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10 01:55 : 걸상 위의 녹슨 공책
DancingWindBrdg

금각사를 읽다가 벽암록 63칙 남천참묘의 해석을 보자 불현듯 통도사가 생각났다. 아마 남천참묘의 구절보다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79년의 여름, 통도사에 이틀인가 삼일인가 머물던 그때를 생각나게 했을지도 모른다.

<남천(보원)스님이 고양이를 칼로 두동강이 내다(南泉斬猫)>는 남천 슬하의 땡중들이 꼴베기를 하다가 만나 새끼고양이를 서로 자기 것이다 라고 우기는 사태가 벌어지자 남천이 꼴 베는 낫을 들어 “너희들이 올바른 해결책을 구하면 고양이를 살려줄 것이고, 구하지 못하면 즉각 베어버리겠다”라고 하자, 대답이 없었다. 그에 남천은 고양이를 베어 죽인다. 그 날 저녁, 수좌인 조주가 돌아왔고 남천은 제자에게 오늘 낮에 여차저차 했는 데 너라면 어찌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주는 짚신을 벗어 자신의 머리에 올린 채(제 64칙 趙州頭載草鞋) 나가버린다.
그 모양을 본 남천은 “아아, 오늘 낮에 네 놈이 있었다면 고양이 새끼는 살았을 텐데.”라고 탄식한다.

금각사의 주지 다야마 도센은 <남천이 고양이를 벤 것은. 자아의 미망을 끊어 망념과 망상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비정한 실천으로 고양이의 목을 자르고 일체의 모순, 대립, 자타의 확집을 끊은 것이다. 이것을 살인도(殺人刀)라 일컫는다면, 조주의 그것은 활인검(活人劍)이다. 흙투성이가 되어 천대받는 신발을, 무한한 관용에 의하여 머리 위에 올려놓음으로서 보살도를 실천한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주인공의 친구인 가시와기는 <고양이가 미의 결정체였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해석자들이 간과하고 있지... 미라는 것은, 마치 뭐라 할까, 충치와도 같은 거야... 나에게 통증을 주고, 나를 끊임없이 그 존재 때문에 고민하게 만들며, 또한 나의 내부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던 것이, 지금은 죽어버린 물질에 불과하군. 하지만 그것과 이것이 정말로 같은 것일까? 만약 이것이 원래 나의 외부 존재였다면, 어째서, 무슨 인연으로, 나의내부와 연결되어, 내 통증의 근원이 될 수 있었을까? 이 놈이 존재하는 근거는 뭘까? 그 근거는 나의 내부에 있었을 까? 아니면 그 자체에 있었을까?... 알겠나? 미란 그런거야. 그러니까... 고양이는 죽었어도, 고양이의 아름다움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이토록 해결이 안이했던 것을 풍자해서, 조주는 그 머리에 신발을 올려놓았지...>라고 말한다.

금각사 주지의 해석이 벽암록의 주소류에 달린 고답적인 것이라면, 가시와기의 해석은 남천참묘와 조주의 짚신의 본의와 상통되지는 않을지라도, 그의 연기론적인 해석은 나가르주나의 정치한 공관론적인 사유에 맞닿아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벽암이 채집한 공안들에 대한 구구절절한 해석은 쓸데없는 구업(口業)에 불과할 뿐,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염화시중의 미소가 될 수는 없다.

그해 여름, 경봉선사가 계시던 요사채의 뒷문을 열었을 때, 보리수를 보았고, 햇빛이 쏴르르 소리를 내며 잎을 흔들고 지나는 정적에 잠시 떨었고, 숲의 삼엄함 때문에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내가 아~하고 낮은 소리를 내자, 잎사귀 사이에 맺혀 있던 햇빛들이 분분히 떨어져 오후를 향해서 달려가기 시작했고, 나는 모든 것이 너무 평화로와 그 빛들을 맞으며 기지개를 켰다.

후일, 내가 벽암록이나 흔한 공안을 보면서 저 위의 64칙에 나오는 조주할아버지 이야기에 늘 따라붙던 그 趙州木(뜰 앞의 잣나무: 庭前柏樹子)에 대한 영상은 늘 그 보리수가 대신하곤 했다.

