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21 17:59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저당잡힌 여행이다. 어디론가 가봐야 그 곳에는 내가 볼 것이라고는 없다. 만나야 할 고객이 있을 뿐이다. 회사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고, 차를 타고 이 곳으로 온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고객을 만나고, 고객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 지 참으로 막연하다. 상호간의 호혜와 이익의 증진을 위해서? 아니 그냥 온 것이다. 나는 무엇이 회사의 이익이며, 또 내가 아니면 회사가 고객에게 제공해야 할 가치와 이익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냥 온 것이다.

업무를 접어놓거나, 고객과의 약속이 취소되어 하루 쯤 시간이 빈다고 하여도, 내가 기착한 낡은 도시를 배회하기 보다, 호텔방에서 알지 못하는 언어로 방송되는 TV를 보거나, 가져 간 책이나 보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내가 간 지방이 볼 것이 없거나, 너무 황량해서가 아니다. 그 곳에 간 나란 인간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고 호텔 창에 낯선 도시의 불빛이 아로새겨 질 즈음에 나는 뚜렷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갈증이나 열망같은 것들이 더 이상 나에게 없다는 것을..., 불빛들이 어둠 속에 섞이고, 사람들의 생활들이 그 불빛과 어둠 속에 가라앉으면,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나의 추상화된 삶이 어두운 창에 희미하게 반사되며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낯선 도시에서 엉성하고 누추한 자신의 내면을 지친 눈동자로 바라보게 되는데, 그것은 공허하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도시의 불빛들은 빗줄기에 굴절되어 선지피처럼 뭉그러진다.

밤에서 새벽까지 호텔 창을 두드리며 내렸다.

아침이 밝는 지, 거리와 건물과 공터와 도시를 가로지르는 지저분한 개울이 보였다. 어제까지 도시를 감싸고 돌던 안개는 새벽비에 씻겼는지 거리는 약간 어둡기는 했지만 선명했다.

동생의 차가 올 때까지 호텔방 안에서 서성거렸다.

차를 타고 시내에서 남포대교를 지난 황포강 옆의 동생 집으로 갔다.

"왜 집에 와서 주무시지 않고...?" 제수씨가 물었다.

"어제 직원들과 늦게까지 술자리가 있어서, 부를 수가 없어 시내 가까운 데 숙소를 잡았습니다."

동생은 7년 정도 싱가포르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작년 여름이 지난 후 상해로 왔다. 중국이 익숙치 않은 아이들은 싱가포르가 좋다고 했다.

동생의 집에서 남포대교와 황포강이 보였다. 멀리로는 동방명주가 보인다.

다시 안개가 도시 속으로 진군하는지 공기 속에 누렇고 탁한 기운이 배기 시작했다.

풍경은 우울하고 난방이 안되는 동생의 집은 을씬년스러웠다.

점심을 먹기 위하여 밖으로 나갔다. 상해에서 제일 번화하다는 곳으로 가서 식사를 했지만, 동생 식구들은 음식을 어떻게 시켜야 할 지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대충 아무 것이나 시켜 먹었다.

"중국말을 모르니 휴일이 되어도 마음대로 놀러 갈 수도 없어."

언제부터인가 동생이나 나나 삶의 궤도가 약간 어긋나 있음을 조금씩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또한 시들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궤도가 어긋나 있다는 것은 나이가 들면 누구나 겪는 심정이겠지만, 오랜 만에 만났으면서도 할 말이 없어 그냥 마주 앉아 있는 그 날의 느낌은 더했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차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때 낡은 골목과 낮은 건물에 걸린 간판들이 보였고, 유리창에 곱게 차려입은 마네킹이 보였다. 그 옆에는 이발소, 그리고 낡은 여관들이 보였다. 골목의 끝에는 도시를 점령한 누런 안개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제서야 이 낡은 도시의 냄새와 오래된 풍경을 간신히 바라볼 수 있었고, 결국 영광보다는 남루한 도시의 등걸을 애처롭게 쓰다듬어 애처러운 자신의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때묻은 흔적으로 부터 생의 차디찬 열망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 날 저녁 상해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2008.01.12일의 상해

2008/01/21 17:59에 旅인...face
2008/01/21 17:59 2008/01/2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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