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23 13:05 : 언덕 위의 고물 書店

이제 보르헤스의 책을 대충 마무리 지은 것 같다. 읽어서 버렸다기 보다, 열람의 과정이거나 인덱스화, 그래서 책꽂이에 그의 책을 꽂아 놓고 문득 한번씩 읽어볼 만큼은 되었다고 느낀다.

그의 소설들은 짧지만 지루하다. 소설이기에는 수필이거나 아니면 보고서, 아니면 일기같기도 하다. 일조량이 과다한 남미의 작가임에도 그의 글은 대충 어둡고 쾌쾌한 도서관의 냄새가 난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책을 읽기보다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읽지만 2~3쪽만 읽어도 책 속 가득한 그 음울한 어둠 때문에 졸게 된다. 통상 여덟 정거장 쯤 졸고 다시 깨어나 한 반페이지 쯤 남은 소설의 마지막을 읽는다.

그의 글에는 내가 아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러니까 쓸모없는 지식들로 꽉 들어찬 거대한 도서관, 낭비된 사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몽상들이 손때 묻은 열람카드의 한 귀퉁이에 쓰여 있다. 그 카드를 들고 해당되는 책을 빌려와 펼치면 늘 납득이 안되는 공포와 전혀 인과관계가 성립이 안되는 것들이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심각하지는 않다.

어떤 면에서 그의 책은 하나의 사전이다. 그의 <자이르>는 코엘료의 소설 <오 자히르>의 개념적인 뒷받침을 하고 있고, 또 <바벨의 도서관>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중세 수도원 도서관의 모델이 된다. 특히 움베르토 에코는 수도원 도서관의 눈먼 사서의 이름을 <호르헤>라고 했다. 보르헤스 또한 도서관의 사서이자 늙어서 실명을 했다. 아니 늙어서라기 보다 너무도 많은 책을 읽어서이다. 눈먼 자가 도서관의 사서라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고 기괴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늘 <알레프>적인 것이다.

우주의 모든 사건과 지식이 모이는 그 곳, 알레프에 다다르고 싶다는 열망은, 세상의 지식이 대충 모이는 도서관이나 거대한 포털을 운영하는 자들에게는 못 견딜 정도로 간지러운 갈망이다.

보르헤스는 그 간지러운 갈망이 충족되는 순간에 대하여 쓰고 있다. 그와 함께 그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 대하여 썼다. 보르헤스는 지식의 인간이 바라는 궁극의 상태를 다음과 같은 단어로 기술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공포>라고...

다시 보르헤스의 지루한 책을 야금야금 읽어야 할 것 같다.


참고로 어디에서 퍼온 글을 올린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단편집 <낯선 순례자>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외쳤다.'어떤 여자가 나에 대해서 꿈을 꾸는 꿈을 방금 꾸었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역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마르케스가 덤덤하게 받았다. '그건 이미 보르헤스가 쓴 이야기야.아직 안 썼더라도 언젠가 쓸 것이 틀림없어.'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남미 문학의 두 대가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한 수 위'의 작가로 접어주고 들어가는 장면이다.

2006/06/23 13:05에 旅인...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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