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26 19:01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민박집에 가득한 열기 때문인지 또 4시 30분에 깨어났다. 길 건너 화개천의 개울물 소리가 나고 닭이 운다. 어제 밤의 휘영청 밝은 달도 이제 사라졌다. 담배를 피워 물고 베란다로 나선다. 아침 공기는 시원하다. 또 닭이 울고 날이 점차 밝아오기 시작한다. 친구가 깨어났다. 쌍계사로 오를 것이냐고 물으니 절은 다 똑 같은 데 무얼 보러 가느냔 다. 그럼 떠나자. 5시 30분 차에 시동을 건다. 친구는 땅끝(土末)으로 가자고 한다. 벚꽃나무가 회랑을 만드는 십리 길 화개천변을 벗어나 섬진강 가로 내려섰다.

아침 골안개가 한창이다. 차는 시속 60~70킬로로 저절로 흘러가는 듯하다. 지리산의 연봉들이 골안개로 뿌리 없이 공중에 떠 있다. 때론 안개 속을 헤치고 아침 햇살이 먼 대지 위로 내려앉기도 한다.

구례를 지나 순천으로 내려간다. 차가 달릴수록 안개는 더욱 짙어지고 안개비마냥 수분이 유리창에 부딪힌다. 남도의 산과 수풀들이 농염한 발묵의 화폭 같다. 순천을 지나고 벌교로 간다. 여순반란 사건의 중심지이자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의 장터를 지나 보성의 차 재배지로 간다. 산 위에서 언덕 사면에 심어진 차나무를 본다.

조선조에 초의 선사, 다산 등이 차에 관심이 있었다고 하나 한국에서 차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이십여 년에 불과한 것 같다. 당시 제다법이 보급이 안되어 차를 끓여도 녹차 색이 우러나지 않고 흑차계통의 갈색이 나서 절에 있던 스님이 고심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대만 武陵社刊 茶經白話에 보면 한국에서 차는 고려시절 불교의 흥륭과 함께 하다 이조에 들어 승유억불에 따라 사라지고 일반인들은 鍋?茶(과파차: 숭늉)를 마셨다고 되어 있고 최근에나 홍차가 도입되면서 다례가 살아났다고 되어있다. 그 다음 장에 인삼차와 화차(꽃잎 차) 등이 소개되어 있다.

작설차라는 차명도 製茶의 방식에 기인하는 바, 다엽을 말리면 공작의 혀마냥 휘말리게 되어 작설이라 하니 죽로차나 동차이명이다.

차 재배지에서 율포가 가까워 율포에서 늦은 아침을 먹는다.

10시가 지났으나 바다에는 해무가 한창이다. 해무가 낀 아침 바다는 파도도 없고 고요하기만 하다.

다시 강진을 지나 영랑의 생가를 지나고 다산초당을 지난다. 영랑의 시는 한 편도 생각나지 않고 여유당의 책은 읽은 것이 없다. 그러니 다산의 유배지를 찾을 이유조차 없다. 다산이 유배당하지 않았다면 그 많은 저작이 있을 수 있으랴? 실학자들의 책을 몇 권 읽어 보았으되 다산의 목민심서는 정치와 무관한 내게는 심드렁하며, 논어고금주가 청대의 고증학적인 방식으로 주자의 주석의 오류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한번 일독을 하고 싶을 뿐이다.

남도의 끝자락에 달하자 완도 가는 길이 보이고, 土末(땅끝)로 가는 길로 갈라진다. 완도는 해무 속에 보이지 않는다. 단지 바다 저편에 산봉우리 만이 언뜻 보일 뿐이다.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뭍인지를 모른 채 길을 계속 가다 보니 높은 언덕이 보인다. 차를 세우고 벼랑 끝에서 해무에 가린 바다를 향하고 담배를 피운다. 광활한 바다라고 생각했으나, 안개 아래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해무가 걷히기 시작한다. 포구가 나타나고 방파제가 보이고 양식장이 보인다. 뚜렷한 속도로 해무가 바다 저쪽으로 밀려가기 시작한다.