아마 금각사를 읽으면서 통도사를 떠올린 것은 통도사에 도착한 그 날, 백운암에서 우리를 맞이하러 내려온 방장과 고시생들이 들려준 그 이야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조주의 머리에 올린 짚신이 어쩐지 백운암의 주지를 떠올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백운암에 기거하던 고시생들은 주지를 도리우찌라고 불렀는 데, 그는 50cc짜리 오토바이로 산길을 드라이브하는 일을 즐겼고, 염불도 제대로 못했다. 그는 늘 도리우찌를 쓰고 다녔는데, 도리우찌라는 것이 꼭 짚신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지 않은가?

우리가 술이 얼마쯤 들어갔을 때,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여기에서 벌어진 일이 서울의 신문에는 났나 모르겠네?”

그 말이 나오자 이구동성으로 야 그런 일이 신문에 나면 이 곳이 이렇게 조용하겠냐, 그 일이 사실이겠냐, 사실이다, 아니다 하면서 시끄러웠고, 술집 여주인까지 거들며 그것이 사실이라며, 요 며칠 전 그 지서에서 일하는 순사가 와서 자신이 확인을 마쳤다면서 넌지시 막걸리 주전자와 안주를 올려놓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무슨 일인데요?”하고 우리가 묻자,
“혹~시 시~간이라고 아요?”
“시간이라면?”
“시체에 흘레붙는 것 안있습니껴?”

나는 놀랐지만 흥미가 있었기에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러니까 갱찰이 따묵읏따 아입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달 전 쯤 통도사 앞의 여관에서 젊은 처녀가 자살을 했다. 검시관이 오기 전까지 지서의 젊은 경찰이 자리를 지켰고, 검시관이 와서 사인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정액이 발견되었고, 자살이 아니라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과정에서 젊은 경찰이 죽은 여자가 너무도 예뻐서 그만 덮쳤다고 자수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경찰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궁금하지요?”

그는 막걸리를 한모금 쭉 들이키고,

“재수가 좋을라카면 그리도 되는기라. 그 소리를 듣고 지서장캉 양산서장캉 심정이 우옛겠습니껴? 문디이같은 자석 때문에 모가지가 날라간다고 목을 쭉 빼놓고 있을 때, 서울서 죽은 처녀의 아버지가 비까한 리무진을 타고 지서에 턱 나타난 것 아입니꺼. 양산서장이 눈썹을 휘날리며 지서에 도착하니, 처녀의 아버지가 죽은 처녀를 따 묵은 갱찰을 붙들고 뭐라캤는지 아능교?”
“뭐라고 했는데요?”
“아이고, 우리 사위~ 했다는 것 아입니까.”

그 후 처녀의 아버지는 경찰서장을 불러다 자신이 모처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이 사건을 서울에 올라가 잘 처리할 것이고 어려운 일 있으면 자신한테 연락을 하라고 명함을 남긴 뒤, 젊은 경찰을 불러다 자신의 딸이 처녀귀신이 되는 것을 면하게 해주었으니 자신을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라며, 꽤 거금의 금일봉을 손에 쥐어주고 떠났다는 것이다.

엄혹한 유신시절에 벌어진 이 기묘한 사건을 들으며, 엽기적인 그 사건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그런 일들이 모처에서 나온 아무개요라는 말로 그냥 덮어지는 사태에 대하여, 웃음으로 우리는 분노했고, 시체의 썩은 냄새에 정액을 반죽하여 풍문을 만들어 숨쉴 수 없을 정도로 강포한 유신체제에 키들거리며 비굴한 반항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통금 전에 암자로 돌아가기 위하여 술자리를 파하고 밖으로 나왔다.

“저기가 그 처녀가 죽은 곳 아닙니까.”하고 누군가 여관의 이층 창문을 가르켰다. 그리고 우리들은 읍내를 벗어나 적송냄새가 가득한 통도사 앞을 지나, 산길을 따라 백운암에 도착했다.

괜찮다는 우리의 말에도 불구하고 고시생들은 방 한 칸을 우리에게 비워주었다. 산중이라 모기가 별로 없음에도 그들은 모기장을 쳐주고 사라졌다.

