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화딱지)

화딱지1> 퇴근시간에 지하철에 올라탔을 때, 지하철에 올라타서 자리에 앉기에 수치스러울 정도로 덩치가 큰 중년 사내가 졸고 있었고, 그 옆에 앉았던 아가씨가 내리는 바람에 자리가 생겼다. 나는 비좁은 그 자리를 비비며 앉았고, 지하철이 늘 그렇듯, 속력을 올리고 줄임에 따라 이 몰염치하게 큰 덩치가 한번은 아가씨 쪽으로 한번은 내 쪽으로 해일처럼 밀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밀려오는 그를 한쪽 어깨로 막아내야만 했다. 아 빌어먹을! 왜 이렇게 불필요하게 덩치가 큰거야?

화딱지2> 그러니까 지하철을 타면서 마실 가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고, 아내는 조금 늦을 것이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와 열시가 되도록 기다리다가 내가 밥을 차려먹지 하고 냉장고를 열었다. 그 안에 무엇인가 잔뜩 들어있는 데, 반찬을 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반찬거리할 것이 없는 냉장고를 꽉 채워 놓을 수 있는 아내의 재주에 감탄하면서, 냉장고 속에 혹시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을까 하고 세번이나 열어본 후, 결국 밥과 함께 먹을 만한 것이 멸치꽁다리 하나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래서 라면을 찾았다. 그러나 라면조차 오늘은 부재 중이시다. 결국 식어버린 국을 끓이고 고추가루가 모자란다고 대신 소금을 더 넣어 풋풋한 배추냄새가 가실 줄 모르는 김치에, 버터조각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결국 예상한대로 아내는 식사를 마친 후 오분도 안되어 짠~하고 나타났다. 알타리김치와 포기김치를 마실 간 집에서 얻어들고서… 그럼에도 별 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도 없는 것처럼 “마누라를 밥하는 사람으로 한정짓지 말라”고 선언한다. 네 알았습니다. 사모님!

나는 노여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 분노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소하다. 짜증과 같은 것일 뿐이다. 분노라고 부를 거창한 것은 나에게 없다. 짜증이나 노여움 보다 폭발할 것 같은 분노, 정의나 양심 아니면 인간의 존엄성에서부터 폭사되어 나오는 분노가 나를 압도해 주기를 때론 바란다.

어렸을 때는 기쁨과 슬픔, 치기와 우울과 짜증과 안타까움 이런 것들을 구분할 관념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에 이 모든 것이 정서적인 격정의 상태, 혼돈 그 자체였던 모양이다. 마음 속에 담겨있던 무수한 감정을 외로움과 슬픔, 심심함, 기쁨이라는 관념으로 여과해내고 구분해 내게 되면서 어둠과 같은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자신의 감정에 휩쓸려 흘러가던 야만으로부터 드디어 인간이 되었는 지는 몰라도, 잃은 것은 야만의 격정과 자유였다. 그래서 인간인 나는 오늘 조용하게 노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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