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30 15:05 : 언덕 위의 고물 書店

며칠동안 쓸데없는 짓거리에 몰두해 있다. 이웃집 Q를 보며 저 사람은 왜 저 모양 저 꼬라지로 살면서 매일 저 짓거리를 하고 있는 지 도무지 이해 못하는 것처럼, 나는 빙의에 걸린 듯 그 일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대만공항에서 잔돈푼으로 남은 NT$를 소진하기 위해서 비행기가 출발하기 직전, 허겁지겁 집어든 책 중에 끼어있던 <주역만화>를 읽으면서, 그 내용의 방대함과 체계와 주역 해석에 대한 탁견에 감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치 그 일을 끝내버리면 더 이상 아무런 할 일이 없을 것이고 일상이 그만 바람이 빠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그 일이란 사진조각이다. 사진 하나를 발견하고 조각내어 나름대로 형상해 나가면서 쓸데없이 시간을 소진하는 이 일을 보며 아내는 무엇을 하냐고 묻는다. 조각을 하려고 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아내는 이제 그만 사진을 들여다보고 조각을 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사진을 잘라내고 사진의 표면에 거칠게 남아있던 부분과 불필요한 덩어리를 덜어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아내는 모른다. 나는 사진을 가지고 이미 조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이 귀성을 위하여 부모님들께 드릴 선물꾸러미를 들고 퇴근하던 섣달 그믐에 나는 문화상품권을 한장 달랑들고 책방으로 들어가 무료한 삼일을 보낼 책을 산다.

동네 책방은 참고서를 팔기 위한 서점이다. 신간코너에 놓여 있는 책들 중 일부는 이년이 넘도록 방치되어 있다. 바뀌는 책이라곤 요가책, 파페포포, 때론 다빈치 코드같은 것이 올라오는 수도 있다. 책방 주인은 신문도 보지 않는 지 신문에 광고되는 책이 진열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래서 신간코너의 책들은 조금씩 색이 바래어 근사한 구간서적이 되고 있다.

책방 주인은 저 재수없는 친구 또 왔네?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오늘은 책이라도 한권 사려나? 이번에도 안사면 다시는 우리 책방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뭐라고 해주어야지.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그래서 신간코너가 아닌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는 구석의 서가에서 책을 하나 뽑아든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


!  ?

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책의 첫머리, 열두번째 줄에 그렇게 쓰여 있다.

젊고 미모의 여류화가에게 어느 평론가가 찬사의 끝에 '그러나'라는 역접으로 던져지는 깊이가 없다 라는 이 말은 끔찍한 저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이나 인간의 깊이에 대하여 누가 잴 수 있단 말인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소묘) 앞에 불쑥 나선 그녀는 아이들을 인솔한 미술교사에게 "실례지만, 이 그림에 깊이가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라고 묻는다. 그러나 그녀는 미술교사로 부터 비웃음만 샀을 뿐이며, 더 이상 깊이가 없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전도가 양양하던 그녀는 깊이를 찾지 못하여, 결국 높이 139미터의 방송탑으로 올라가 뛰어내린다. 마침내 침몰하지 못하고 추락한 것이다.

그녀의 부음을 접한 그 빌어먹을 평론가는 이렇게 쓴다.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 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그러나 나는 나의 생과 쥐스킨트의 이 글을 읽으며, 그 깊이를 찾을 수가 없다.

2006/01/30 15:05에 旅인...face
2006/01/30 15:05 2006/01/30 15:05
Trackback URL : http://yeeryu.com/trackback/199
◀ open adayof... Homo-Babiens ▶▶ close thedayof... Homo-Babie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