잠이 오지 않아 방문을 열어 둔 채 풀냄새가 섞인 밤 공기가 방 안에 스며들도록 내버려두었다. 풀벌레가 쓰륵쓰륵거렸고 간혹 어둠의 깊이를 확인해 주려는 듯 까끙하고 산새가 울었다. 그러나 어둠이 만든 평면 속에 갇혀있던 산과 수풀이 그 소리로 해서 하염없이 넓어지고 산봉우리와 계곡이 그 공간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러나 새가 어느 방향에서 우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친구는 잠이 들었고, 나는 처녀의 죽음을 생각했다. 왜 자살을 했을까? 젊은 경찰이 죽은 그녀를 겁탈하고 있을 때, 그 처녀의 얼굴은 죽음으로 부르튼 백랍같은 색으로 썩어가는 약간 달짝지근한 냄새를 피우고 있던 것은 아닐까? 혹은 눈을 뜨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검은 눈동자 위로는 어물전의 죽은 생선의 눈에 피어나던 무망의 안개와 같은 것이 피어나지는 않았을까? 그는 죽은 여인의 그 눈을 바라보며 그 짓거리를 할 수 있었을까? 아니야, 스스로 자살한 여인이 눈을 뜨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돼. 죽은 시체의 어느 부분을 보고 젊은 경관은 성적욕망을 느꼈을까? 입술이었을까, 아니면 눈썹? 하얀 목이거나......

아니면, 죽엄이라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성적 자극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아닐까?

젊은 경관의 음욕이 죽음이라는 거대한 수채 구멍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구멍은 그냥 마구 빨아들이기만 할 뿐 아무런 반향없이 무화될 것이고, 자신이 가진 수치와 사악함과 비굴함에 대하여 젊은 여인의 죽엄은 바위처럼 무관하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젊은 경관의 아랫도리에 힘이 가게 했고, 싸늘하고 메마른 그녀의 살 속에 자신의 뜨거운 것을 쏟아내게 했던 것이 아닐까? 아니야 욕정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고 엽기적인 섹스란 하나의 광기에 불과할 뿐이야......

다시 쑥꾹하고 밤새가 울었고, 어둠이 방문을 넘어와 나의 어깨를 짖누르기 시작했다. 방문은 열려 있었다. 저것을 잠그지 않으면 산 이슬이 내려 아침이면 추울텐데... 추울텐데... 하면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추위에 깨어 방문을 닫으려 하니 동쪽이 희끄무리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아 방 밖으로 나가 백운암 뜰이 비탈로 끝나는 곳에 섰다. 발밑으로 동해까지 영남알프스의 연봉들이 주욱 연결되어 있었다. 아침 안개는 산능성이들을 따라 희미하게 피어난 듯 했으나, 아침 해가 떠오르자 수증기처럼 말려 오르며 구름이 되었다. 아니 구름으로 보였다. 발 밑 산들의 정수리가 붉은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눈부신 아침이 되었다. 그 아침은 너무 투명하고 돌연히 밝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둠이 다시 오는 것이 아닌가 했다. 어둠이 오는 대신, 동해 쪽으로 툭 터진 언덕 위에 세워진 백운암에 찾아온 아침은 도시의 아침이 시시각각 빌딩과 골목 사이로 변화하는 것과는 달리 한시간 동안이나 요지부동 변화없이 그대로 였다. 해는 눈 앞에 정지한 듯했고 수평으로 날아온 햇빛을 감당할 수 없어 눈길을 돌려야만 했다.

우리는 아침 공양을 끝내고 통도사 소개를 시켜준다는 고시생을 따라나섰다. 그는 9년동안 절에서 살았다고 했다. 사법고시라는 것이 그에게는 생활에 대한 면죄부처럼 보였다. 그는 돈 한푼 벌지 못하면서도 도시에 있는 아내에게 아무런 자책을 느끼지 못했고, 자식을 3개월동안 보지 않았으나 그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생활에 대한 지금의 무책임함은 고시패스라는 그것 하나로 충분히 배상될 것임을 철저하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고시합격이란 돈오에 해당되는 것 같았다. 그에게 고시합격에 이르는 길이란 점진적이 수행의 결과라기 보다 갑자기 찾아오는 돈오라는 혜능의 남종선의 방향이었다.

“고시 패스란 죽어라고 공부를 해서 되는 것이 아니야. 되어야 되는 것이야. 삼년은 죽어라고 했지. 그리고 나서 이 이치를 알았지. 깨닫고 나니 산사의 염불 소리가 듣기가 좋더군.”

그러나 그가 뻑하면 읊어대는 ‘미필적 고의,에 대하여 설명을 해달라고 하니, 그 법률적 용어를 몹시도 난해한 철학적 개념으로 풀어냈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미필적 고의의 주체도 사건도 사라져 버린 그런 것이었고, 모든 인간의 행위는 연기적인 세계관에서 볼 때, 몽땅 미필적 고의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밥을 먹는다는 행위 또한 식물을 죽이는 행위이며, 우리는 그것을 명료하게 인식하면서도 밥을 먹는단 말씀이야. 그러니 범우주론적으로 볼 때, 그것 또한 미필적 고의 아니겠어?”