다시 차를 몰고 가보니 발 아래 보였던 포구가 땅끝마을이다. 포구에 들어가니 관광버스와 차량들로 북새통이다. 전망대가 있어 올라가 보니 아직 해무가 지워지지 않아 사방이 안개 속에 가라앉아 있다.

다시 해남을 지나 영암의 월출산에서 여정을 끝내자고 결심을 하고 차를 몬다.

영암에 들기 전에 월출산 자락에 있는 무위사를 들른다. 무위는 불교용어가 아니다. 불교의 동전 시기 토착어를 차용하는 시점의 격의불교 속에서 노장철학의 용어를 불교용어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산물일 뿐이다. 함이 없다(무위)는 스스로 그러함(자연)이다. 산적(매표소)들이 창궐하지 않을까 하였으나 한갓 진 산사에는 의젓한 떡갈나무가 가지를 드리우고 산문은 뜰을 활짝 열어보이고 있다. 오뉴월 땡볕 아래 뜰에는 아무도 없다. 스님은 낮잠을 자는지…… 무위사로 들어서니 여기에도 부석사 마냥 대웅전이 없다. 극락전(=무량수전)이 본전을 대신한다. 조선조 초기의 건축양식으로 맛배지붕이 단정하다. 추녀 끝에 풍경이 달려있다. 풍경소리를 듣고자 했더니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땡강 풍경이 운다.

이글거리는 한낮의 볕을 피할 겸 절 옆 무위다원에서 차를 시킨다. 작설 세작이 오천원, 중작이 삼천원이다. 중작을 시키니 탕관, 차병, 다관, 찻잔을 올린 다반을 내려놓고 사라져 버린다. 어떻게 자시란 말인가? 다도나 다례에 아는 바가 없는 객들에게 니들 알아서 마시라고? 감으로 차를 우려낸다. 탕관에서 차병으로 충수를 하고 다관에 찻물을 받쳐 찻잔에 차를 올린다. 자 이만하면 됐는가? 차를 마신다. 한국의 작설차가 백차(녹차)계열이라면 롱징(龍井)과 등급이 같을진 데, 롱징은 향이 깊은 대신 약간 비리다. 그래서 삼탕이면 맛이 비려 더 이상 찻물을 우릴 수가 없다. 그런데 하질인 중작의 향이 엷은 대신 맛은 깊고 비린 맛이 없다. 그래서 삼사탕을 하고도 맛이 괜찮다.

친구는 사라 브라이트만의 노래와 뉴 에이지 계열의 시크릿 가든 등의 음악에 지쳐버렸는 지 염불테이프를 사자고 한다. 회심곡을 사라고 했더니 틀어보고 또 잘못 샀다고 투덜거린다.

도갑사 쪽으로 오른다. 오늘은 일찍 민박을 정하고 쉬자고 했건만 민박 집이 산기슭에 있어 정취가 없다. 그래서 딴 곳으로 가기로 했다. 지리산 백무동으로…

영암 읍내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염천 아래의 식당들은 후덥지근해 보였고 편히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메뉴 뿐이었다. 연포탕이 있어 얼마냐고 했더니 1인분 만원. 서울에서도 연포탕은 오천원에 불과한 것을. 결국 짱뚱어탕을 먹기로 했는 데, 짱뚱어가 망둥이가 아니냐 했더니 맞는단다. 망둥이를 갈아서 내 온 짱뚱어탕은 향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 맛을 느낄 수 없고 반찬은 간을 맞추지 못하여 대충 먹고 나왔다.

다시 차를 몬다. 나주를 지나 광주에서 88고속도로로 오른다. 남원쯤 왔을 때 친구는 남원 사람을 안다고 핸드폰을 때린다. 남원사람 왈 육모정이 좋다고 하여 남원에 내려서서 그 쪽으로 간다. 육모정에 가보니 한 번 왔던 곳이다. 노고단을 가는 길의 초입. 하지만 이미 오후 여섯시에 가깝고 육모정 부근에 민박하기에는 마지막 날이 너무 아까울 정도로 계곡이 옹졸하다.

