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음악들

Gamelan & Clair de Lune

발리 울루와뚜 사원에서

작년 10월, 발리에 갔다. 더위가 숨을 죽이는 밤이면 호텔 골목을 따라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스파(마사지샵)에서 음악을 틀어주었다. 분명 그 음악은 전날도 틀었고, 그 전날도 틀었던 것 같다. 매일을 하루종일 같은 음악, 아니 단 하나의 음악을 트는 것 같다. 음악은 처음과 끝이 없는 것 같다. 소리가 울려 사라지는 사이에 다시 새로운 소리가 사라진 소리의 공간을 채우고 또 다시 사라지는 데, 사라진 소리와 신생의 소리는 닮아서 잔잔한 파문처럼 밀려와 몸에 습음(習音)되는 것 같았다. 끝나지 않는 도돌이 속에 갇힌 나의 마음은 나른했고, 적도의 밤은 피어나고 지는 소리 사이로 조용히 흘러갔다.

마사지가 끝난 후, 이 음악이 무슨 음악이냐고 물었다.

스파의 주인은 한동안 생각한 끝에 눈을 반짝이며 “발리 스파뮤직”이라고 했다.

서울로 돌아와 유튜브로 ‘발리 스파뮤직’을 검색하니 ‘발리 명상음악’이라고 나온다. 통상 2~3시간 동안 같은 리듬이 타악기 위에서 생멸을 거듭하지만, 시간을 잊은 채, 지금 여기에 머물게 하는 그런 음악이었다.

이 명상음악은 귀에 익은 것 같기도 하지만, 인도나 다른 나라의 음악 전통에서 나온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발리’라고 특정되어 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음악은 인도네시아 전통음악인 가믈란(Gamelan)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때 그림에서는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로 대표되는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畵)가 유럽 지식인들에게 회자되었다면, 자바(통칭으로 자바, 순다열도, 발리 등)의 가믈란이 음악계의 이목을 끈다. 호쿠사이의 판화 ‘파도’를 보고 교향시 ‘바다(La Mer)’를 작곡한 드뷔시는 가믈란 연주를 듣고 “인도네시아 자바 음악은 모든 의미의 음영(陰影)을 표현할 수 있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다.

드뷔시가 말한 음영이 무엇을 뜻하는 지 모르겠지만, 어느 글에선가 그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가믈란에서 영향을 받고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이 만국박람회가 있기 전인 1890년 경부터 작곡되었다고 하나, 1905년 출판 직전 크게 수정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가믈란의 영향 때문에 수정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이 모음곡의 세번째 악장이 바로 ‘달빛(Clair de Lune)’이다. 제목을 ‘월광’이라고 번역하면 썰렁해지는 음악이다. 1906년 2월 드뷔시는 “신비로운 밤의 詩에 남모르게 적용하는, 있을 법하지 않은 장소와 의심할 나위없는 공상적인 세계, 그리고 달빛이 나뭇잎을 애무할 때 들리는 수천의 이름 모를 소리들, 음악 만이 이런 것을 마음대로 불러내는 힘을 지녔다”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이 편지에서 드뷔시가 말한 ‘음영’이란 바로 ‘은밀하고 공상적이며, 이름 모를 소리들’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믈란 연주

가믈란은 인도네시아의 전통 기악 합주곡으로, 철금, 실로폰, 북, 징 등의 다양한 악기를 포함한다. 단소, 활 모양의 현악기들 사용되며, 때로는 가수도 참여하기도 한다. ‘망치로 내려친다’란 의미의 자바어 “가믈”과 집합명사를 의미하는 접미사 “안”을 붙여서 만든 단어이다. 망치로 악기를 두드리지만, 가믈란이 지향하는 것은 ‘삶의 영광에 도달하기 위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목소리’1swara linuhung, swara saking wadi, wasik mulya wataring cipta surasa이다. 가믈란의 뜻은 ‘모든 인간의 시작은 평등하다’2Rekep dengdeng papak sarua이며, 이 음악을 통해 서로 존중하고(asah), 서로 사랑하며(asih), 서로 돌보는(asuh) 것의 가치를 깨닫는다고 한다.