산을 내려온 우리는 개울을 건너 천왕문인가의 밑으로 해서 통도사로 들어섰다. 통도사에는 사찰에서 볼 수 있던 단청의 울긋불긋한 색이 없었다. 나무에 먹인 자주빛과 역청의 색이 나무 속으로 스미면서 퇴화되고 오래되고 메마른 나무의 색이 그 색깔의 밖으로 번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통도사를 처음으로 보았다. 건물들이 세워졌을 당시의 인위의 거친 틀이 낡고 삭아서 자연과 다름이 없는 불이(不二)의 변경에서 서성이고 있었고, 정자방으로 지어진 대웅전에 들어섰을 때, 부처가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는 계단과 같은 제단 만 있고 그 위에는 짙은 대웅전 그늘에 물든 빈 바람만 있었다. 그 뒤로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다는 사리탑에서 한 여름의 백랍같은 햇빛이 전 안으로 흘러들었고, 매미가 거친 숨을 뱉아내며 울기 시작했다.

통도사에는 삼보고찰이자 오대총림으로 다수의 전각이 많았음에도 볼 것이 다양하지 않았다. 평지에 세워진 건물들은 모두 같은 색으로 소박했고, 이조 중기의 양식으로 지붕의 무게로 하염없이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다. 산 사면이 아닌 평지에 모두 같은 눈높이로 펼쳐진 사찰은 보기에 편안했고, 낡았음에도 처마가 좁고 수직으로 힘의 균형을 받는 전각들은 안정감이 있었다.

그러나 사찰의 향기는 해인사나 송광사보다 깊었다.

“이 영축산은 구룡지라고 해. 자장 율사께서 창건할 때 여덟마리의 용을 죽이고, 한 마리는 눈이 멀게 하여 이 연못에 가둬두었다고 하지. 그래서 이 연못의 물은 한치 깊이도 보이지 않지. 아무도 이 연못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

대웅전의 옆 건물의 바로 옆에 직경이 1미터도 안되는 못에는 한송이 연꽃이 피어있었고, 그의 말대로 물이 탁하여 물 안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번 손을 넣어보아도 좋아. 용에게 물리지 않음 다행이지.”

나는 차마 손을 그 연못에 넣어 볼 수 없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신비하지.” 통도사를 벗어날 때 그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개울을 따라 읍네 쪽으로 걸어갔다.

늘씬한 적송림에 들어갈 때 즈음에,

“저길 봐! 저 바위 등에 난 채찍 자국들... 용들은 죽어서 돌이 되었지. 아직도 채찍자국 위에서는 가뭄 때에도 물이 흐르지, 마치 용들이 피 흘리는 것처럼...”

우리가 읍내에 들어서기 위하여 무풍교를 지날 때, 그는 우리에게 잠시 멈춰서라고 했다. 그리고 바람이 부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얼굴에 화사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는 손을 높이 흔들며 읍내에 들어섰고, 중국집에 들어가 짜장면을 시켰다.

“아까 우리가 서 있던 다리 이름이 뭔지 알아?”

모른다고 했다.

“무풍교! 바람이 없다는 무풍교가 아니라, 춤출 무, 바람 풍, 바람이 춤추는 다리이지. 나중에 돌아갈 때 한번 느껴봐. 다리의 바로 옆에 한점의 바람이 없더라도, 다리 위에만 서면 바람이 불지. 센 바람도 아니고 잔잔한 바람이 춤추듯 불지. 그 다리를 건너면 또 바람이 없어요.”

“왜 그렇지요?” 우리가 묻자 그것은 암자로 돌아가면서 설명을 하겠다고 했다.

짜장면을 먹고 읍내를 떠돌다가 백운암으로 향했다.

다리 옆에는 없던 바람이 무풍교 위에 서자 이마에 난 땀을 식히기에 적당하게 불었다. 우리는 잔잔한 바람을 맞으며 다리 난간에 기대어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내려다 보았다.

“저기 보이는 조그만 봉우리 보이지? 저기가 여의봉이야.”

그가 가리키는 곳에 봉분같이 동그랗게 생긴 봉우리가 있었다.

