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30 18:52 : 무너진 도서관에서

팔일편은 예와 음악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해석학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담지하고 있다.

夏나라의 의례는 내가 말할 수 있으나, 杞나라에서 이를 징험할 수 없다, 殷나라 의례 또한 내가 말할 수 있으나, 宋나라에서 이를 징험할 수 없다. 자료(文)와 현인(獻)이 없는 때문이다. 문헌만 충분하다면 그 의례들을 고증할 수 있을 것이다.팔일-09 : 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라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 기는 하의 후손들을 위한 봉토이며, 송은 은 주왕의 형 미자에게 봉한 나라이다. 또한 문헌은<집주>에 문은 전적이며, 헌은 현인이다(文典籍也獻賢也)이라고 되어 있다.

집주의 이 부분이 맞는 지는 알 수 없으나, 한대 이전의 고문, 특히 논어가 출현한 전국시대에는 두 글자로 한 단어를 나타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문헌>은 현재의 <글로 기록된 자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문과 헌은 각기 다른 것을 뜻한다는 점에서 주자와 같이 해석해 볼 여지는 충분히 있는 것이다.

해석학(Hermeneutics)은, 그 명칭이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사자로서 활약한 그리스의 신 헤르메스에서 나왔다. 네이버의 날개달린 모자도 그가 쓰던 페타소스이다. 그러니까 신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서 시작한 것 같다. 그 후 고전(특히 성서)의 번역과 해석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 하는 기술로써의 해석학은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슐라이어마허가 <이해는 저자의 정신적 과정의 추체험(追體驗)이다>라고 함으로써 딜타이의 정신과학(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일부)으로 넘어간다.

사실 이해가 선행하지 않는 번역과 해석은 없는 것임에도, 딜타이 이전까지는 인간 이성의 보편성(근대철학의 경향)에 비추어 볼 때, 설명(번역과 해석)이 잘되어있다면 이해는 가능하다고 보아왔던 것이다.

딜타이는 자연과학이 아닌 <정신과학의 대상은 인간의 내적인 과정에 영향을 주는 사실 또는 현상>이라고 한다. <인간의 내적 삶의 의미를 인식하는 방법인 이해는 개체(孔子)와 개체(旅人) 그 자체로 평가된다>고 하면서, <인과적인 범주를 통한 인식방법인 설명은 자연과학에나 소용될 뿐 삶, 즉 인간 경험의 총체성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한다. 논어를 읽기 이전에 이와 같은 대화가 있게 된 시대 배경을 살피고, 공자의 호적등초본을 떼어보고 하는 것도 딜타이의 말마따나 이해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공자의 내적 삶을 좀더 깊숙이 들여다 보겠다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딜타이가 이해를 정신과학의 방법론으로 수용했다면, 하이데거는 이해를 존재론적인 것으로 보았다.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풀어 쓰면, 철수를 철수로 있게 하는 것은 그 만이 체험한 독특한 시간과 공간이다. 철수는 자신 만의 독특한 <세계-내-존재>이다.

이런 하이데거의 논지를 참고하자면, 나와 같은 싸가지가 없는 놈이 싸가지가 없자고 작정을 하고 노력을 하여 싸가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독특한 경험적 시간과 공간(교육, 집안 형편, 왕따 여부 등등의 복합적이고 독특한) 속에서 열심히, 또 평범하게 살아가는 방식이 나와 다른 세계-내-존재로서 살아가는 타인에게 싸가지 없다고 비춰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당초 이성의 보편성은<1+1=2>라는 수학에나 적용되지 개인의 삶 속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해란 <세계-내-존재>의 구성요소로 이 세계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경험적 수준에서의 실제적인 이해가 있는 것을 가능케 하는 존재구조이다 라고 씨부렸는 데, 이것은 한마디로<세계-내-존재>로서의 나의 선입견이 이해를 가능케 하는 기반이라는 뜻이다. 선입견이 없을 때, 우리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교육이라는 것도 이러한 선입견을 수정하여 보다 나은 선입견으로 유도하는 것일 뿐이다.

후일 이러한 이론에 대하여 베티가 텍스트는 비록 해석자의 선이해(선입견)에 의하여 조명된다고 하더라도, 해석자의 선이해를 강화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해석자가 모르는 것, 해석자의 이해행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 있다고 하이데거의 제자 가다머를 비판한다.

해석학을 일언이폐지하면 모든 이해는 오해일 뿐 이라는 것이다.