Wondering

무손실 음원을 스트리밍 서비스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애플뮤직을 듣기 시작했다. 한 달에 8,900원으로 무손실 고해상 음원(24비트 96Khz)은 물론 공간음향(Dolby Atmos)까지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제작된 음원만 그렇고, 제공되는 대부분의 음질은 16비트 44.1KHz로, CD 음질 수준이다. 하지만 그게 어딘가! 기분내키는대로 이 음악, 저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째즈와 파두, 파키스탄의 까왈리(Qawwali)나 가믈란 연주를 듣기도 했고, 루치오 달라의 ‘카루소’를 여러 가수들의 버전으로 들을 수 있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안드레아 보첼리, 레너드 코헨 등의 가수보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노래가 가슴을 적셨다. 카루소, 이 수다스런 노래가 이토록 가슴을 후벼파다니…, 며칠동안 이글레시아스의 ‘카루소’에 빠져 살았다, 피아졸라의 ‘오블리언’에 빠져들었던 그때처럼.

가브리엘 포레, 드뷔시, 라벨을 중심으로 간혹 말러나 라흐마니노프나 듣곤 했던 나는 쇤베르크의 무조음악도 들어보는 등 다양한 음악을 만났다. 결국 들을 수 없는 음악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가 카티아 브니아티쉬빌리의 피아노 작품집 ‘미궁(Labyrinth)’을 만나게 된다.

앨범의 작품 중 절반 이상은 엔니오 모리코네, 바흐, 쇼팽, 라흐마니노프 등의 작픔으로 많이 접해 본 곡이었지만, 그녀가 연주한 소리의 질감은 전혀 달랐다. 차분하고 느긋한 연주(편곡일수도 있다) 탓에 차라리 명상 음악 같았다. 하지만 정작 나를 브니아티쉬빌리의 ‘미궁’에서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 곡들은 처음 접하는 작곡가들의 음악들이었다. 음악은 단순했다. 울림이 바깥에서 내 몸 속으로 흘러드는 것이 아니라, 본래 내 속에 있다가 음악에 따라 공명하는 것 같았다. 아니 울림은 본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고요해졌고, 음악이 끝나면 뭔가에 홀려 있었던 듯, 단조로움에도 불구하고 끝난 것이 아쉬웠다.

작곡가들의 음악을 검색하다 보니, 그들은 미니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Minimal Music

미니멀리즘은 어렵다. 최소주의의 ‘주의’라는 목표지향적, 이념적 단어가 붙어 있는 것은 무조건 어려운 법이다. 거기다 미니멀리즘 작품/제품이라고 하는 것들이 작가나 디자이너가 가진 철학적 지향점에 따라 만들어진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브라운의 유명한 디자이너 디터 람스의 ‘적게, 그러나 더 좋게(Less But Better)’가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는 것인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라는 자본주의적인 언표의 변형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극도로 단순하고 객관적인 것이 대량 생산되는 공업 제작에 유리하고, 소비자들의 심미적인 취향에 자극한다는 점에서 후기 자본주의 시장에 적합하다.

공산품과 외형 상의 결과물은 같을 지 몰라도, 미학적 이념에서 본 ‘미니멀리즘’은 다르다. 그리고 미술의 미니멀리즘과 음악에서 그것은 또 다른 것 같다.

1960년대 새롭게 등장한 현대미술은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팝아트로 크게 분류된다. 특징을 비꼬자면 미니멀리즘에서 작품은 사물이 되었고, 개념미술에서는 미술이 문학이 되더니, 팝아트에서는 모더니즘 화가들이 그토록 혐오하고 기피했던 키치가 빌어먹게도 예술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네가 보는 것은 네가 보는 것이다”로 요약된다.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비평에 따른 것이지만, 현대미술은 과거의 회화와 다르게 캔버스 속에 실제의 평면성을 파괴하는 것 같은 환각 즉 조작적 환영이나 눈속임의 사실적 표현(trompe-loeil)으로 부터 떨어져 나오고자 했으나, 늘 시각적 환영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림이 그림으로 벽에 걸려 있는 한, 그것은 ‘환영’의 공간으로 지각되기 마련이다. 이런 딜레마를 벗어나려면 ‘그림은 더 이상 그림이 아니어야 한다.’ 이들은 작품을 ‘사물’로 만들기로 작정한다. 벽돌을 그냥 쌓아 놓는 것(Equivalent VIII)으로는 사물과 더 이상 물리적으로 구별할 수 없다. 사물을 작품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결국 관객의 체험이다. 작품의 성립에 불가피하게 무대(테이트모던 미술관)와 관객을 요청하게 되고, 회화는 연극의 특성을 갖는다.

