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8/23 16:19 : 황홀한 밥그릇

왜 사느냐라는 질문처럼 중요한 질문은 없으리라.

인간은 던져진 존재이기에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질문이다. 그렇지만 ‘이거 왜 사는지’라고 되뇔 때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조적이거나 처절한 심정에서 입에서 새어 나오는 불유쾌한 실존적인 신음일 뿐이다.

아마 왜 사느냐라는 질문을 화두로 삼고 성찰을 거듭한다면 인생이라든지 인간의 존재의미에 대한 의미심장한 답의 언저리는 얻을 수도 있겠지만, 나의 상황은 그렇게 여유롭지 못했다.

전날 몸이 불편하여 결근을 하고 출근하니 일은 많은 데 몸이 성치 않았다. 그래서 오후 세 시쯤 조퇴나 할까 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 저희 회사가 부도가 날 것 같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부도 후 대책회의를 합시다.”

잠시 수화기를 든 채 망연히 앉아 있다가 뛰~소리가 귓전을 때린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고 직원을 동반하고 그 회사로 갔다.

그 회사 직원과 함께 이러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네 시가 되었고, 은행에 전화를 해보니 부도공시가 떴다는 것이다. 더 이상 부도라는 사태를 뒤엎을 수는 없게 되었다.

일년이 넘도록 부도가 난다 만다 하는 사태를 거듭하면서 그 회사에 대해서 만 정이 달아났건만, 함께 일해 왔던 그 회사의 카운터 파트너에게 안타까운 마음에서 위로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도 조직에 몸 담고 있는 만큼 매정하게 회사를 위하여 챙길 것은 챙길 수 밖에 없었다.

몇 일을 부도난 회사를 드나들면서 채권자 행세를 해가면서도, 무엇 때문에 이 짓거리를 해야 하나하고 탄식을 하기도 했고, 자신의 회사를 살리기 위하여 그토록 노력했던 담당부장이 쓰러져 버린 회사에 무슨 미련이 있는 지 하나라도 회사를 위하여 챙길 것은 챙기겠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전화를 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사장은 잠적하고, 부사장이 남아서 풀이 죽은 채 무엇인가를 하는 데 직원들은 그를 거들떠도 볼 생각도 않는다.

때론 사람들이 와서 삐죽이 무엇인가를 물어보고 간다.

나는 그 사무실의 가운데쯤에 앉아서 그런 풍경을 본다. 때론 사람들이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그런 사무실의 풍경은 색깔이 없이 잿빛으로 바랜다. 때론 시간이 반 초쯤 느리게 째깍 이는 것마냥 사람들의 움직임은 느리고, 구석마다 두세 사람이 얼굴을 마주 대고 조용히 소근거린다.

그런 풍경의 한 가운데 내가 앉아 있는 것을 상기한다. 그리고 ‘왜 부도 난 남의 회사에 와서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인가’ 하는 정말 우울한 독백을 한다.

채권확보를 위하여 갖가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무지의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확보하고 있던 백지당좌 하나만 하더라도 은행에 제시하여 지급거절(부도방)을 받으면 어떤 효과가 있고, 언제까지 백지당좌를 은행에 제시해야 하며, 당좌수표의 지급거절이 되었을 경우 발행자가 형사고발이 된다고 하는 데, 발행회사이냐, 그 회사의 대표이사이냐 등등의 질문에 결론이 떨어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변호사에게 물으면 법률적인 유권해석은 가능해도 부도수표를 받아 든 은행의 행정처리는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는 답과 함께 ‘카더라’식의 답변이 쏟아지고, 향사고발과 고소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하는 또 다른 의문이 무성생식을 하는 단세포 생물처럼 증식의 증식을 거듭하기 만 했다.

너 자신을 알라고 하면서 “그래도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만은 안다 요 무식한 놈들아” 하면서 노가리를 떨었던 소크라테스에 대하여 이토록 공감이 갔던 적이 없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지식의 총체가 아무런 기반없이 유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만은 하나의 소득이었다.

이번에 부도사건과 함께 나의 지식에 대한 신뢰 또한 부도가 발생해버린 것이다.

어느 정도 부도가 마무리되면 그 회사의 직원과 함께 새벽이 오도록 소주를 오도독 오도독 씹어가면서 멸망한 회사와 살아남은 회사를 다 싸잡아 저주하면서 서로의 앞 날과 고단한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다.

2003/08/23 16:19에 旅인...face
2003/08/23 16:19 2003/08/2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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