못 먹어도 고라고 애당초 가기로 했던 백무동으로 간다. 지리산 IC에서 실상사를 지나 함양 산천으로 난 길을 따라 간다. 실상사를 스쳐 지남이 안타깝다.

누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불상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실상사의 철제여래좌상이라고 할 것이다. 대학시절 뱀사골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실상사를 들렀다. 신라의 구산선문인 실상사는 심산유곡 속에서 꽤 널찍한 터에 자리잡고 절인지 누군가의 고택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소략한 절이었다. 절을 둘러보다 창고 같이 허름한 건물 안에 놓인 석조불상을 보았다. 무심코 불상을 보다가 불상의 입에서 주사를 입힌 듯 붉은 기를 보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에 그늘 속에 놓여있는 불상을 천천히 보기 시작했다. 부처의 눈은 하늘을 보고 있다. 웃지 아니하는 불상. 나의 기억으로는 불상은 서 있었다. 열정을 간직한 눈, 분명 내관에 들어 삼매의 기쁨에서 떠오르는 미소가 없다. 그 불상은 여래가 아닌 젊은 고타마 싯다르타, 그였다. 아! 수많은 절이 있음에도 어찌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번뇌와 영원에 대한 갈구에 들뜬 젊은 싯다르타의 모습은 없는 것인가? 인신의 경지에 오른 불타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그의 모습은 바로 실상사에 있을 뿐이다. 한 십여분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안내문을 보니 철제여래좌상이라고 쓰여 있다. 내가 석조라고 생각한 것은 오랜 세월의 먼지가 철제 위로 더께로 앉고 또 그 위를 세월이 흐름으로써 석조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여도 그 불상은 내겐 분명 석조 싯다르타상이다.

개천변을 따라가다 보니 백무동이 나왔으나 흘러내리는 물이 없다. 하여 계속 차를 몬다. 칠선계곡이라는 안내표가 나오고 다리 건너편 옆으로 계곡물이 개천으로 합류한다. 다리를 건너 칠선계곡으로 들어선다. 수풀이 깊어 민박이 없으려니 올라 가보니 없을 듯 민박집이 계속 나타난다. 몇 번이나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개울에 가까울 것 같은 민박집에 방을 정한다.

물소리가 무성하다. 이미 여덟 시가 되었고 민박집 개울가에 마련된 평상에서 저녁을 지어 먹는다. 어둠 속에 개울소리 만이 곡 간에 가득하다. 지리산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개울물 소리와 대작한 소주에 취하여 어두운 바위 사이를 지나 민박집으로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친구가 촛불이라도 있어야겠다고 민박집으로 가더니 세월이 좋아 평상 위로 전기 불이 들어온다. 물소리와 함께 밤이 이슥함을 즐긴다.

방으로 돌아와 눕는다. 소변을 보기 위하여 나간다. 민박집의 모든 불이 꺼졌다. 사위는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있고 물소리 속에서 풀벌레 소리며 새 울음소리가 섞이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어둠을 맞이한 지가 오래된 것 같다. 두렵다. 하늘에는 구름이 끼었는 지 별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무 곳이나 소변을 보고 난 후 방으로 돌아가 눕는다. 잠이 오지 않는다. 심산유곡임에도 낮의 열기가 방을 달구고 있고, 모기며 벌레들이 몸 위를 스믈거리며 기어다닌다. 시원한 밤 공기를 맞기 위하여 다시 마당으로 나선다. 지리산 능선 위로 교교한 달빛이 산능성이 위로 뿜어져 오른다. 마당 위의 모든 것이 달빛 아래 드러난다.

2002.07.25일의 여정

2004/05/26 19:01에 旅인...face
2004/05/26 19:01 2004/05/2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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