Carl Andre, Equivalent VIII, 1966-69 3테이트모던에서 1972년에 2,297파운드(현재 환율로는 350만원)를 주고 샀다는데, 120개의 시멘트 블록을 반듯하게 쌓아 놓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화로 6억원이라고 하니 블럭 한장 당 5천만원이다. 가치가 이렇게 오른 것은 테이트모던이라는 무대와 관람객이 있었던 탓이 아닐까?

이렇게 골치 아픈 예술이 ‘미니멀’한 특성을 갖게 된 것은 회화적 환영을 제거하기 위하여 관계주의를 추방한 결과다. 전체와 구별되는 특정한 요소들을 결합해 작품 내에서 관계를 설정한다면, 작품 자체가 아닌 관계에 따른 환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부분이 없는 통짜로 ‘하나의 유일한 사물’을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전체성, 단일성, 불가분성이라는 미니멀 미학이 탄생했다고 한다.

결코 이해하기 만만한 내용은 아니다.

아무튼 마이클 프리드는 미술은 정지된 시간 속의 공간예술이나, 미니멀리즘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관객과 작품의 관계가 극화된다며, “미니멀리즘 예술의 현전성은 … 근본적으로 연극적 효과 혹은 특질, 다시 말하면 일종의 무대의 현전이다”고 말한다.

이렇게 어려운 미니멀리즘을 음악에 그냥 대입하기가 어려웠던지 우리는 미니멀리즘 음악이라고 부르지 않고 ‘미니멀 음악’이라고 한다.

미니멀 음악의 원조를 ‘에릭 사티’라고 하지만, 사실 상 1세대에 해당하는 ‘스티브 라이히’는 ‘점진적 과정으로서의 음악’이라는 책을 통하여 자신의 음악적 방법론을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음악을 미니멀리즘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또 현악 4중주 1번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 덕분에 자신의 음악에 ‘미니멀리즘’이라는 칭호가 붙은 ‘필립 글래스’는 자신의 음악을 ‘반복적 구조의 음악’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미니멀한 음악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아르보 페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

필립 그라스는 “서양 음악이 빵을 한 조각씩 썰듯이 시간을 쪼갠다면 인도에서는 작은 단위나 ‘박자들’을 결합시키며 더욱 큰 싯가(時價)로 만들어 간다”고 한다.

마치 라벨의 볼레로에 대한 이야기같지만, 펀잡지방의 알리 칸(Nusrat Fateh Ali Khan)의 까왈리는 몇시간 혹은 밤새도록 연주되고 노래된다. 거기에는 악보도 없다. 오래된 전통에 의한 연주와 무대를 둘러싼 관객과 연주자들의 호흡에 따라, 마치 수피 춤과 같이 윤무를 그리며 하염없이 울려퍼지며 다가오지 않을 것 같은 결말을 향하여 울려퍼진 노래에 새로운 곡조가 쌓이고 쌓이면서 마침내 사람을 압도하고 마는 그런 음악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까왈리를 듣다가 까무러친다던가 영적 체험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가믈란 또한 4/4박자 한마디를 4분 음표와 8분 음표, 16분 음표와 쉼표들로 토막내고, 다시 각각의 마디를 기-승-전-결 구조로 결합하여 음악을 구축해나가는 서양의 방식이 아니라, 전통에서 비롯된 리듬 하나를 계속 쌓아가면서 소리의 밀도를 높혀가는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서구 음악이 취하던 기승전결의 진행, 긴장과 이완, 클라이맥스와 해결 등의 형식과 구성이 미니멀 음악에서는 와해되기 시작한다. 형식적인 면에서 스토리가 없어 느슨해지긴 했지만, 음악이 울리는 개개의 순간 속에 빠져들고 결국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보다는 나선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된다. 이런 탓에 미니멀 음악은 앞으로 나가기 보다 여기에 머물게 되고, 몹시 명상적이다.

그렇게 나의 미니멀 음악에 대한 애호가 시작되었으며, 이와 함께 칼 젠킨스의 음악도 들으며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가 조금더 풍요로워진 것 같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