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01 17:30 : 걸상 위의 녹슨 공책

편지를 다 읽은 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밤길을 따라 가은 쪽으로 걸었다. 무작정 걸었다. 나의 머리 속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때론 새제의 길을 야밤 중에 넘는 트럭과 승용차들이 하얗게 빛을 뿌리며 지났다. 다시 아침이 되고 제천이든가 어디인지 모르는 곳으로 떠다니고 있었던 것 같다. 낯선 대합실에 내가 버려져 있거나, 때론 길 위로 은행나무 잎이 노랗다 못해 하얗게 내려앉기도 했다. 어둠과 밝음이 교차되는 곳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고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는 가운데, 집에 도착했다.

14층을 눌렀고, 엘리베이터가 어둠 속으로 떠올랐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나는 초인종을 눌렀고, 어머니가 문을 열었다. 어머니에게 아무 소리도 않고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무척 졸렸다, 마치 천년동안 머나먼 곳으로 떠나 마침내 돌아온 것처럼.

이불이 편안했다. 그리고 내 몸 위로 빛이 조용히 내리면서 몸 위에 소복히 쌓였다. 빛의 무게에 못이겨 마침내 잠이 들고 말았다.

내가 깨어났을 때, 병원 침대였다.

식구들이 내 곁에 와서 살아돌아왔구나 하며 안도를 표시하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곳 저곳 정처없이 떠돌았노라고 했다. 아무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병원에 와 있느냐고 물었다. 식구들은 폐렴에 걸렸다고 했고,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퇴원을 하고, 나는 짐을 찾으러 봉암사에 가봐야 한다 하면서, 그 해 겨울을 넘겼다.

지영이 노르웨이로 가기 전, 한번만이라도 만나기 위하여 그녀가 산다고 했던 동네 부근을 배회하거나, 고등학교 동창 녀석들에게 연락을 넣어 병진의 연락처를 얻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동창 놈들은 공부는 내팽개치고 놀기만 하다, 재수 삼수 끝에 간신히 삼류라도 간 처지였기에 공부 좀 한다는 병진의 연락처를 아는 놈이 없었다. 게다가 병진은 멀리 미국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해 이월이 되었다. 이월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가슴이 많이 다쳤는지 늘 추웠다.

때로 김포공항으로 나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오슬로로 가는 직항편이 없었기에 유럽발 체크 인 카운터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곤 했다.

1986년 2월이 지나가면서 삶에 대한 의욕도 없었고, 더 이상 앞 날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가끔 가슴이 아팠고, 차디찬 냉기가 온 몸을 떠돌아 다녔지만, 잠바깃을 올리고 합정동으로 갔다.

병진의 집 자리는 한강을 건너온 2호선이 지하로 들어가는 터널 입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순교자의 무덤 위에 의연했던 미루나무 가지 끝은 2호선 방음막 위로 보였다. 우리 집은 이미 헐리고 건물을 올리는 지 기둥들이 올라섰고, 집 앞의 공터에는 석재와 자갈들이 부려져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허한 가슴에서 괜스레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는 간신히 절두산 성당 쪽으로 난 굴레방다리를 통해 절두산으로 올라갔다.

어린 시절 내가 앉아 노을을 바라보던 방죽의 자리를 찾을 수 없게 변해 있었고, 노을이 내리는 공엄진과 부근은 지하철 2호선 당산철교가 눈을 가로막았다. 조금 있으면 개나리가 피는 삼월이었지만, 해빙이 안된 겨울강에 비친 오후의 햇빛처럼 명멸하지 않고 번들거리기만 했다.

성모 마리아 상이 있는 옆의 언덕을 지나고 높은 계단을 타고 올라, 성당 위로 올라갔다. 난간에서 잠시 봄이 오는 강을 내려다 본 후, 조용히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성당의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마침내 지영을 보내기로 하고, 먼 곳이나마 그녀가 보냈던 아픔을 치유하고 행복하기를 빌었다.

그러자 지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태허에서 태을로 있다가 문득 공공가에서 놀다, 그만 육합을 만나 천년을 살아볼까 부생을 타고 나왔데요. 그러다 자미로 돌아가면 아예 사라지는 것도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래요."

송광사의 삼청교 위에서 나를 보며 지영이 그렇게 말하곤, 웃으면서

"이 다리의 다른 이름이 능허교래요. 텅빈 것을 밟고 지나는 다리. 우리란 결국 텅비어 있는 것이 천지사방을 만나 꿈꾸는 것에 불과하죠. 우리의 사랑마저 텅비어 끝이 없다는 것도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하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성당을 벗어나, 어지러워 아래가 아득한 계단을 내려가 합정동을 지나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멀리에 있는 집으로 갔고, 다시 시간이 지나고 어느 회사에 경력사원으로 들어갔다. 세상의 허무는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허무야 말로, 아름답고 멈추고 싶은 시간들을 퇴색시키는 반면, 인간이 지닌 무수한 아픔과 슬픔마저 바래게 했다. 그래서 세상의 허무는, 그만 재미없는 세상에 나를 그냥 살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미로 돌아가면, 텅빔 만이 서로 사무치는 것이라서 여기서 사나, 죽어서 저기로  가나, 그것이 그것인 바에야 풍진세상 한바탕 꿈이라도 꾸는 것이 나았다.

지영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속 밑으로 가라앉았고, 추억이 되고, 마침내 살과 피가 될 즈음에, 나는 결혼했다.

지영이 나를 사랑했던 것처럼, 아내를 사랑했다. 우리는 이듬해 아들을 낳았고, 아들이 세살되던 해에 중고차를 장만했다. 짙은 가을이 오자 불현듯 오래된 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아들을 실은 차는 문경새제를 넘었고, 예전의 자갈길의 자갈들을 뽀드득 밟으며 봉암사로 가고 있었다.

봉암사에 다다르자 계곡 속에는 단풍이 잔뜩 들었고, 오후 두시의 가을빛 아래 예전처럼 개울이 자갈들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예전의 묵었던 방이 비어 있었다. 아내는 지영처럼 창문을 열고 턱을 창 턱 위에 올린 채, 계곡을 바라보며,

"여기 참 좋다. 계곡도 아름답구, 낡았지만, 아까 주인 아줌마가 말하던데... 오래 전 몹시 사랑했던 연인이 지나갔던 방처럼 느껴져."

라고 말했다.

나도 나란히 창 턱에 턱을 올리고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아내의 얼굴 위로 "아니 왜?"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아내에게 웃음지었다.

아내의 모습을 보며, 더 이상 짐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래 전 이 방을 스쳐간 옛날 사람일 뿐이지, 더 이상 과거에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

아내는 째죽거리며 걷는 아들을 데리고, 닫혀 있다고 해도, 가을 빛이 너무 좋다며 산문 쪽으로 걸어갔다.

가을 오후의 햇살이 너무 좋아 어지러웠다.

창턱에 턱을 걸치고 가은으로 이어지는 길을 보았다. 길 끝에서 버스가 오는지 먼지가 피어올랐다.

2008/07/01 17:30에 旅인...face
2008/07/01 17:30 2008/07/0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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