라고 하여 그 먼길을 걷고 또 걸어 노인 마님을 만났을 때,

"글은 배웠누?"하고 물었다.

"예! 소학꺼정 어깨너머로 배웠지라."

"잘했다. 여기는 겨울이 춥고 길다. 그러자면 장작패고 물 긷는 일 말고도 소일꺼리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 후 마님은 양반도 아니고 벼슬할 것도 아니니 사서삼경을 굳이 배울 필요가 없고 소학에 나온 것만 명심하고 제대로해도 양반님네보다 백번 낫다며, 방 한쪽에서 십팔사략을 끄집어내서 자신에게 주었다.

 

북청오기 전에 마님에 대해서 생각하던 것과는 달랐다. 아주 높은 벼슬을 했고, 학문이 조선 제일일 뿐 아니라, 글씨도 동서고금 천하제일이라고 했다. 노인에 대해서 들었던 이야기로 미루어보면 호랑이같은 얼굴에 풍채는 관운장처럼 크고, 재주는 바람을 부르고 구름을 탈 것만 같았다.

어린 그가 북청에 가기 싫었던 것은 북청이 함경도 산골이라 가기가 멀고 험해서라기 보다, 그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노인과 한 집에서 단둘이 한솥밥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접 본 노인은 눈매가 선하고 말끝에 웃음이 새어나오는 중키의 환갑을 지난 그런 사람이었다. 예산 고택의 어르신들보다 자상한 것만 같았다.


 

 

노인은 예산에서 부터 끌고 온 각종집기며 서책들을

...

....

것이야말로 진실로 불이법문(不二法門)

2010/10/14 16:40에 旅인...face
2010/10/14 16:40 2010/10/1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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