너무 길어졌다. 해석학은 나도 잘 모르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은연 중에 사용하고 있으며, 생활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논어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공자의 내가 말할 수 있지만은 분명히 해석학적 언명이다. 거기에는 상상적인 체험을 통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실증적으로 나의 말의 진위를 검증할 수 있지는 못하다는 엄밀성이 있다. 즉 술이편에 기재되어 있는 "기술하되 노가리는 풀지 않는다"(述而不作)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자료가 있다면 내가 말(생각)한 것(선입견)을 비판적으로 검증하여 보다 확실한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해석학적 순환(선입견을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가는 것)을 공자는 말하고 있다.

논어의 편과 장에 대하여 말한다면, 확실치는 않지만 분서갱유 이후 발견된 죽간(책)의 위편(죽간을 잇는 끈)이 끊어져 착간이 생기다 보니 편명을 지어 분류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 같다. 아니면 산재되어 있는 자료를 채집하여 종합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간에 공자는 논어를 저술한 바가 없다. 공자는 다만 씨부렸고 그 누군가가 그것을 채집하여 논어를 만들었다. 그럼 누가 채집하여 만들었는가? 그 누군가는 논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그자이며, 칭찬을 많이 받은 바로 그 사람이다. 거기에서 공자 사후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누가 승리했는가가 나타난다. 신약성서에서도 그것은 동일하게 나타난다. 나를 일으켜 세울 자는 복상(자하)이리라팔일-08 :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와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반석)라 내가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는 너무도 닮아있다.

공자가 평생동안 무지하게 많이 씨부렸을 텐데, 子曰 포함 불과 11,000여자에 불과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진시황의 ‘진(秦)나라의 형법에 몰래 서적을 사장한 자는 일족을 모두 사형’한다는 협서율(挾書律)이 있었음에도 한대에 들어 폐지되고 난 후, 삼종의 논어가 나타났다는 것은 진나라 이전에 상당량의 이본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추정케 한다.

훈고학이란 명칭은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던 한당시대에는 없었다. 의리파가 득세하던 송명연간에 한당때의 경학의 성격규정을 놓고 훈고학이라고 했던 것이다. 훈(訓)은 언어(뜻), 고(言古)는 옛언어이다. 한마디로 글자나 풀이하고 주석이나 달고 하는 것이라고 우습게 본 것이었다. 그러나 허신의 설문해자가 없으면 진한의 예서 이전의 고문과 육국문자에 대하여 해석이 어렵고, 마융, 정현(삼국지에서 유비의 스승) 등의 주석과 왕필(삼국지 형주 유표의 증외손자), 하안(조조의 의붓자식이자 부마도위, 대장군 하진의 손자) 등의 주석이 없으면 의리파가 없고, 당의 공영달이 없으면 주석들의 종합이 없었다.

송대 이학(성리학)으로 대표되는 의리학은 실상은 위진 현학(왕필과 하안)에서 나온다. 한 사람(왕필)의 천재성은 어떤 면에서 학문의 변혁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질적 저하(학문적 타락) 또한 초래할 수 있다. 그의 학문적 방법론은 정현 등의 注疎가 번잡하다고 보고, 근본적인 것을 숭상하고 말단적인 것을 사라지게 한다(崇本息末), 간이함으로 번잡한 것을 디스린다(以簡御繁) 등을 주장하며, 뜻을 얻으면 상(Sign: 글자나 기호)을 여의는(得意忘象) 방법을 사용했다. 즉 武家의 고수는 품세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주계의 이학은 당의 불교와 귀족사회에 대한 앤티테제로 출발해야 할 필요를 느끼며, 불교에 대해서는 우주와 인성에 대한 본체론적인 형이상학이 필요했고, 세습귀족에 대해서는 군자의 덕을 지닌 사대부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주돈이, 정이천, 장횡거, 주희 등은 방법론을 왕필과 하안의 현학에서 구하는 한편, 계룡산으로 올라가 태극도설을 짓고, 근사록으로 쓴 후, 사단칠정에 이기론, 격물치지 등의 이론적 백그라운드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학으로는 안된다고 판단하고, 논어와 맹자와 함께 예기에서 절편하여 대학중용을 산입, 사서를 만들고 집주를 단다. 그러나 정주계의 이학은 위진현학이 그렇듯 사변적이다.