개울이 흘러내리는 계곡의 안을 가르키며,

“저기가 영취산의 용들이 엎드려 있는 곳, 용구(龍口)이지, 용의 아가리.”

거기는 산능성이들이 몰려 내려와 포복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 끝은 짙은 숲들로 어두웠다.

“장님이 된 용이 저 여의봉을 물기 위하여 아가리를 벌리고 있어서, 이 무풍교 위로 용의 숨이 바람이 되어 춤춘다는 것이지.”

그래서인지 바람 속에 숨이 토해내는 습기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살아있는 용을 보고 싶지 않아?”
“어떻게 볼 수 있다는 거죠?”
“저 쪽 용의 아가리가 있는 곳으로 가면 볼 수 있지. 날 따라와.”

우리는 다시 통도사를 지나 개울에서 발을 담그고 놀다가 산길을 조금 거닐다 극락암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본전의 뒤의 행랑채와 같은 건물 앞에 멈추어 섰다.

“바로 여기가 용의 아가리야. 우리는 용의 입 속에 든 어리석은 중생이구.”하고 말한 뒤, “스님... 스님... 큰 스님, 저 처운입니다.”하고 소리를 낸 후, 작은 요사채의 방문을 열었다.

두평이 채 안되는 방 안에는 덩그라니 서탁과 퇴침 만이 놓여 있을 뿐 이었다.

그는 놀러가셨나 하며, 빈방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섰다.

“오늘 자네들, 용보기는 글렀네. 용이 하늘 빛이 보기 좋아 날아갔나 보이.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뭐해?”하고 그는 퇴침을 목에 괴고 빈 방에 벌렁 누웠다.

우리는 쭈뼛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서며 “여기가 어느 스님의 요사채이길래...?”하고 물었다.

“경봉이라고... 마음씨 좋은 돌쭝이 사는 데 라네...”
“경봉스님이요?”

당시는 아직 성철스님이 조계종정이 되지 않았을 때로, 해인총림에는 성철, 영축총림에는 경봉선사가 조실로 법맥과 선통의 기틀 위에 앉아 있었다고들 말했다.

후일 82년에 경봉스님이 열반하여 다비를 치루고 난 후, 그의 몸에서는 단 일과의 사리도 찾을 수 없었으나, ‘93년에 입적한 성철스님의 몸에선 백과에 가까운 사리가 나왔다고 했다.

나는 경봉스님에 대하여 하나도 모른다. 그가 쓴 글 한 줄도 읽어본 적이 없다. 단지 그의 텅 빈 방과 뜰 앞의 보리수 만 보았을 뿐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이 뭡니까?(祖師西來意)라고 묻는 제자에게 조주스님이 뜰 앞에 잣나무(庭前柏樹子)라고 대답을 했던 아니면 차나 한잔 들고 가시게(喫茶去)라고 말했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성철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로 지랄같은 화두를 남기고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하여 묵언정진을 통하여 백과의 사리를 얻었다면, 차라리 달마고 잣나무고 차 한잔이고를 일거에 내려놓고(放下着) 영취산 아래 개울물에 발이나 씻을 일이었는 지 모른다.

사리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면, 그의 말대로 경봉은 마음씨 좋은 똘중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건건하여 자강불식하다는 하늘에서 근육을 볼 수 없듯, 용이 사라진 자리에 흔적은 없는 것이었다.

“거기 미닫이 문을 열어봐. 뜰에서 멋진 보리수를 볼 수 있을꺼야. 대덕이 머물던 곳의 보리수 열매를 내려 백팔염주를 만들어가지면, 아마 온갖 번뇌 망상은 사라지고, 많은 공덕을 이룰 수 있을꺼야.”

나는 미닫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오후의 햇살이 쏴르르 흐트러졌다가 다시 모였다. 뭔가 하늘을 향해 날아갔는 지도 모른다. 혹시 용이었을까? 빛이 다시 모이자 뜰에는 정적이 감돌았고 그 가운데 보리수가 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나는 뜰로 내려갔다.

그리고 보리수의 그 뒤틀린 둥치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주역 건괘의 용구(用九)에 보면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모든 용을 보되, 머리가 없으면 길하다.(見群龍 无首吉) 이것에 대한 해석은 그대들의 자유일 뿐이다.

조주 할아버지의 화두

2007/02/10 01:55에 旅인...face
2007/02/10 01:55 2007/02/10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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