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에 대한 매혹

L’Occupation

어제 도서관의 서가에서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의 ‘집착 L’Occupation’을 우연찮게 집어들었다. 두께가 얇아 집어든 것이지만, 글의 밀도나 끈적거림이 보통이 아니다. 천천히 읽어야 하지만, 긴장하여 그녀가 쓴 모든 낱말과 행들을 손톱을 깨물듯 읽었다. 그녀의 글은 집요했다.

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 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했다. 나는 죽고, 더 이상 심판할 사람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글쓰기, 진실이란 죽음과 연관되어서만 생겨난다고 믿는 것이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파스칼 키냐르의 글이 대단하다고 하여 읽었으나, 사실 그의 책에는 대단함보다 지루함만 가득했다면…

에르노의 글은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느낄 수는 있으나 (나의 능력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이 감정의 골을 지나 물기를 흠뻑 담고 글로 나타난다.

그녀의 한 줄 한 줄은 내 가슴의 경험의 골을 드르륵 긁어내는 것 같아서, 읽으면 일상 속에서 허투루 지났던 것들이 먼지들이 아니라 무게를 지닌 육중한 것들이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그는, 아마도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둬달라는 것 말고는, 이제 내게 바라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집착’ 중)

Le Vrai Lieu

오늘은 어제의 ‘집착’을 마저 읽고, ‘진정한 장소 Le Vrai Lieu’를 뽑아들었다. 다큐멘터리 작가 ‘미셀 포르트’가 ‘아니 에르노’와 인터뷰한 것을 발간한 것인데, 그녀에게 ‘글쓰기가 무엇인가’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글쓰기는 “진정한 나만의 장소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내가 자리한 모든 장소들 중에서 유일하게 비물질적인 장소이며, 어느 곳이라고 지정할 수 없지만, 나는 어쨌든 그 모든 장소들이 담겨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글쓰기라는 것이 그녀에게 은밀하고, 비물질적이며, 모든 장소가 응축된 하나의 공간(장소)이 된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시간이 아니라 공간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문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깊은 내면의 목소리 그리고 언어, 언어 자원 사이의 협정이예요.

문체(文體)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 문장의 문체는 어쩐지 라캉의 주체(主體)와 닮아 있다.

Cogito(나는 생각한다)로 틈(간극)이 생기고 그 틈은 실재계와 상징계를 나눈다. 주체는 그 틈을 메우(표현, 사고 등)기 위하여 상징적 질서 즉 언어를 더듬는다. 하지만 상징적 질서(언어 등)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틈을 메우지만 결코 메워지지 않는다. 이것이 결여이며, 결여를 감당하는 것 또한 주체다.

에르노는 “그러나 글쓰기는 전혀 달랐죠. 순수한 묘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어요. 어쩌면 모든 모델에 반대하기 위해. 여기서 칼 같은 글쓰기라는 표현이 완벽히 들어맞죠”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한 인간의 문체는 모든 모델(style)에 반하여 순수하고 독특하여야 한다.

그녀는 “문학은 인생이 아니에요. 문학은 인생의 불투명함을 밝히는 것이거나 혹은 밝혀야만 하는 것이죠”라고 말한다. 그러한 드러난, 밝혀진 인생을 그려나가는 것이 에르노의 문체이며, 그 작업이 스타일인 것이다.

아무래도 당분간 아니 에르노의 글에 빠져 지내게 될 것 같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이 글을 읽고 난 후 노벨문학상을 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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