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에 펼친 풍요로운 세상, 강산무진도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보물 제 2029호)는 정조와 순조 때의 도화서의 화원 이인문이 그린 가로 8.5미터 짜리 산수화이다. 강과 산이 끊임없이 펼쳐진다는 이 그림에는 산과 강과 바다 뿐 아니라 360여명의 사람들이 집과 마을과 저자거리를 오고 가며, 100여척의 배가 떠 다닌다. 중국이 자신들의 방역을 천하라고 오만하게 말했다면, 우리는 이 땅을 강산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인문은 마르고 닳지 않는 우리 땅 위에서 겨레가 사는 풍경을 수놓고자 했다.

<강산무진도>의 부분, 이인문, 조선 18세기, 43.8 x 856.0 cm

김훈은 그의 단편 ‘강산무진’에서 강산무진도에 대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

화가가 이 세상의 강산을 그린 것인지, 제 어미의 태 속에서 잠들 때 그 태어나지 않은 꿈속의 강산을 그린 것인지, 먹을 찍어서 그림을 그린 것인지 종이 위에 숨결을 뿜어낸 것인지 알 수 없는 거기가, 내가 혼자서 가야 할 가없는 세상과 시간의 풍경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김훈의 강산무진을 읽고 ‘강산무진과 함께 한 홍콩 출장‘을 쓴 만큼 알고는 있었다.

시간이 남아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는데 1층 ‘디지털 실감영상관’에서 ‘강산에 펼친 풍요로운 세상, 강산무진도’를 상영한다고 하여 영상관으로 들어갔다.

실감영상관에서는 U자형 스크린은 물론 바닥까지 이용하여 약 십여분 짜리 세편의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처음 본 것은 ‘금강산에 오르다’였다. 정선, 김하종, 김홍도 등의 금강산 실경산수화를 겹쳐 금강산의 풍경을 보여준다.

봄의 금강산
겨울 밤의 금강산

이 영상도 아름답고 환상적이었지만, 그 다음의 ‘강산무진도’는 더욱 좋았다. 아이들 몇 명이 들어와 화면 앞에 쪼로록 앉더니 끝까지 다 보고 나간다. 금수강산 위에서 한동안 신명나게 논 것 같고 꿈꾼 것 같기도 하다.

박물관의 전시품은 지난 것들의 박제들이지만, 디지털로 영상화된 이 실감영상은 현재의 예술로 살아나 큰 감흥을 준다.

강산무진도에 애니메이션을 더하여 스토리로 만듬
강산무진도에 열중인 아이들
강산무진도에서 흘러내린 강물
강산무진도를 나란히 앉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만약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실 일이 있다면, 꼭 한번 관람하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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