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27 13:47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여행이란 사소한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이 황홀하다. 기대감과 호기심, 그리고 자신이 마주할 진기한 경험 혹은 낯선 곳의 밤과 고독한 광장 위에 떨어져 내릴 햇빛, 그리고 창문을 열면 다가올 그 곳의 공기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는 나의 여행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여행에서 돌아오고 난 후에는 사소한 것들만 나의 기억에 남았다.

그것도 여행과 관련이 없는 것들이기도 했다.

가령 어느 시골 소읍의 우체국에 들러 무지의 엽서 한 장을 사서 파란 볼펜으로 무의미한 글을 써서 여자친구에게 부친 후, 시외버스를 타고 떠나면서 그 곳에 무한한 애정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

또는 어느 곳으로 가기 위하여 낯선 도시에 세시간 쯤 머물게 되는 경우가 있는 데, 어두컴컴한 다방에서 그 시간을 다 탕진하고, 서울로 돌아와 그 도시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할 수도 있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읽으면 단문으로 된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도시들은 그 낯선 이름만큼 달콤하며, 반짝이는 빛으로 영롱하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도시는 늘 먼지와 온갖 소란 속에 휩싸여 있게 마련이며, 숙소의 창은 광장을 향해 있기보다 초라한 뒷골목을 향하여 열려 있다. 그러니까 지드의 기록은 허구이거나, 혹은 그곳을 여행한 지 오래되어 여행지의 온갖 불순물들이 시간 속에 여과된 후 남은 앙금이거나, 둘 다 일수도 있다.

까뮈인지, 그르니에인지, 혹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글인지 잘 기억나지 않으나, 오랜 여행의 끝에 스페인의 어느 해안도시에 다다랐고, 창의 덧문에 난 조그만 구멍 사이로 바깥을 내다보는 순간, 엄청나게 넓은 세계를 조우하게 된다. 그러한 조우는 내면의 세계에 까지 흘러내려 갔고 그는 더 이상 여행이 필요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여행은 이런 것으로 우리의 생각과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마카오의 웨스틴 리조트 호텔의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가족과 함께 포도주를 곁들여 근사한 점심을 즐기거나 수영장에서 어린 자식들과 함께 물놀이를 즐기다 객실에 들어와 뽀송한 린넨 시트 위에서 잠에 들고, 꽃으로 단장된 릭샤에 올라 여름 정오에 남지나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시내를 들러보던 그 행복했던 한 때보다, 어느 토요일이 기억난다. 홀로 배를 타고 마카오 부두에 내려 남루한 호텔 방에 들어 낮잠을 잤다. 생폴 성당과 대포대에 올라가 한 여름의 무더위에 포격을 당한 뒤, 좁고 습기 찬 골목을 따라 세나도 광장에 이르러 북회귀선의 햇빛에 달구어진 포석 위에 지친 몸을 부려놓았을 때, 내일까지 할 일이란 없고, 호주머니에는 몇 푼의 돈과 카드 만 있으며, 아는 사람도, 좁아터진 마카오에는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저녁을 향해 떠가는 구름이 하늘을 더욱 파랗게 보이도록 했다. 광장의 한쪽 구석에서 고등학교 취주악대가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때 가벼운 멀미와 같은 자유가 나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여행이란 단순히 말하자면,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에 불과하다. 그 도피의 종점은 우리가 열망하는 자유이나, 그 자유의 깊이나 의미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단지 느낄 뿐이며, 아쉽게도 순간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른 여행을 희망하게 되며, 다음 여행에는 너무 많은 짐과 그것보다 더 무거운 기대란 갖지 말아야 한다.

낯선 도시에서 뒤늦은 낮잠 끝에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피로한 몸을 이끌고 식당을 찾기 위하여 어두운 뒷골목을 지날 때,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흘러가는 쪽으로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문득 골목은 끝나고 광장이 나타난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고, 광장에 가득한 사람들 속을 이방인이라는 것을 감춘 채 은밀하게 스며든다. 그때 광장의 한쪽 구석에서 울려퍼지던 음악보다 적막한 밤이 폭포처럼 나에게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2007/02/27 13:47에 旅인...face
2007/02/27 13:47 2007/02/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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