이 사변적이라는 것은 학문 상 별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별로 책도 읽지 않으면서 방바닥에 누워 헷또만 굴리고, 현실의식에 둔감한 반면 자신의 의견에 누가 뭐라하면 마구 뒤집어지는 경향이 있다. 가끔 생각하건데 다산의 독서량에 대해서는 믿어 의심치 않지만 율곡과 퇴계가 나보다 많이 읽었을까? 하고 자문해보면 글쎄? 다. 물론 사서삼경은 골 빠지도록 읽었겠지만.

다시 도올 김용옥 선생이 침을 튀겨가며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귀절로 돌아가 보자.

자하: '우아한 미소의 이쁨이여, 아름다운 눈동자의 명료함이여, 분칠한 곳에 색조를 들임이여' 공자 샘! 이거 뭐라고 씨부린 거죠?
공자: 백지가 있은 후에 그림을 그린다.
자하: 예가 다음이란 말씀인가요?
공자: 나를 일으켜 세울 자는 복상(자하)이리라. 이제부터 너와 함께 시를 논할 수 있겠다.
팔일-08 : 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여기에서 繪事後素(백지가 있은 후 그림을 그린다)에 대하여 <집주>에는 회사(繪事)란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후소(後素)란 하얀 것의 다음이다. 考工記에 말하길... 분지가 있은 후...이렇게 되어 있다. 도올은 여기에서 백색 바탕은 수묵화가 생긴 당송 이후다. 그전에는 채색후에 흰색을 칠했다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주자의 해석이 틀렸다고 하며 정현의 고주가 옳다고 한다. 그것은 맞을 지 모른다. 공자 당시에는 분지(粉地)라고 할만한 것(종이 등)도 없었다. 그러나 후소의 素를 희다 대신에 바탕이라고 해석하면 해석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바탕이 있은 후 그림을 그린다. 자하가 예가 (인의)의 다음이란 말씀인가요? 하고 묻는다면 딱 들어맞는다.

도올께서는 주자가 주한 것이 어거지임의 예증으로 이것을 들었다. 그러나 주석이 좋은 것은 그것을 비판하며 끊임없이 신주를 달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거지에 대하여 고증학(考證學)이 나왔다.

고증학을 대변하는 용어는 유명하게 회자되는 실사구시다. 학문을 닦고 옛 것을 좋아함은 사실에서 옳음을 구하는 것이다(修學好古 實事求是)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해하는 실질적인 것이 옳다 하는 이용후생적인 의미는 아니다. 아주 엄밀하고 실증적인 개념이다. 여기에는 본증(本證)과 방증(傍證)이 있다. 본증은 성서로 돌아가자! 식으로 그 문서에서 고찰하는 것이다. 방증은 관련문서 혹은 시대사료 등을 통하여 본증을 더욱 심화하여 고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사구시는 방바닥에 누워 짱구나 굴리지 말고, 자료를 통해서 옳은 것을 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추체험과 해석학적 순환을 자료를 통해서 꾸준히 진행시켜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고증학이 왜 실학과 관련이 되느냐면, 수많은 전적과 사료를 케이스 스터디하고 좋은 점을 벤치마킹할 때, 그것이 이용후생에 도움이 되며, 관념적이 되지 않고 현실적이 된다는 것이다.

무척 길어졌지만, 여기에서 부활절이 지난 만큼 기독교에 대해서 잠깐 한마디하고 글을 끝내겠다.

나처럼 성경책을 꽤 읽어보았어도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이 있는 반면, 성경책 한 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채 기독교도인 사람이 있다. 잘 보면 같은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 임에도 그가 믿는 여호와와 나의 여호와가 틀리며, 내가 아는 예수와 그의 예수는 다르다. 주의해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경은 하나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서로의 내적 체험의 세계는 대양을 사이에 둔 대륙과 같이 멀고 다르다. 그렇기에 성경이 똑같이 이해될 수는 없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할 수도 없다. 그리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은 자신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섬에서 여호와와 예수를 만나고 있다. 즉 이름만 같을 뿐, 각자의 신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천차만별 다양한 종교적 흐름을 하나로 가지런히 하여 하나의 기독교를 지향하기 위하여 교회는 사도신경을 만들었다. 사도신경은 믿음의 공약수이자, 믿음과 불신, 천국과 지옥의 가름이며, 이교도가 멈추어선 자리이다.

나는 예수의 말씀을 믿는 자이나, 사도신경을 부인하는 자로 이교도이다.

▶ 원문보기 : 논어03 八佾

2005/03/30 18:52에 旅인...face
2005/03/30 18:52 2005/03/3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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