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12 15:49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이년전 여름 마카오를 들렀을 때 한가함을 만났다. 그때는 그 한가함이 허구가 아닌가 했다. 이번에 토요일과 일요일을 빌어 나 혼자 다시 아오먼(澳門)을 왔는데 한가함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내가 묵은 남유에호텔(南월酒店)은 페리부두(港澳碼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마카오 한쪽 구석의 형편없는 호텔이어서 내 기분을 잡치게 하였다.

며칠을 숙면을 취하지 못한 까닭에 한숨을 자려고 하다 낮잠도 오질 않고 하여 호텔 앞에서 호텔 리스보아까지 난 우중충하고 심드렁한 도로인 Avenida Do Dr Rodrigo Rodrigues(羅理基博士大馬路)를 따라 걸었다.

길모퉁이에 포르투갈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그때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북회귀선의 상공으로 7월의 태양이 선회하는 오후 3시, 폭양은 수직으로 길거리에 쏟아져내리고 나른한 가로수들이 한가한 도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상점의 유리와 간판들이 먼지로 퇴락되어 있다. 질서없고 나른하며 오후 3시의 햇빛과 그림자---이런 것들이 혼합되더니 길거리로 한가함이 소리없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걸어 Leal Senado Square Correios(議事亭前地)에 갔다. 이 광장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노란색, 하늘색, 오렌지색의 파스텔톤 색조의 건물 위로 7월의 파란하늘이 내려앉는다.

볕을 피할 겸 광장 옆에 있는 성당 안에 들어가 벤치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마음이 편안하다. 광장의 소음이 안으로 스며들어도 성당 안은 자신의 고유한 침묵으로 조용하다.

바울성당의 폐허(Ruinas de S.Paulo)를 찾아 또 걷는다. 길을 잘못 들어 大包臺 밑의 주택가로 들었다. 길은 그림자와 습기 그리고 꾀죄죄함이 있었다. 삶은 그 안에 늘 꾀죄죄함이 있다. 꾀죄죄함이 깊을 수록 삶은 보다 단순해진다. 그러나 그 꾀죄죄함이 싫어 사람은 성스러움과 영광을 만든다. 그 예가 여기로 영광을 상징하는 대포대(Fortalezado Monte)가 있고 바로 아래 바울성당의 폐허, 그 아래로 서민들이 사는 그림자와 습기 그리고 더위에 휩싸인 꾀죄죄한 거리가 있다.

중앙대포대를 넘어 바울성당의 폐허에 갔다. 포대의 앞은 고층건물에 가려져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 아래의 폐허에서는 두말할 것 없다. 이전에는 그들은 남지나해를 바라보면서 적을 맞이하고 순풍을 기원하기 위하여 이들을 만들었으리라.

폐허! 바울성당은 결코 폐허가 아니었다. 폐허 속에는 애잔함이라든가 회고할 과거의 영광이 없다. 본래의 실용성을 상실함으로써 기념비가 되어버린 폐허였다. 만약 건물이 화재를 겪지 않고 성당으로 존재하였더라면 그 앞은 사제와 신도들이 저자거리를 이루고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망설임을 지불하고서는 모자를 벗고 발꿈치를 들고 조용히 안을 들여다보아야 했을 것이다.

폐허가 됨에 따라 성당 안은 공허해지고 권위는 화재에 소실되고 자유로운 대기 속으로 열려져 있다. 단지 성당의 전면 만이 높다란 계단의 저 아래 속세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미 제단과 지성소는 사라졌다. 그러자 성스러움은 허구로 변했다. 단지 과거에 있었던 영광의 흔적으로 전면 벽의 부조와 박공 속에 놓인 동상, 그리고 화강암의 황금분할, 조각된 기둥들이 남아있고 그 아래로 성·속을 가르는 높다란 계단이 속세 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

벽에는 해골과 괴물이 돋을 새김되어 있다. 죽음과 공포는 신앙의 반석인 것이다. 그러나 신의 이름으로 세워진 성당마저도 사멸의 이름다운 그림자 속으로 침몰 중이다.

정신적으로 진화되지 않은 인간에게 불멸이란 하나의 비극일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는 영혼의 방황, 추잡한 사념들, 불면의 밤---인간들이 취하는 쾌락은 반딧불과 같은 짧은 명멸. 불멸이란 끝나지 않는, 밤이 없는 영원히 계속되는 오늘과 같은 것.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없어 과거와 미래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에게 불멸이란 사악한 저주일 뿐이다. 그래서 부처가 옳다. 「지금 여기에 살 수 있는 자는 해탈과 함께 불멸에 이르며 자유를 얻으리라.」

폐허 위로 시간이 조금씩 아름다움을 음각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만약 이 자리가 완전한 폐허가 된다면 바로 그 직전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계단의 턱에 앉아 폐허를 본다. 그 턱은 낮의 햇볕에 달구어져 온돌처럼 따뜻하다. 나른하다.

다시금 의사당 앞의 광장으로 내려왔다. 광장에서는 마카오의 중고등학생으로 된 취주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오후 네다섯 시의 시들은 햇볕이 뉘엿뉘엿 서쪽으로 향할 때 무심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란 편안한 쾌락이었다.

심심하기도 하여 광장 옆의 이발소에 들어가 이발을 하였다. 이발사는 할아버지였는 데 내가 그들의 말을 모르자 상당히 난감해했다. 그러나 이발을 정성껏 해주었다.

이발소에서 나왔을 때 이미 연주는 끝나고 다른 팀이 연주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호텔로 돌아섰다.

가는 길에 호텔 리스보아를 들렀다. 호텔은 카지노와 연결되어 있었다. 값비싼 호텔에 걸맞게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과 반짝이는 구리장식들로 치장된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늘씬한 아가씨가 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중국에서 돈을 벌러 내려온 매춘부들일까? 사람들은 카지노 입구에서 서성거리거나 웃음을 띠고서 성큼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포도주를 사기 위해서 호텔 안의 상점에 들어섰으나 가격이 너무 비쌌다.

다음날 호텔 측과 계산 상의 문제로 불쾌한 느낌을 갖고 호텔을 벗어났다. 호텔 리스보아에서 차를 내려 다시 어제의 길을 거닐다가 옆으로 살짝 빠졌다. 거기에 대리석으로 만든 팔각정(Chinese Library라고 지도에는 되어있음)이 있는데 그 안에는 사람들이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들은 속내의 차림의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보자 중국과 포르투갈이라는 문화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각정을 지나자 공원이 있고 핑크색 벽을 바탕으로 분수대가 있었다. 분수대를 끼고 계단을 올라가자 과거의 포르투갈 주둔군의 병영이 있었다. 병영의 마당에서는 호텔 리스보아가 나뭇잎 사이로 보였다. 그래서 거기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 익숙지 않은 것은 단순할지라도 그리기가 어렵다. 그림을 그리려니 한가한 마당에도 사람이 오고 가고 잠시 지나는 비가 내렸다. 그래서 대충 그리기를 마치고 의사당 앞의 광장으로 갔다.

일요일이라 광장의 성당에 미사가 있으려니 했으나 미사는 없었다. 미사가 없는 성당은 더 이상 성당으로서의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또 자리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묵상을 했다. 그러나 무수한 사념들이 혀를 내밀고 떠들어댈 뿐 진정한 묵상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통성기도를 하고 아버지 하나님하며 울어 예음으로써 자신의 사념 속에 깃든 무수한 소음들을 잠재우려 하는 지도 모른다.

광장을 지나 어제 보아두었던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주문했다. 포르투갈 음식인 데 백포도주와 곁들여 먹으니 맛이 훌륭했다. 그만큼 어제 호텔식당의 뷔페의 음식은 너무나 형편없어 억울했다.

점심을 먹은 후 다시 걸어 호텔 리스보아로, 거기에서 택시로 페리부두로 가서 홍콩으로 가는 배를 탔다.

느슨한 마카오와 비교할 때 깔끔하기 이를 때 없는 홍콩으로 향하면서 그다지 내키지 않는 점은 이 세상에 배금주의자들의 땅이 아닌 곳이 어디 있으랴마는 홍콩이야말로 그들의 속성과 그들의 산물이 넘쳐흐르고 생활의 꾀죄죄함을 뒷골목 쓰레기터에 내다버린 만큼 비정하고 스테인 냄새가 나는 곳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삶을 이어가는 나의 꾀죄죄한 곳이라는 점이 그 곳으로 가기를 저어하게 만드는 곳이라는 것......

태풍 1호 발령, 홍콩의 앞 바다가 모처럼 물보라와 거친 파도를 드러내었다.

2000년 7월15일과 7월16일의 여행
2000년 7월 17일 내다봐 씀

2006/06/12 15:49에 旅인...face
2006/06/12 15:49 2006/06/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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